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고층아파트 슬럼 시대' 온다
논설위원/ 조선일보 2012. 02. 04
박원순 서울시장이 뉴타운에서 철수하겠다는 것은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재개발·재건축은 층수(層數)를 올려 얻은 개발이익으로 주거 공간을 넓히고 환경도 정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새 아파트를 지어봐야 팔리지 않는다. 뉴타운의 개발 비용을 마련하기 어렵게 됐다. 향후 저출산과 인구 정체를 감안하면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용적률 넓히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재건축은 1970~80년대에 지어진 '1세대 아파트'가 대상이었다. 5~10층의 저층·저밀도 아파트를 헐고 20층, 30층짜리 고층·고밀도로 올려 왔다. 예를 들어 100가구 아파트를 재건축하면 원래 아파트보다 넓은 평형의 150가구를 지을 수 있고 잔여분 50가구는 일반분양했다. 이렇게 해 얻은 개발이익으로 재건축 비용을 충당하면서 재산 가치도 대폭 키울 수 있었다. 그래서 지은 지 20년밖에 안 된 아파트들도 재건축을 하겠다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론 15층이 넘는 고층아파트 위주로 지어졌다. 1990년대 초반 개발된 일산·분당·평촌 등도 중·고층 아파트가 주축이다. 재건축으로 새로 지은 아파트 중엔 30층을 넘는 초(超)고층도 많다. 이 고층아파트들이 20년, 30년 뒤 노후화해 다시 지어야 할 상황이 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지금도 10~15층 수준의 중층(中層) 아파트는 낮은 수익성 때문에 재건축 동력이 떨어진다. 용적률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어 아파트 소유주들에게 상당한 추가 부담이 돌아간다. 20~30층짜리 고층아파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100가구를 재건축해 100가구만 새로 지어야 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재건축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을 아파트 소유주들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재건축 기간 동안 임시 거주지를 마련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재건축 비용은 마련할 길이 없고 아파트는 점점 낡아만 가면 '고층아파트 슬럼 시대'가 온다.
수소문했더니 이런 문제를 연구한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으로 있는 정의철 교수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있던 2000년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었다. 당시 조사를 보면 재건축 단지의 평균 용적률은 원래 132%였다가 재건축 후 319%로 1.8배 올랐고 평균 가구수는 252가구에서 449가구로 1.7배 증가했다. 보고서는 "용적률이 200%를 넘는 10층대 이상 아파트는 수익성이 낮아 자력(自力) 재건축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 교수는 "10년, 20년 뒤 겪을 일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이 문제가 썩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은 고층아파트 소유자들이 재건축 충당금을 적립하는 것이다. 설비의 한계수명이 다했을 경우에 대비해 같은 설비를 새로 마련하기 위한 비용을 쌓아두는 감가상각 충당금이라 할 수 있다. 충당금이 쌓이면 아파트를 사고팔 때 충당금까지 인수인계를 하게 된다. 매달 관리비처럼 내는 돈이 많아지고 아파트를 새로 살 때의 부담이 무거워진다. 전문가들 설명으론 아파트 소유주들로부터 매달 일정액의 재건축 보험료를 걷는 '보험 방식'과 투자자들 자금으로 노후 고층아파트를 인수해 재건축한 후 투자 수익을 환수하는 '부동산투자신탁' 같은 방안도 있다. 어떤 식이든 준비를 서둘러 시작하면 할수록 부담이 가벼워진다. 내버려뒀다가는 나중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으로 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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