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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최빈국의 自害 소동

도깨비-1 2015. 1. 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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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최빈국의 自害 소동

 

중국의 자원 싹쓸이 대응하라던 사람들, 이제 상황 바뀌자 돌아서 돌팔매
유전·광산 구입 기회인데 한국은 가진 것도 팔아

입력 : 2015.01.08 03:05 /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주간

해외 자원 개발 실패 사례를 놓고 비난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동네 축구만 해본 사람이 월드컵에서 실수한 선수에게 "바보"라고 욕하는 것 같다. 일이 다 끝난 뒤에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다"고 평가하고 비판하는 '결과론'만큼 쉬운 게 없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직접 뛰어 본 사람들,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칼끝 위에 서 본 사람들, 불가사의하게 변덕스러운 미래와 맞닥뜨려 넘어져 본 사람들은 결과론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한다.

석유공사가 캐나다 에너지 회사를 인수해서 막대한 손해를 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과정에서 부패 행위가 있었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감사원 조사에서 그런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비리가 없었다면 석유공사가 이명박 당시 대통령 지시로 해외 자원 개발 실적을 대폭 올리려다 무리한 것이 문제의 원인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그때 석유공사에 "내 임기 중에 규모를 5배 키우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석유공사는 하루 5만배럴이던 원유 생산량을 5년 내에 30만배럴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석유공사는 이 계획 아래 원유 개발 업체 인수에 나섰지만 더 많은 돈을 쓰는 중국 업체에 계속 패했다. 유가(油價) 전망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고 유전을 가진 에너지 회사들의 몸값도 덩달아 뛰고 있었다. 석유공사는 그런 초조감 속에서 캐나다 업체가 제시한 무리한 조건을 덥석 받은 것 같다.

만약 지금과는 반대로 유가가 올랐다면 캐나다 업체 인수는 대박이었다는 평가 일색일 것이다. 석유공사가 받아들인 무리한 조건이나 거짓 보고도 살벌한 글로벌 자원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이해했을 것이다. '이기면 영웅, 지면 역적'이라고 하지만 국가적으로 가야만 하는 길을 가다가 잘못하고 실패한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돌팔매질을 해댄다.

1년에 300억달러 이상을 해외 자원 개발에 쏟아붓는 중국의 투자 성공률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탐사 개발 성공률은 20%에 못 미치고 인수·합병도 유가 하락으로 경제성이 떨어지는 곳이 숱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중국이 해외 자원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인도도 본격적으로 뛰어든다고 한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언론과 전문가들은 중국이 세계 자원을 싹쓸이하는데 한국은 뭘 하느냐고 재촉했다. 그러던 사람들이 이제 '내 망할 줄 알았다'면서 혀를 찬다. 자원 개발은 본질적으로 모험인데 이런 풍토에서 모험에 뛰어들 사람은 나오기 어렵다.

이라크 유전을 따내면서 상대국에 이른바 '서명 보너스'를 줬다고 비리나 되는 양 비난한다. 그런 돈을 주기 싫으면 유전을 확보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돈을 주고도 경제성이 없어 '국제 호갱'됐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 유전 중에 바드라 유전이 상업 목표를 달성한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 바드라 유전은 원래 담당인 석유공사 대신 가스공사가 나선 것이다. 석유공사가 쿠르드 지역에 진출하는 바람에 이라크 정부에 밉보여 어쩔 수 없이 가스공사가 나선 것인데도 불법·월권이라고 비난한다.

광물자원공사가 해외 자원의 경제성을 부풀렸다는 것도 최종적으론 같이 참여한 선진국 회사와 같은 돈을 낸 것이다. 볼리비아 리튬 개발이 대통령 형에 의한 '뻥튀기'였다고 비난하지만 가만있어도 숨이 차고 머리가 깨질 듯한 4000m 고지대를 몇 번이나 들락거리며 자원을 확보해보려 노력한 것까지 욕할 이유는 없다. 최근 포스코는 아르헨티나로 방향을 틀어 리튬 추출 공장을 준공했다. 크게 보면 모두가 힘을 보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자원 개발을 정권의 치적으로 만들려 했다면 옳지 않다. 하지만 석유공사를 5배 키워 봤자 세계 에너지 기업 순위표에서 찾기도 힘들 만큼 미미한 존재다. 원유 생산량을 30만배럴로 늘린다고 해도 세계 50위도 안 된다. 제조업으로 먹고살면서 원료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나라, 에너지 수입량이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고 소비 증가율은 현기증이 날 지경인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 나라가 영원히 강대국과 자원 메이저 기업에 종속돼 살 생각이 아니라면 발버둥은 쳐봐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부(富)의 원천인 자원 산업에 발 하나는 담그고 있어야 한다.

강대국들은 100년에 걸쳐 수많은 실패와 곡절을 겪은 끝에 자원에 대한 노하우와 기반을 쌓았다. 이제 겨우 시작하는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손해 본 것이 10년 뒤에 대박이 될 수 있고, 지금 잘나가는 것이 얼마 안 가 망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선진국들은 유전과 광산 가격이 급락하는 지금이 자원을 사들일 적기라고 부산하다는데 우리는 '자원 개발은 단군 이래 최대 국부(國富) 유출' 같은 정치 선동에 휘말려 가진 것까지 파는 자해(自害)를 하고 있다. 자원 개발 예산도 갑자기 절반 가까이 깎아버렸다.

세계에서 자원 안보가 가장 취약한 국가가 자원 안보를 포기하는 길로 간다. 무망한 바람인 줄 알지만 자원 개발 국정조사는 정치 싸움이 아니라 사려 깊은 눈으로 상황을 점검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