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죽어도 좋고 살면 더 좋고"

도깨비-1 2014. 11. 28. 08:51

 

"죽어도 좋고 살면 더 좋고"

 

입력 : 2014.11.28 05:29 / 조선일보 김한수 문화부 기자

召天·善終·入寂

풋내기 종교기자 시절, 각 종교에서 죽음을 가리키는 용어가 다 다르다는 게 쉬 적응되지 않았다. 불교만 해도 열반(涅槃), 입적(入寂), 원적(圓寂) 등이 골고루 쓰인다. 처음엔 자료를 보내오는 쪽에서 쓴 용어를 이것저것 다 그대로 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입적'으로 단일화했다. 열반은 '불교에서 설(說)하는 최고의 이상향'(한국민족문화대백과)이라 그 이상향에 진짜 가셨는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제(除)했다. 원적은 '모든 덕이 원만하고, 모든 악이 적멸한다'(문화원형 용어사전)는 뜻이라 또 뺐다. 입적은 '고통과 번뇌의 세계를 떠나 고요한 적정(寂靜)의 세계에 들어섰다'는 뜻.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이 단어는 써도 무방한 것 같아 스님들의 죽음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는 '입적'으로 낙착됐다.

[종교, 아 그래?]
천주교는 선종(善終)이라는 용어 하나만 있다. 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선생복종(善生福終)',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끝마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한국 천주교 초창기, 수많은 순교자가 나오던 시절부터 쓰였다고 한다. 신문 용어로 쓰기에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개신교계에서 쓰는 '소천(召天)'이었다. '부를 소(召)' '하늘 천(天)', 글자 뜻으로만 보자면 '하늘의 부르심'이다. 개신교계에서 언제부터 이 단어가 쓰였는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이 용어의 문법적 구성에 대해 개신교계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 '~하다'를 붙여 동사로 쓸 수가 없기 때문. '하다' 혹은 '했다'고 할 수 있는 이는 하나님뿐이다. 그래서 정확히는 '소천됐다' 혹은 '소천당했다'고 써야 한다. '소환(召喚)'과 한가지다. 그런데 '소천됐다'고 쓰자니 또 어색했다. 새 용어를 구해보려는 노력도 있었으나 아직 마땅한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기자는 언젠가부터 개신교 목사님들이 돌아가셨을 때 기사에 '별세' 혹은 '영면(永眠)'이란 일반 용어를 쓰고 있다.

하지만 용어가 죽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 법. 죽음을 빛내는 것은 역시 생전의 종교인다움이다. 쉰이 안 돼 세상을 떠난 한 선객(禪客)은 평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죽어도 좋고, 살면 더 좋고." 그의 장례식장 앞에는 이런 꼬리표를 단 조화(弔花)가 있었다고 한다. "달은 져도 하늘을 여의지 않는다." 과연 유유상종(類類相從)! 생전의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