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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는 煉炭(연탄)… 가족 덥히며 잿덩이가 된다

도깨비-1 2014. 12. 18. 08:27

 

아비는 煉炭(연탄)… 가족 덥히며 잿덩이가 된다

입력 : 2014.12.18 03:06   

베이비붐 세대 시인과 소설가들
애절한 思父曲 부를 때를 맞아 세상 뜬 아버지 간병기를 적고 강물에 뿌린 유골과도 말 나눠
세월 흘러 거울 속 자식 얼굴엔 아버지가 진하게 印畵돼 있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겨울바람이 며칠째 매섭다. 겨울을 노래한 시(詩)에선 모닥불이나 장작불이 활활 탄다. 질화로 혹은 난로가 온기(溫氣)를 뿜기도 한다. 물론 연탄이 빠질 순 없다. 보일러나 중앙난방은 시의 이미지로 삼기엔 정서적 울림이 부족하다. 그런데 연탄은 겨울나기의 애씀과 안쓰러움을 낱낱이 드러내고 보듬어준다. 이정록 시인이 작년에 낸 시집 '아버지 학교'에 실린 시 '연탄'이 떠오른다.

'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 그 집,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이정록 시인은 쉰여섯에 세상을 뜬 아버지의 삶을 한겨울 연탄에 비유했다. 아버지는 식구들이 떨지 않도록 온몸을 태운 연탄 같았다. 한겨울에도 결코 얼지 않는 생명의 '불구멍'이었다. 집의 가장 낮은 곳에서 집을 훈훈하게 덥힌 연탄이었다. 그런 연탄이 잿덩이가 되듯, 아버지는 부서지기 쉬운 잿빛 인생이 됐다. 헉헉대며 살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연탄재처럼 창백해지고 나서야 더 숨 가쁘지 않아도 됐다. 연탄을 갈 듯이, 아비도 갈 때가 있다.

요즘 한국 문학에선 애절한 사부곡(思父曲)이 늘어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시인과 소설가들이 아버지의 힘든 일생이나 투병(鬪病), 죽음을 저마다 담을 때가 됐다. 소설가 이상운은 최근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란 책을 냈다. 소설책이 아니다. 3년 반 동안 아버지를 간병한 전업작가의 기록이다. 작가는 "아버지는 여든여덟 살이던 해에 병석에 들어 아흔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는 부친이 쓰러지자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이 종합병원으로 모셨다. 그러나 그는 병원의 타성에 젖은 검사와 치료에 실망하고 분노했다. 부친도 집에 가고 싶어 하자 결국 퇴원 수속을 밟았다. 작가는 "아버지가 집에서 생을 마감하게 하는 게 나의 목표"라고 결심했다.

그는 간병인을 고용했지만 밤에는 직접 부친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다음 날 낮엔 틈틈이 소설을 쓰며 지냈다. 1254일 동안 부친 곁을 지키며 살았다. 그는 "사그라져 가는 육체의 추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이 내 속에 생생하게 자국을 남기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간병기를 쓰게 된 동기는 사회적 차원을 지닌다. "우리 사회가 노화와 죽음에 대해 제대로 성찰하자"는 게 책의 주제다. 초고령 환자들의 인위적 생명 연장보다 그들이 품위 있게 죽음을 맞도록 하는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아버지에게 감사했다. 아버지의 투병을 보며 노화와 죽음을 깊이 공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통 말이 없는 분이었던 아버지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박해현의 문학산책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천수호 시인은 최근 시집 '우울은 허밍'에서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둔 딸의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딸의 얼굴을 잊고 첫사랑 연인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내게 전에 없이 따뜻한 손 내밀며/ 당신, 이제 당신 집으로 돌아가요'라고 하면, 딸은 '가장 쓸쓸한 애인이 되어/ 내가 딸이었을 때의 미소를 버리고/ 아버지 연인이었던 눈길로/ 아버지 마지막 손을 놓는다'고 했다.

손택수 시인의 신작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는 2년 전에 타계한 아버지에게 바친 책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지게꾼으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아버지는 숨을 거두기 전 홀로 목욕을 하곤 달력 뒷장에 유언 한 줄을 적었다. "잘 살고 간다, 화장 뿌려, 안녕."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눈을 감았는데, 아버지의 등에 평생 박였던 굳은살인 '못'이 사라졌다. 시인은 기쁨과 회한을 함께 읊었다. '못도 산 자에게 박히는 것, 허리가 굽었던 사람도/ 죽으면 몸이 곧게 펴진다고 하더니/ 한평생 지게꾼으로 산 양반/ 아들도 해드리지 못한 안마를 죽음이 해드린 것인가.' 시인은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혼자서 마지막 의식을 치르시던 아버지의 고독한 밤이 생각났다'고 탄식했다.

그는 아버지 유골을 강물에 뿌렸다. 강물은 겨울에 꽁꽁 얼어붙었다. 마치 시인에게 '어여 건너라'고 권하는 듯했다. 그 얼음은 아버지 음성의 형상화처럼 보였다. '그 옛날 젊으나 젊은/ 당신의 등에 업혀 건너던 냇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연의 일부가 돼서도 아들을 업고 물을 건너고 싶었나 보다. 아니면 아들이 아버지의 등에 업혔던 시절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거나.

올해에도 세상을 뜬 아버지가 많았다. 베이비붐 세대 중 꽤 많은 사내가 스스로 떠난 아버지가 되거나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런데 연말연시가 되면 지금껏 이승을 떠난 아버지들이 철새 떼처럼 되돌아오기도 한다. 해가 바뀌며 자식들의 얼굴에도 주름살이 늘거나 연륜의 고랑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자식의 얼굴에서 아버지가 서서히 인화(印畵)되는 날이 잦아진다. 그렇게 삶은 계속 흐른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