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아침논단]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도깨비-1 2012. 1. 5. 19:29


[아침논단]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미국 백화점서 소니보다
비싸게 팔리는 한국 가전제품
개방·경쟁이 낳은 선물
외부 자극 없는 조직은 도태
개방으로 피해입은 사람들
돕는 美 TAA법 정신은 필요

  
   장용성  연세대- 미 로체스터대교수/ 2012. 01. 05. 조선일보

 

   얼마 전 미국 백화점의 가전제품 파는 곳에 들렀다. 우리나라 기업이 수출한 상품에 일본의 가전업체 소니(Sony) 제품보다 높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소니' 하면 최고급 가전제품으로 여겨온 필자에겐 격세지감이 들었다.
   이는 개방과 경쟁이 낳은 결과다. 시장을 개방하면 이득을 보는 사람과 피해를 보는 사람이 함께 발생한다. 단순합계로 보자면 이득이 손실보다 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왜 호소력을 가질까?
   시장 개방을 통해 발생하는 이득은 광범위하지만 개개인이 직접 피부로 느끼기가 힘들다. 반면 그 피해는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그 정도 또한 심각하다. 값싼 수입품과 경쟁하는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생계를 위협받는다. 수입품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생산성도 함께 향상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지만 이 또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에 대한 얘기라 호소력이 떨어진다.
   수출하던 기업들에는 더 큰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 성과는 국제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선진 금융서비스나 상품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국내 기업들의 서비스도 한층 개선된다. 예를 들어 뮤추얼펀드의 경우 외국 금융기관이 들어오면서 국내 금융기관의 수수료가 현저히 낮아졌다. 하지만 개별 소비자가 구매하는 양이 적기 때문에 개인이 느끼는 개방의 이득은 그다지 크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정치권의 로비로 보호되는 대표적인 산업이 설탕이다. 높은 보호관세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은 국제가격의 약 두 배를 지불하고 설탕을 구입한다. 미국 소비자 전체가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이 2009년 기준으로 연간 19억달러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보호된다고 추정되는 일자리 수가 2260개라고 하니 일자리 하나에 연간 약 83만달러(한화로 약 10억원)가량이 지불된 셈이다. 개별 소비자들의 설탕 소비량은 얼마 안 되겠지만 나라 경제 전체로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개방으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경쟁에서 뒤처지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개방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는 개방의 이익이 이들에게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장 개방으로 피해를 입은 근로자와 기업의 재취업 및 창업을 돕는 TAA법(Trade Adjustment Assistance)이 제정되었다. 미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 시장 개방을 적극 추진한 케네디 대통령은 이 법의 제정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관세 인하가 국가 전체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만 경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모든 부담을 지워서는 곤란하다.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이들에게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의 일부는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이후로도 미국에서는 굵직한 시장 개방 조치가 취해질 때마다 TAA법도 함께 정비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도 최근 이를 개정한 바 있다.
   개방을 하면 국내 중소기업들이 어려워져 산업구조가 독점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남미의 경우, 오히려 보호무역주의가 산업의 독과점을 심화시켰던 사례가 많다. 정부가 나서서 외부로부터의 경쟁을 막아줄 때 기업은 좋은 물건을 값싸게 공급하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보호 장벽을 쌓기 위해 정치권에 로비하는 일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이와는 달리 국내외에서 다양한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회사는 어찌 되었건 팔릴 만한 물건을 만들어야 하기에 최종 관심사가 소비자다. 세계적인 트렌드와 혁신을 외면할 수가 없다. 다만 국내 소비자를 희생시키거나 시장을 왜곡하면서까지 수출에 특혜를 주는 수출지상주의 정책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시장 개방의 이익은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물건을 보고 써 보며 영감을 얻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배우게 된다.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경쟁이 없는 폐쇄 사회나 조직은 나태해지게 마련이고 장기적으로 도태된다. 한 세기 전 우리가 식민지가 된 것은 문호를 개방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문을 꼭 닫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