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응준 소설가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절이 있다. 가령 사업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망해버리는 것과 같은.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 인생 전체가 한꺼번에 파괴된 듯해 극단적인 생각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건 나는 다시 일어났고, 현재에 만족하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착실히 준비 중이다. 어쩌다 넘어진들 앞으로 넘어지면서 단 한 걸음이라도 쉼 없이 전진하려 한다.
아마도 사람의 가장 큰 병은 낙담이 아닌가 싶다. 바닥을 쳐본 자의 프리미엄은 좀처럼 낙담하지 않으며 타인의 고통을 연민할 수 있을 만큼 눈과 가슴이 깊어진다는 것일 게다. 아파 보지 않은 자는 아픈 자의 처지를 절대 모른다. 남이 참 내 맘 같지 않을 적에, 그런 걸 두고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표현한 게 아닐까.
낙담의 경험이란 후유증이 독해서, 겉으로는 분명 회복된 게 맞는데도 속으로는 여전히 잔뜩 곪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이 좌절 속에서 헤매며 저질렀던 어처구니없는 언행들이 고요한 시간일수록 억세게 찾아와 영혼의 나무를 뿌리째 뒤흔드는 것이다. 앙드레 지드는 이렇게 갈파했다. "우리의 피로함은 사랑이나 죄악 때문이 아니다. 지난 일을 돌이켜 보고 탄식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라고.
그러나 기도하듯 바라건대, 이제 우리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그때 힘들었으므로 이미 모든 과오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치른 것이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안한 인간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과거로부터 자신을 놓아주라. 삶은 오로지 현재밖에는 없다. 과거는 망상이고 미래는 몽상일 뿐이다. 어두운 지난날은 아름다운 무늬를 수놓기 위한 어두운 실이었음을 명심하고 도리어 용기를 얻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는 일이다. 당신이 그것으로 괴롭다면 당신은 이미 가치 있는 사람이다. 상처가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위로하는 초능력을 지니게 되니까. 지나친 자의식은 곧잘 자괴감으로 변질되고 만다. 지혜란 결국, 인간이 별것 아님을 순순히 인정하는 대자유의 감각이다. 당신의 영혼은 민들레 홀씨처럼 가벼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