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내 몸이 법당… 무너지지 않게 마음을 돌보라

도깨비-1 2014. 11. 28. 08:42

내 몸이 법당… 무너지지 않게 마음을 돌보라

입력 : 2014.11.28 05:27 / 조선일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원철 스님의 인생·종교 어우러진 '집으로 가는길은 어디서…' 출간… 한국인 정서 녹여낸 불교 에세이

목차(目次)부터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내가 감당할 괴로움이 있으니 그런대로 살 만한 세상' '금(金)도 눈에 들어가면 병 된다' '더러움과 깨끗함 사이에는 오로지 생각이 있을 뿐이다' '내 몸이 법당, 무너지지 않게 마음을 돌보라'…. 하나하나가 잠언이다.

원철 스님(54·해인사 승가대학장)이 쓴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불광출판사)는 이 시대 불교 에세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풍광과 서정이 있고, 동서고금 명문(名文)이 있으며 인생, 그리고 불교가 있다.


	원철 스님은“수도승(首都僧)으로 8년을 살며 은둔을 그리워하다 서울을 탈출했다.
원철 스님은“수도승(首都僧)으로 8년을 살며 은둔을 그리워하다 서울을 탈출했다. 그러나 속리산과 가야산에 살면서 은둔과 노출이 둘이 아님을 알게 됐다. 노출을 권하는 출판사 권유에 따라 책을 낸다”고 말했다. /불광출판사 제공
'더러움과 깨끗함 사이…'라는 꼭지는 반야심경 중 '불구부정(不垢不淨)' 네 글자에서 길어올린 향내 나는 글이다. "언젠가 '불구부정' 네 글자 앞에서 호흡이 멈추었다.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더러움은 피해 가고 또 깨끗함만 찾아가려고 애쓴다. 쓰레기통이 있기 때문에 주변이 청결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쓰레기통을 멀리하려고만 든다."

지는 벚꽃 보러 진해 경화역 앞에서 몇 시간, 피는 벚꽃 만나러 역시 진해 여좌천을 지키는 중년의 스님이 던지는 서정은 또 어떤가. 속리산 법주사 마애불은 발가락에 힘 주고 허리가 가늘어지는 모습이 '일어나려는 순간'을 새긴 것이란 미술사학자의 이야기를 듣고는 돌부처의 발가락 모양을 열심히 살피는 게 원철 스님이다. 또 부활절과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 그리고 부처님오신날 등 각 종교의 명절이 3·4월 무르익은 봄날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모여 있는 것에서 '또 다른 조화와 화합을 주문하는 이 시대의 메시지'를 판독해 낸다.

원철 스님은 본디 학승(學僧)이다. 해인사로 출가해 불교 경전과 선(禪)어록을 공부하고 강의했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 등 산문집도 냈지만 당대의 대강백(大講伯) 지관 스님의 권유로 난해한 불교 경전을 여러 권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팔만대장경을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꿴다. 묻기만 하면 한자 구절이 줄줄 나온다. 자판기가 따로 없다. 그러면서도 총무원에서 돈 만지는 일(재무국장) 맡겨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내 산을 그리워하며 스스로 '수도승(首都僧)'이라 자조(自嘲)했다. 2012년 법주사로 들어가 학인(學人·사미)을 가르쳤고 현재는 친정인 해인사에 살고 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산방한담(山房閑談)'이 이농(離農)과 도시화로 몸살을 앓던 1970년대 정서를 담아 독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진 명작이라면 원철 스님의 이번 '집으로…'는 2014년 '지금 여기' 한국인의 정서를 녹여낸 수작(秀作). 팁 하나. 이 책을 들기 전 주변에서 연필과 형광펜 따위는 치울 일이다. 줄 긋다가 책이 형광색으로 물드는 수가 있다. 라면처럼 후루룩 단숨에 독파(讀破)할 책이 아니다. 깊은 향 차(茶)처럼 두고두고 아껴가며 한 편씩 음미할 책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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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로]낙엽은 뿌리로 돌아가고
원 철|조계종총무원 재정국장  
입력 : 2008-11-07 18:01:48 경향신문

정동길은 덕수궁 돌담길을 휘돌아 감으면서 100여년 된 근대문화유산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는 운치있는 문화의 거리이다. 해질 무렵 그 길을 걸었다. 도심도 조락(凋落)의 계절임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가을바람은 나무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것을 모두 털어내게 만든다. 그리고 스스로 가지치기까지 마친다. 운문선사는 이런 풍광을 보고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잎은 떨어져 다시 뿌리로 돌아간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인 것이다. 이렇게 자연은 순리대로 돌고 돌게 마련이다. 인간사 역시 그러할 것이다. 산중노덕의 기일(忌日)이 유독 가을철에 몰려 있는 것도 이런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라 여겼다.

정동길 끝자락의 오래되지 않은 붉은벽돌 건물에서 생명평화를 위한 모임이 마련되었다. 불을 끄고서 생태환경을 주제로 한 슬라이드를 한참 돌리고 있는데 휴대폰의 진동은 빛과 함께 몇 마디 문자를 토해낸다. 도반스님의 임종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순간 떠오르는 한 마디. “죽어도 좋고, 살면 더 좋고.”

그는 수행생활을 하면서 늘 크고 작은 일 앞에서 결단이 필요할 때마다 습관처럼 농담처럼 이 말을 곧잘 내뱉고는 했다. 선방을 전전하던 선객답게 현실문제도 늘 백척간두에서 한걸음 더 내디디는 마음으로 실타래같이 꼬여가는 번뇌를 일거에 해결하곤 했다.

- 도반스님의 임종 알리는 문자 -

오십이 채 못된 나이지만 이미 영단은 흰 국화로 꾸며져 있었다. 붉은 철쭉꽃을 배경으로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실제보다 십년은 젊어보이는 영정 표정은 죽었다는 사실조차 잠시 망각하게 만든다. 문상을 마치고 마당으로 나서니 즐비한 조화(弔花)의 꼬리표 가운데 적혀있는 한 마디에 눈길이 머무른다.

“달은 져도 하늘을 여의지 않는다.” 하지만 임종한 그를 위한 언어가 아니라 그 앞을 오가는 살아있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말로 들렸다. 여타의 상투적인 문구는 보낸 사람의 이름자가 더 크게 보였다.

해인사에 살 때 일이다. 어느 가을날, 입적한 노승의 조문객 행렬이 끊어진 틈을 이용해 방명록을 뒤적거렸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선시(禪詩)였다. 그 가운데 누군가 검은 먹물의 유려한 필체로 써내려간 그 구절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안광낙지(眼光落地)하니 천지실색(天地失色)이라.” 형형하던 눈빛이 땅에 떨어지니 하늘과 땅도 제 빛을 잃었다고 했다. 선지식이 열반에 드니 삼라만상 모두가 슬퍼한다는 절절한 조가(弔歌)였기 때문이다.

성묵스님은 키가 컸고 목소리는 늘 괄괄했다. 선방에서 조는 이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죽비에는 늘 힘이 가득했다. 함께 개성과 금강산도 다녀왔고 중국 쓰촨성 아미산도 같이 순례했다. 꼭대기의 금정(金頂)에서 산입구의 청음각(淸音閣)까지 그 길고 험한 길도 며칠 동안 함께 걸었다. 서울광장 시국법회 때도 연단에 선 그의 모습은 의연했다. 하지만 두 달 후에 열린 대구 두류공원의 ‘성시화 운동 주도 공직자 명단공개 및 거부운동’ 선언광장에는 그의 흔적이 없었다.

-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갑니까” -

타고 남은 건 항아리에 담긴 한 줌의 재뿐이었다. 어디로 갔을까?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궁금한 일이다. 그러나 돌아서면 천년만년 살 것처럼 모두가 잊어버리는 낯선 영역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하여 송나라 시대에 이루어진 제자와 스승이 나눈 소박한 문답이 절집에 전해져온다.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갑니까?”
“불 꺼진 뒤에 남아있는 한 줄기 띠풀이니라.”

그저 다비 후에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런 꾸밈없이 한 마디 내뱉은 말이지만 또다른 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그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을 뿐인데 보낸 이들의 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럽고 마음 한쪽은 저림과 함께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