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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 칼럼] 朴 대통령이 손봐야 할 '천막 복지'

도깨비-1 2015. 2. 12. 09:54

 

[강경희 칼럼] 朴 대통령이 손봐야 할 '천막 복지'

  • 강경희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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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2.12 03:00 / 조선일보

    野黨 무상 급식 공약 내걸고 선거 재미 본 뒤 '無償' 바람
    2012 총선·대선 겨냥 급조돼 잔뜩 거품이 낀 복지 제도
    票 의식 안 해도 될 대통령이 부실 걷고 지속 가능案 세워야

    
	강경희 사회정책부장 사진
    강경희 사회정책부장

    주위 바람이 거셀수록 어휘 선택도 강해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이라는 단어를 쓰며 '증세 없는 복지' 논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연말정산 파동이 빌미가 되자 여당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논란에 가세했고, 새로 선출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공격에 나섰다. 이에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부담 주지 않고 경제도 살리고 복지도 더 잘해보자는 뜻을 외면한다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쳤고, 문 대표는 "증세해서 배신, 가난한 봉급쟁이 지갑 터는 방식으로 증세한 건 '이중의 배신'"이라고 되받아쳤다.

    총선을 1년 앞두고 불거진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은 별로 나아진 것 없이 4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정치적 샅바 싸움으로 헛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면 '증세 없는 복지가 된다, 안 된다' '그런 말 했다, 안 했다'의 정치적 공방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증세 없는 복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나라 장래를 위해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똑똑한 제도는 국민을 지혜롭게 만들고 사회적 책임 의식을 고취시키지만 멍청한 제도는 국민을 탐욕과 도덕적 해이로 눈 어둡게 만든다. 2012년 총선과 대선 바람에 휩쓸려 급히 도입된 복지 제도들은 과연 몇 점짜리일까? 증세냐 아니냐를 따지기에 앞서 '복지 중간 평가'가 시급하다.

    무상 복지 물꼬를 틔운 건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인기몰이를 한 무상 급식 공약이었다. 무상 급식에 반대하면 '애들 밥도 안 주는 나쁜 어른들'로 몰아붙여 무상 급식을 거스르기 힘든 대세로 만들었다. 연간 2조6000억원씩 들여 학부모한테 급식비 안 받고 아이들 밥 먹이는데 그 결과로 학교 담벼락이 무너져도 고칠 예산이 부족하게 된 건 '착한 복지'일까?

    무상 급식이 흥행에 성공하니 선심 복지를 경계하던 보수 여당도 앞다투어 '무상 대열'에 올라탔다. 2011년 말 국회에선 담당 부처인 복지부 장관조차 모르는 새 여야가 손잡고 선심성 무상 보육 예산을 통과시켰다. 0~5세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면 나라에서 월 22만~77만7000원을 지원한다니 2012년 초 너도나도 아이를 맡기려다 보육 대란이 벌어졌다. "이대론 안 된다"고 정부가 전문가들과 7개월간 머리 싸매고 개선안을 내놨지만 정치권이 퇴짜 놨다. 이렇게 도입된 0~5세 전면 무상 보육에 지금 연 10조원씩 쏟는다. 그런데 여성들이 마음 놓고 아이 맡기고 일하러 나가는 보육 환경으로 설계가 된 건가? 지금 방식이 미래를 위해 질 좋은 유아 공교육에 투자하는 최선인가? 얼마 전 인천 어린이집 폭행을 떠올리면 후한 점수를 주기는 힘들 것 같다.

    무상 보육과 비슷하게 연 10조원을 쏟아붓지만 기초연금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현재 노인 수는 600만명이다. 이 가운데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1인당 최대 월 20만원, 노부부에게는 32만원 준다. 아직 집 장만도 못한 30대 직장인이 낸 세금으로 서울에 4억원짜리 집 가진 노인 부부에게 월 32만원씩 드리는 구조가 세대 간 정의에 부합하는가?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OECD 평균의 3배도 넘는데 그 돈 없어도 생계에 지장 없는 노인까지 나라가 용돈 드리는 게 그리 시급한가? 빠르게 늙어가는 대한민국에서 노인은 하루 평균 600~700명씩 늘어난다. 다음, 다다음 정권은 이 제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속 가능한 복지가 되려면 이런 의문들에 답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 당의 쇄신을 보여준 '천막 당사'다. 하지만 2012년 선거판에서는 잔뜩 버블이 낀 복지 기대치에 맞춰 박 대통령도 소나기 피해 다급히 천막 치듯 '무상 보육~무상 돌봄~고교 무상 교육~반값 등록금~기초연금'의 풀 코스 복지를 내놨다. 천막 당사에 영구 입주할 수는 없듯, 천막 치고 좌판 펴듯 도입한 복지 메뉴도 20년, 30년 지속 가능한지는 숨 고른 시점에 다시 따져봐야 한다.

    '천막 복지'를 이 시점에 손질하는 건 박 대통령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2012년 교훈에서 볼 수 있듯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한테 정치(政治) 복지 대신 표 떨어질지 모르는 정치(精緻)한 복지를 기대하긴 힘들다. 반면 임기 3년 남은 단임제 대통령은 마음먹기에 따라선 인기 없는 정책도 20·30년 미래를 위한 대수술이라면 도전할 수 있다.

    지금 박 대통령이 고민해야 할 건 5년짜리 공약 가계부만 맞추느라 나라 살림에 50년 주름 지운 대통령으로 남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속 가능한 복지'라는 더 긴 안목의 시야를 가져야 한다. 전문가들의 지혜도 모으고 사회적 대토론도 거치면서 필요하다면 줬던 복지를 줄이는 개혁도 하고, 재정이 더 필요하면 국민도 설득하면서 '복지 10년 대계(大計)'를 세워 첫 단추만이라도 제대로 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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