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코스프레'
입력 : 2014.11.11 05:31 / 조선일보
김행·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새벽녘 어디서 '쿠당탕탕'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뛰어가 보니 남편이 냉장고에 우유를 잔뜩 엎질렀다. 2.3L 우유통 절반을 쏟았으니 냉장고는 물론 반찬통마다 우유를 뒤집어쓰고 허여멀겋게 앉아 있다. 그 비싼 키친타월을 아낌없이 풀어 칸칸이 흐르는 우유를 긴급처리하는 꼴이란! '저 웬수' 소리가 나오려는 걸 누르고, "우유가 더러운 것 닦는 데 최고래. 떡 본 김에 굿한다고 냉장고 청소해야겠다. 마침 유통기한도 다 됐고." 물론 냉장고 청소한 지 일주일도 안 됐다. 플라스틱 통에 찍힌 유통일자는 11월 15일 11시 14분까지였다.
도리 없이 냉장고 칸막이를 모두 꺼내고 행주를 수십 번 빨아가며 청소했다. 옆에 서 있기 미안했던지 남편이 한마디 툭 던진다. "신(神)이 우유를 쏟은 게 바로 밀키웨이(Milky Way)야. 은하수." "어쩜 그런 시적인 문구를 생각했어? 아침부터 은하수를 보여줘서 고마워." 그야말로 '오 마이 갓'이다. 샤워도 못 한 채 얼굴에 물칠만 하고 출근하는데 요즘 말로 '완전 대박찝찝'이다.
"이러다 피노키오 되는 거 아냐?" 아침부터 분기탱천하니 오만 생각이 다 난다. 그날 저녁 퇴근하니 우리 남편 우유도 사다 놓고 빨래도 널어놨다. 웬일이니? 효과 만방이다. 그래서 피노키오 코스프레 중! 남편이 이 속셈, 알랑가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