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원수를 사랑하라?… 사랑해야 할 것들이라도 부지런히 사랑해라

도깨비-1 2012. 1. 28. 15:35

 

[Why] [남정욱 교수의 명랑笑說<1981~1985>]

 

원수를 사랑하라?… 사랑해야 할 것들이라도 부지런히 사랑해라

입력 : 2011.12.24 03:06 | 수정 : 2011.12.25 10:32

'이제 세상에 나아갈 때가 되었으니 조직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한 예수는 제자 모집 공고를 내걸었습니다. '숙식 제공, 후생(後生)복리 완전 보장'.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친히 제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처음 걸려든 건 갈릴리 바닷가 어부인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였습니다. 예수가 말했습니다. "에, 본인이 선포하려는 종교의 개념과 미션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멀뚱거리며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대체 뭐라는 거니?' 잠시 궁리하던 예수는 이렇게 바꿔 말했습니다. "평소 물고기를 잡으시잖소. 방식은 같으니 이제부터는 나와 같이 사람을 낚읍시다". 그 한마디에 그들은 '낚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예수는 공고를 뗐습니다. 그가 찾는 제자들은 글을 읽지 못하고 어려운 말에 소외된 자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는 눈높이에 맞춰 소통할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공자님 스토리텔링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쇼킹'한 발언도 상당히 잦았으니 그 압권은 '원수를 사랑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들은 뒤집어졌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요? 차라리 체제를 전복하라고 하십쇼.

그렇습니다. 우리는 돈 몇 푼 떼어먹고 달아난 사람을 원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늘을 같이 지지 못하고(불공대천·不共戴天) 삼생에 걸쳐 인연을 끊을 수 없는(삼생원수·三生怨讐), 말 그대로 하늘에 사무치도록 한이 맺혀야 '원수'라는 호칭을 달아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고 싶어도 딱히 사랑할 만한 원수가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보스니아에 말뚝형이라는 형벌이 있습니다. 기다란 막대 끝에 날카로운 쇠를 달고 막대에는 돼지기름을 바릅니다. 다음에는 미리 칼로 입구를 넓혀놓은 사형수의 항문에 막대를 박아 넣습니다. 숙달된 형 집행인은 막대를 복부에 밀어 넣은 뒤 중요한 장기에 '기스'가 나지 않도록 기량을 펼칩니다. 막대는 간, 폐를 지나 심장을 스쳐 어깨 근육을 통해 밖으로 삐져나옵니다. 그 상태로 죽을 때까지 사람들에게 전시한다고 하니 인간이 서로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한 다음에야 가능한 악행입니다. 이때! 운이 좋아서, 정말 하늘이 돕고 또 도와서 사형수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칩시다. 이런 경우에나 사형수는 형 집행인을 원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사형수가 고통으로 머리가 돌아버리지 않은 다음에야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말뚝형의 한 단계 위가 예수가 당한 십자가 처형입니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나무에 매달려 죽어가는 한가한 처형 절대 아닙니다. 너무 잔인해서 지면에 차마 못 옮깁니다. 고통의 극한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자신은 이미 용서했으나 혹시라도 '아버지'가 노할까봐 가해자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다시 묻습니다. "그래 내 말대로 원수를 사랑하였느냐." 2천년째 우리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바빠서 사랑까지는 못하고 일단 원수는 많이 만들어 놨습니다. 눈높이의 달인답게 이렇게 대꾸하실 것 같습니다. "과대평가해서 미안. 그럼 당분간은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들이라도 부지런히 사랑해라. 형제나 이웃이나, 마누라나 꽃이나 전봇대나 뭐든. 하다 보면 느는 날도 있겠지."(한숨) 주변에 얼굴 붉혔던 사람 있으면 털장갑이라도 하나 안겨주세요. '나한테 왜 이러는 거니' 뜨악한 표정 지으면 웃으면서 말하세요. 크리스마스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