[트렌드 돋보기] '수다 特補(특보)'가 필요해
입력 : 2015.02.11 03:00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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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덕 문화부 차장
타르야 할로넨은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핀란드인 10인'에 선정될 만큼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2년 전 인터뷰에서 그가 재미난 얘길 했다. 메르켈·클린턴·올브라이트 같은 여성 정치인을 만나면 푸념하는 내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유로존 재정 위기로 골머리를 앓는데도 우리가 어떤 옷, 어떤 핸드백을 들고 회담장에 나왔는지가 더 큰 화제였죠. 조금만 틈을 보여도 남자들 공격이 빗발쳤어요." 그래서 행동 지침을 정했단다. '매사 배짱과 웃음으로 대범하게 넘길 것. 공부를 많이 할 것. 유머 감각을 키울 것!'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바지정장에 올림머리만 고집하는 거며 입는 한복은 누가 만들었는지, 드는 가방은 어디 건지 함구해온 건 여자라는 이유로 세간의 입도마에 오르내리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주위에선 '밥의 정치'를 하라고 들볶지만 독신 대통령이 한밤중 식당에서 나오는 사진이라도 찍히면 전국이 또 한 번 들썩이지 않겠는가. 대통령은 밥 대신 '공부'를 택한 듯하다. "대통령 계신 곳이 집무실이고, 아침에 일어나 주무실 때까지가 근무시간"이라는 비서실장 말은 농담이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박 대통령은 여성 리더십의 전형이다. '공감력(共感力)'만 빼고 말이다. 감정 표현이 헤프지 않은 건 그의 최대 장점이지만 치명적 단점이기도 하다. 모두가 울 때 울지 않고, 웃을 때 웃지 않아 얼마나 많은 오해를 샀던가. "3인 비서관이 무슨 잘못이냐" "대면 보고 정말 하고 싶으냐" "결혼을 장려해 출산율 높이겠다" "증세는 국민 배신" 같은 발언은 대통령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절감케 한다.
청와대라는 밀폐 공간에서 자란 탓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공감력은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여자들의 전매특허라는 '수다'는 그 지름길 중 하나다. 대통령 자신도 '우리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우문현답]'는 유머를 구사했듯 지도자는 현장의 목소리와 끝없이 교감해야 한다. 정무특보, 민정특보 같은 옥상옥(屋上屋) 벼슬자리, '예스'밖에 모르는 먹물 관료로는 어림없다. 권력에 대한 사심 없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상식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저잣거리 여인이 필요하다. 딴지 걸고, 맞장구치고, 농담하고 웃다 보면 불현듯 '해법'이 보이는 게 수다의 마력(魔力)이다. 정신 건강에도 좋다. 맺은 걸 풀고 막힌 걸 뚫는 데 수다만 한 보약이 있을까.
재임 기간 중 국가 경쟁력 1위, 국가 청렴도 1위, 학업성취도국제비교(PISA) 1위를 이끌어낸 할로넨은 틈만 나면 사우나에 가서 수다 떨고 민심을 읽어내는 '아줌마'였다. 그녀는 "리더란 높은 곳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당신은 진짜'라는 말이 내겐 최고의 칭찬이었다"고 했다.
조선의 군주조차 진짜 민심을 살피려 미복잠행(微服潛行)에 나섰다. '말이 안통하네트' '유체 이탈 화법'이란 비아냥을 듣지 않으려면 대통령은 이제라도 '수다잠행'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손에 잡히는 정치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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