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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增稅 없는 복지'의 비밀

도깨비-1 2015. 2. 25. 12:20

 

[경제포커스] '增稅 없는 복지'의 비밀

 

입력 : 2015.02.25 03:00 / 조선일보 박종세 경제부장

 
연말정산 소동과 증세·복지 논쟁을 보면서 다시 확인한 것은 우리 국민의 세금에 대한 저항과 반감이다. 정책 당국의 소통 부족과 조삼모사(朝三暮四)식 간이세액표 조정이 국민을 화나게 한 것은 분명하지만, 분노의 바탕에는 늘어난 세금에 대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가 연봉 5500만원 이상 월급쟁이의 세금은 늘었지만 그 아래 구간은 줄었다고 얘기해도, 세금이 늘어난 사람의 성난 목소리만 혜택받은 사람의 침묵 위로 넘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놓은 복지 지출 청구서를 맞추려면 이 정도 세금 증가로는 어림도 없다. 정부는 고소득층으로부터 9000억원을 더 걷었지만 저소득층 자녀 및 근로 장려금으로 1조4000억원을 더 써버렸다. 지난해 11조원 가까이 세수(稅收)가 구멍 난 데는 이유가 있다. 복지 공약 집행 본격화로 지출 항목에 엄청난 금액이 잡히다 보니 이를 맞추려 잔뜩 수입 항목을 부풀렸던 것이 냉정한 현실에 부딪힌 것이다. 현 정부 들어 2년 연속 세수에 큰 구멍이 뚫린 배경에는 예상보다 나빴던 경제 상황뿐 아니라 지하경제 양성화 등 가외 소득에 과도하게 기댄 공약 가계부 자체의 비현실성이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못 박은 것은 적은 세금 인상에도 격렬하게 반발하는 한국 유권자의 특성을 감안한 정치적 판단일 수 있다. 야당이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이 OECD 국가 중 다섯째로 높은 현실에 눈감은 채 법인세 인상을 요구하고 극소수 부자에 대한 증세를 주장하는 것도 세금 인상에 저항하는 다수 유권자의 눈치를 보는 측면이 있다.

세금을 올리지도 못하고, 이미 시작한 복지를 물리지도 못하는 정부에겐 한 가지 선택밖에 남지 않는다. 빚을 내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27조7000억원의 적자(赤字) 국채를 찍은 데 이어 올해도 34조2000억원을 발행할 예정이다. 특별히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리먼 쇼크 직후인 2009년도(35조원)와 같은 수준의 빚을 내고 있는 것이다. 복지 지출은 갈수록 속도가 붙는데 세수는 늘지 않으면 국가 재정은 벌린 악어 입처럼 갈수록 간극이 벌어지고 그만큼 빚으로 쌓일 뿐이다.

국가 살림이 복잡해 보이지만 가계와 다를 것이 없다. 돈벌이에 비해 씀씀이가 크면 빚을 지게 돼 있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파산하는 것이다. 무책임한 부모가 빚더미에 앉으면 불행해지는 것은 자녀이다. 유산은 고사하고 부채만 물려받은 자녀의 세상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국민의 3분의 1이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현실에 맞서지 못하고 일부 부자와 기업 세금만 올리거나, 경기가 풀리면 다 해결될 것처럼 떠드는 포퓰리즘은 필연적으로 '빚더미 대한민국'을 부를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우리 자녀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이 치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물쩍 남유럽이 걸었던 길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저(低)세금 고(高)복지'의 노선을 수정하지 못해 나라가 결딴난 그리스의 비극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다. 공동 구매일 뿐이다. 너와 내가 크든 작든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외상 장부로 남아 우리 아들딸에게 큰 고통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