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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우리의 '스위트 홈'은 정말 달콤한가

도깨비-1 2013. 5. 6. 18:14

[아침논단] 우리의 '스위트 홈'은 정말 달콤한가

김미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조선일보/입력 : 2013.05.05 23:07 | 수정 : 2013.05.06 17:50

자본주의 영향, 가정에도 큰 변화… '효도가 비즈니스' 돼버린 時流
가족 생계 위해 헌신한 아버지들, '유령' '통장' '시종'으로 전락
가족, 해답이되 유일한 정답은 아냐… '피'가 아닌 '사랑'으로 회복해야


	김미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사진

김미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어린이날은 지나갔고,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스승도 부모와 같다고 하니 스승의 날도 챙겨야 한다. 역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아름다운 날씨에 '종합 선물 세트'나 '만병통치약'처럼 간주되는 가정의 의미가 보태지니, 최소한 5월에는 가정적이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긴다. 그래서 5월이라면 감정 노동도 괜찮을 듯싶다. 그 상대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통계 자료가 이런 '가정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음을 알려준다. 점점 더 가정이 안전지대가 아닌 위험 지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15세에서 24세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가족이 부모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012년에는 35.6%로 10년 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와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노인 학대 가해자 중 아들이 42.1%로 가장 많았다. 반면 성인이 되고서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25~44세 캥거루족은 10년 전보다 1.4% 늘어난 약 116만명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35~44세 중년 캥거루족이 17만4000명에 이르고, 그중 전문대 이상 졸업자가 64.6%를 차지해 중년화와 고학력화가 뚜렷해졌다. 혼인 20년 이상의 중년 이혼율도 26.4%에 달해 4년 이하의 신혼 이혼율 24.7%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심지어 30년 이상 부부의 황혼 이혼율은 10년 전보다 2.4배 증가함과 동시에 1년 전보다 8.8% 증가해서 전년 대비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이런 부모와 자식, 부부간 관계 변화에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스위트 홈'의 환상을 자본주의의 강화 또는 진화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있는 최근의 21세기형 가족 소설에서 그 구체적 실상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박범신의 '소금'은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어머니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희생양인 아버지들의 가출과 죽음을 다룬 최신작이다.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숙맥"이나 "유령", "통장"이나 "충직한 시종"으로 전락했다. "오늘의 아버지들, 예전에 비해 그 권세는 다 날아갔는데 그 의무는 하나도 덜어지지 않았어" 하는 자조적인 말로 "효도가 비즈니스"가 된 세상을 비판한다. 자본주의가 가족에게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된 "빨대"나 "깔때기"를 꽂아 생산성을 빨아먹음으로써 욕망과 소비 중심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김숨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에서도 고부(姑婦)간 갈등을 첨예화하는 것은 노사 관계처럼 맺어진 가족 관계이다. 경제적 이익 때문에 손주의 양육을 부탁한 며느리는 오히려 초라하고 가난한 시어머니를 착취하려 한다. 그러다가 직장에서 해고되자 그동안 '사용'했던 시어머니를 폐기 처분 하려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침을 훔치듯 여자를 훔쳐,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었다"는 며느리의 말은 차라리 적자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이처럼 자본주의라는 여성들의 '공공의 적(敵)'은 교묘하게 진화하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같은 성(性)을 지닌 여성들조차 분열시켜 버린다.

박범신 소설 속에서, 땀을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소금기가 없어 쓰러져 죽은 아버지나, 김숨 소설 속에서 침이 말라가는 고통으로 화석화되어 가는 시어머니는 가족의 허상과 이면을 적나라하게 묘파(描破)한다. 이 소설들에서 가족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소금이나 침은 모두 인체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이 소설들에 따르면, 인체에는 기본적으로 염분이 0.85~0.9% 있어야 하고, 침의 하루 정상 분비량은 1~1.5L다. 너무 과하거나 적어도 문제가 되기에 적정량을 유지해야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소금이나 침으로 대변되는 가족의 생존 전략이자 경제 논리일 것이다.

모든 가족은 위대하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가족 자체가 어떤 문제를 푸는 한 해답일 수는 있어도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가족(the family)'이 아니라 '가족들(families)'을 문제 삼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가족은 무조건 소중하다는 가족 이데올로기부터 우선 의심해 봐야 한다. 가족이 가족답기 위해서는 선천적 유전형질보다 후천적 획득형질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가족에게도 진짜 가족이 생기게 된다. 가족이라는 '미완의 문장'을 완성시켜 주는 것은 '피'가 아니라 '사랑'이다. 최소한 5월에는 가족에 관한 이런 '불편한 진실'을 잊지 말아야 1년 전체가 5월 같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