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다시 '대~한민국'을 외치려면

도깨비-1 2014. 5. 19. 11:04

 

다시 '대~한민국'을 외치려면

 입력 : 2014.05.19 05:40/ 조선일보

정우상 정치부 차장
대형 마트에서 월드컵 티셔츠 판매를 시작했지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다. 예년 같으면 붉은 악마 티셔츠와 응원 도구가 불티나게 팔렸겠지만 올해는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월드컵 응원은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월드컵 안 보기'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월드컵 특수(特需)' 이야기가 아니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의 초여름이 되면 우리는 양복과 교복 대신 붉은 티셔츠를 입고 광장에 모였다. 유럽이나 남미처럼 국가적 축제 문화가 없는 우리에게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는 또 다른 축제였다. 지역·이념·세대·계층으로 나뉘어 삿대질했던 사람들도 이때만은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어깨를 걸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문화는 전체주의"라며 냉소했던 사람도 집에서 혼자 캔 맥주를 마시며 속으로 '대~한민국'을 따라 외쳤다. 그런 것이 우리의 월드컵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외침은 자긍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꽤 괜찮은 나라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이었다.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오르든 말든 상관없었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행위는 부모 세대가 기반을 닦은 나라를 아들·딸 세대가 더욱 계승·발전시키겠다는 일종의 공동체적 '주문(呪文)'처럼 들렸다.

올해는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 "침몰한 것은 세월호가 아니라 대한민국" "구속될 사람은 세월호 선장이 아니라 대한민국호 선장"이라는 구호가 난무하고 있다. 야당의 핵심 관계자는 "세월호가 침몰한 게 아니라 대한민국호가 침몰했다"며 "정부·여당이 색깔론으로 대한민국호 침몰 국면을 극복하겠다는 시도야말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동일본대지진 다음 날인 2011년 3월 12일 국내 한 일간지는 1면에 '일본 침몰'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사망·실종자가 2만명에 육박하는 대참사 앞에서 어떻게 그런 제목을 달 수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반면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1면에 '힘내라 일본, 힘내라 동북(東北)'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작은 제목은 '포기하지마 일본, 포기하지마 동북'이라고 했다. 하나는 파괴, 하나는 건설의 메시지였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 일본은 세계가 그들에게 보내준 응원 메시지 '힘내라 일본'을 복구 슬로건으로 삼았다. 후쿠시마(福島) 원전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무능과 관료의 부패를 보며 일본 내부에서도 자학적 구호들이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은 '힘내자, 포기하지 말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비극을 기억하며 치유하는 것은 손가락질이 아니라 격려와 위로다.

탐욕과 무능의 세월호에 탑승하지 않았다면 희생된 아이들은 다음 달 서울광장 어딘가에서 깔깔거리며 '대~한민국'을 외쳤을 것이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한민국 침몰' 같은 파괴와 추락이 아니라 '힘내라 대한민국' 같은 건설을 위한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