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아침논단] 코리아, 다시 國運의 기로에 서다

도깨비-1 2011. 11. 25. 09:51


[아침논단] 코리아, 다시 國運의 기로에 서다

한·미 FTA는 현 정부 업적이자
노무현 정부의 유산인데
군사작전처럼 치른 국회 비준은
與野 모두에 깊은 반성 촉구
FTA는 마법봉 아니라 양날의 칼
국제 표준, 주체적으로 활용해야


 

  - 김 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1. 11. 24. 조선일보
 

   한·미 FTA가 우여곡절 끝에 비준됐다. 이로써 한국은 한·EU FTA와 더불어 본격적인 FTA 시대에 돌입하게 됐다. 비교우위(優位) 원리에 기초한 FTA는 필연적으로 비교열위(劣位)에 있는 품목의 장기적인 도태를 예고한다. 따라서 반대의 목소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당연하다. 하지만 한·미 FTA에 대해서는 유달리 많은 반대와 비판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반대와 비판들이 협상단계에서는 지렛대의 역할도 했고, 비준단계에서는 더 깊은 성찰의 기회도 주었다. 이제는 새로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그러나 우리 국회가 보여준 한·미 FTA 비준 장면은 이런 여망에 대한 낙관을 불허한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노동법 처리나 노무현 정부 시절의 탄핵처리가 불러온 후폭풍을 기억하면 더욱 그렇다. 이 시점에서 여야는 한·미 FTA가 이명박 정부의 업적인 동시에 노무현 정부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고, 보다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국정홍보처를 통해 수행했던 국민 설득 노력에 비하면 국정홍보처를 폐지한 이 정부가 직접 국민에게 설명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군사작전처럼 치러진 표결처리의 성공을 자축하기에 앞서 과거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할 당시, 지금의 여권에 회자됐던 갖가지 억측들도 준열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반대로 야권은 대통령 후보 시절 "반미(反美) 좀 하면 어떠냐?"라고까지 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한·미 FTA를 추진했는가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초반과 임기 후반의 지정학적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기 위해서는 그가 읽었다고 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과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이하 코리아)'라는 책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해전사'는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역사인식의 일단을 보여주는 책이고, '코리아'는 2006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들에게 직접 선물하고,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일독을 권했던 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식이 '해전사'에서 '코리아'로 변화했던 흐름은 노무현 정부가 한·일 FTA 협상을 중단하고, 한·미 FTA로 방향을 틀었던 역사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해전사'가 '일제 대(對) 해방'의 양자구도로 역사를 보는 경향이 강했다면, '코리아'는 '세계 대 코리아'라는 다자구도로 역사를 보려 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정치인 노무현을 정치적 정상까지 밀어올렸던 것은 '해전사'적인 분노였지만, 그가 정상에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코리아'가 묘사하고 있듯이 '네 마리 말에 의해 사방으로 찢기는 거열(車裂)형'에 처해졌던 코리아의 역사적 경험이었다. 동북아시대를 표방하면서 등장했던 노무현 정부가 한·일 FTA를 중단하고, 한·미 FTA로 갔던 것은 동북아에 발을 디디되 과거의 대동아공영권이나 중화질서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지정학적 결단이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겠다면서 한·미 FTA가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모순이다. 역사적 유례(類例)를 찾자면 을사늑약이 아니라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을 끄집어내는 것이 낫다. 당시에도 이만손이라는 유생(儒生)이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를 올려서 서구열강과 통교하는 것을 반대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역시 불평등조약이었음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또한 조선에 대한 국제적 주권 인정을 통해 1897년 대한제국 수립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해주었던 문명사적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
   지금의 야권이 한·미 FTA 폐기를 축으로 통합을 이룩하고, 다시 정치적 성공을 거두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지정학적 현실이 있다. 최선이 안되면 차선(次善),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는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자 이홍장이 주선했던 조미수호통상조약처럼 21세기 초의 한·미 FTA는 양날의 칼이다. 한국을 단숨에 천국이나 지옥으로 바꿔놓는 마법봉이 아니다. 이제 국제적 표준을 주체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쟁점이 되었던 투자자·국가 분쟁 중재재판(ISD)에 대해서도 같은 시각에서 대비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어진 로스쿨의 취지 중 하나가 국제적 역량을 키워서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ISD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재협상을 약속했지만, 영어로 이루어질 중재재판이 불리하지 않을까 하는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공식언어로 영어와 한국어가 함께 사용되도록 합의해놓은 사실도 올바로 알릴 필요가 있다.
   작금의 FTA 정국을 총선과 대선에만 연결시키는 작은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한·EU FTA와 한·미 FTA가 가진 문명사적 의미를 직시하고, 어떻게 하면 위기를 극소화하고 기회를 극대화하여 다시 기로에 선 코리아를 더 나은 코리아로 만들어 후대에 물려줄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큰 정치가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