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최보식 칼럼] "이 알량한 권력을…"

도깨비-1 2011. 12. 16. 15:59


[최보식 칼럼] "이 알량한 권력을…"

현 정권의 힘은
청와대 안에만 갇혀 있고
바깥세상은 사실상 좌파가 쭉 지배
해외순방에서만 대통령은 유쾌하고
귀국하면 귀 막고 싶을 것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 2011. 12. 09.
 

   "이 알량한 권력, 아무것도 해볼 수 없는 권력을…." MB 직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내게 말했다. 이들이 자신과 그 패거리의 밥그릇을 챙기느라 고개를 처박지만 않았어도 세상 바뀌는 걸 더 일찍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현 정권은 '투표'로 집권만 했고, 실제 우리 사회는 좌파세력에 의해 움직여왔다. 대중 다수에 대한 영향력과 정신적 지배가 권력이라면 말이다.
   우파가 승리감을 맛본 것은 550만 표차로 압도적으로 이긴 직후밖에 없었다. 그때는 '국민성공 시대'가 열린다고, 심지어 그를 찍지 않은 사람들조차 "국운(國運) 상승기를 맞은 것 같다"고 합창했다. 하지만 감격은 봄날의 꿈과 같았다. 꿈을 깨자 좌파와 그 동조·추종세력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찰버스 바리케이드로 '명박산성'을 쌓게 될 줄을 몰랐을 것이다.
   그 뒤로 정권의 힘은 청와대 안에만 갇혀 있고, 바깥세상은 사실상 좌파가 쭉 지배해왔다. 자존심 때문에 차마 이런 말을 못 꺼냈을 뿐이다. 현 정권이 정말 국정 운영을 하고 있는 게 맞다면, 제복 차림의 경찰서장이 시위대에 두들겨맞고 "겁쟁이" "차라리 엄마한테 일러주라"는 조롱을 듣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눈두덩이 부은 경찰서장이 "자작극을 벌여 시위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당하지도 않는다.
   대통령의 권위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쫄면 가카 할아버지(대통령)가 빅엿을 먹인다(엿먹이다)"고 보란듯이 말하는 40대가 법복(法服)을 입고 있진 않을 것이다. 승려가 "쥐구멍에 물이나 들어가라. 뼛속까지 친미(親美)라니 국산 쥐는 아닌 듯"이라며 막가파로 가지도 않을 것이다.
   국회에서는 절대다수 집권여당이 맥을 못 추고 최루탄을 터뜨려도 감히 고발하지 못한다. 거리에서 군중을 불러내는 것도 좌파, 인터넷과 트위터를 장악한 것도 좌파, 젊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좌파 성향의 작가와 연예인들이다. 세상 요소요소마다 이들이 점령하고 연결돼 있다. 한쪽만 건드려도 곳곳에서 벌떼처럼 일어난다. 현 정권은 빈껍데기 집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이런 실제권력 앞에서 대통령은 우물쭈물 눈치만 살펴왔다. 혹시 논란이 되지 않을까, 손해보지 않을까, 지지층이 돌아서지 않을까 계산에 몰두하니 꼭 나서야 할 타이밍을 잡지 못한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같은 편조차 설득하지 못한다. 그는 해외순방에서만 유쾌하고 귀국하면 눈 감고 귀 막고 싶을 것이다. 기업 프렌들리, 법질서, 중도실용, 안보, 공정사회, 일자리 등의 구호는 세상만 어수선하게 만들었지 어느 하나 제대로 매듭지어진 게 없다.
   동반자인 집권여당도 존재이유가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철학과 정체성, 도덕성의 고민은 없다. 친이·친박의 내부 싸움에만 가담해오다, 어느 순간 박근혜 전 대표에게 줄서야 내게 유리하지 않을까를 고민할 뿐이다. 이제는 당을 해체할지, 간판을 바꿔달아야 할지, 그때 나는 어디에 붙어 있어야 할지를 열심히 계산 중이다. 선관위에 디도스 공격을 한 것은, 설령 당 차원에서 개입한 적이 없다고 해도, 집권여당의 이런 정신상태를 보여준 것이다.
   그래도 욕심은 시들지 않는다. 이 지경까지 왔으면 관전하는 대중들도 신물이 났다. 민망해서라도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우파가 재집권해야 한다"고 떠든다. 정권을 쥐여줘도 못 하는데 무엇을 또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한결같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라고만 말하고,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서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동안 좌파정권은 위험하고 무능하다고 했지만, 현 정권 이후로 우파는 욕심만 많고 무능하다는 소릴 듣게 됐다. 이 때문에 "똑같이 무능하다면 차라리 좌파가 집권하면 세상이 조용해지기라도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매일 밤 서울 도심을 점령한 상습시위꾼들을 덜 보지 않겠는가. 그 정권에서는 같은 편인 '깽판 세력'도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을 것이고, 거짓 선동꾼들이 군중의 불평불만을 덜 부추길 것이다. 각종 괴담, 욕설, 유언비어의 대량 생산도 좀 뜸해지지 않겠는가 하는 반어(反語)적 표현이다. 혹시 그때가 되면 좌파 내부를 향해 "자기절제와 균형적 사고가 필요하다" "시민의 양식을 갖고 품격있는 사회를 추구하는 게 우리의 목표" "법과 질서는 지켜져야 한다" "우리가 북한주민 인권에 대해 계속 모른 체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용기있는 좌파 지식인과 언론인도 나올지 모른다.
   이런 기대만 맞는다면 다음 정권이 좌파에게 넘어가도 좋다고 본다. 그들이 이미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를 장악해왔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좌우의 이념으로 무장된 갑옷을 입고 있지 않다. 시대적 소임을 해내는 유능한 정권이라면 좌우를 따지진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