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한국 경제, 이제 무얼 할래?
- 강경희 경제부 차장/조선일보 2011. 11. 16
최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 쪽에 걸쳐 한국 경제의 빛나는 성취를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말에 구매력지수(ppp) 기준으로 1인당 GDP(국내 총생산)가 3만1750달러에 이르러 EU(유럽연합) 평균(3만1550달러)을 앞선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취약한 중소기업, 분배 악화 등 한국 경제의 고민과 약점도 담았지만 전체적인 기사 톤은 선진국들이 지난 몇년간 글로벌 금융·재정위기로 비실대는 사이에 한국은 선방(善防)해 선진국을 거의 따라잡은 성공 모델로 그려졌다. 기사 제목은 '정상에 도달해 당신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한국이 정상에 거의 다 왔다고? 그러니 무얼 할 거냐고? 이건 마치 "합격선은 아직 멀었다. 영어 점수 30점을 더 따야만 취직길이 열린다"며 수험 서적에 얼굴 파묻고 사는 청년 구직자에게, "너의 지금 영어 실력으로도 이미 충분하단다. 그러니 그걸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고, 인생에서 뭘 추구할래"라고 묻는 당황스러운 질문 같다.
객관식 시험에 통달한 한국 수험생들처럼 그동안은 한국 경제의 답도 비교적 명쾌했다. 개개인의 경제 주체들이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무장하고 잠재력을 극대화한 결과의 총합으로 나라 경제가 커지는 성장 가도(街道)를 경험한 덕분이다. 불과 4년 전 성장률 7%, 세계 경제대국 7위를 목표로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유권자들의 표심(票心)을 휩쓸었을 정도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대한민국은 더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채점표가 다 바뀌었다. 산업화 시대에는 '일본처럼 하면 된다'고 달렸고, 외환위기를 겪고는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로 하면 된다'고 달렸는데, 이젠 미국 경제도, 일본 경제도 '하면 된다'의 본보기가 아니다. 심지어 경제규모 7위가 목표였는데, 현재 15위 등수로도 8위인 이탈리아보다 칭찬받는다. 이탈리아의 명목상 GDP는 한국의 2배이지만 GDP 총액보다 더 많은 빚더미 위에 앉아 비틀대기 때문이다.
안으로도 '하면 된다'는 고속성장 시대의 DNA는 감속(減速)시대로 접어드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정답이 아니다. 10·26 보궐선거에서 표출됐듯, 부모들은 '하면 된다'는 눈높이로 허리띠 졸라매고 자녀 세대를 키워냈는데, 낮아진 취업 현실에 '해도 안 된다'는 좌절 세대의 낙폭과 불만만 커져간다. 종종 '하면 된다'는 투지가 넘쳐 '하면 안 된다'는 룰도 뻔뻔하게 어기는 반칙왕들이 활개치는 사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하면 된다'의 리더십 대신, 이젠 해도 되지 않는 것들은 국민들을 단념시킬 줄도 알고, 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설득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의 지혜를 드러내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고민 속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성장률 대신 고용률·행복지수 같은 지표를 중시하겠다는 답안을 선보였고, 잠재적 대선 후보인 안철수 교수는 가진 주식의 절반을 내놓겠다고 한다.
'하면 된다'는 정답을 들고 가속 페달을 밟아온 지 반세기 만에 한국 경제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관식 문제가 던져졌다. 이코노미스트에도 속시원한 해답은 없었다. 해외의 족집게 과외교사도 사라졌다. 정치지도자들도, 유권자들도 지금까지 치러보지 못한 유형의 문제로 리더십을 시험을 치고 답안의 점수를 매기면서, 한국 경제는 자기주도 학습 단계로 들어서야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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