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동서남북] 좌파의 면죄부

도깨비-1 2011. 9. 7. 20:37


[동서남북] 좌파의 면죄부

 - 선우정 산업부 차장/ 조선일보 2011. 09. 07. 
 

   1979년 4월 27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반포동의 한 기업체 사장 집에 4인조 강도가 침입했다. 이들은 경비원을 칼로 찌르고 비서를 묶은 뒤 집안을 뒤졌다. 하지만 칼에 찔린 경비원이 집 밖으로 나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달아나다가, 그중 1명이 비명을 듣고 달려나온 주민들에게 붙잡혔다. 이들 일당은 5개월 전에도 서울 휘경동 기업체 사장 집에 선거운동원을 가장하고 침입해 가족을 칼로 위협하고 금반지 등 금품을 털었다.
   이 삼류 강도질이 민주화운동으로 둔갑한 것은 27년 후인 2006년이었다. 정부 조직인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이런 행위를 "유신체제에 항거하기 위한 민주화운동의 일환"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보통 강도였다면 영원히 남을 전과(前科)가 훈장으로 변한 것은, 이들이 혁명을 강령으로 내걸었던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달아나다가 붙잡힌 강도 이모씨는 훗날 장관 물망에까지 올랐고, 일찍 숨을 거둔 강도 김모씨는 '전사(戰士) 시인'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리며 지금도 일부의 존경을 받고 있다.
   사실 강도질은 아무것도 아니다. 1989년 5월 1일 학내 문제로 시작한 농성장에서 화염병을 집어던지다가 경찰관 7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부산 동의대 사건 관련자의 행위도 민주화운동 과정이라고 인정받았다. 2002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는 "살인에 고의가 없었고 통상의 시위방식에 따라 화염병을 사용한 것이 인정되므로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아리송한 논리로 방화치사상 범죄인들을 민주화운동 기여자로 만들었다.
   '민주화'란 이름의 면죄부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 결정 이전부터 좌파 스스로가 발급하던 특권적인 전유물이었다. 일반인을 경찰 프락치로 몰아서 10일 동안 감금 폭행한 1984년 서울대 폭행사건은 연루자들의 집요한 주장으로 당국의 조작수사 논란만 부각됐다. 몽둥이 고문, 주전자 물고문같이 수사당국이 밝힌 운동권의 폭력행위는 역사 속에 묻혔다. 당시 고문당한 사람들은 프락치로 몰린 멍에를 안고 낮은 곳에서 살고 있지만, 사건에 연루된 유모씨는 장관, 윤모씨는 국회의원, 이모씨는 변호사 등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이런 경우도 있다. 1984년 서울 강변도로에서 횡단하던 일곱 살 어린이가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차량을 운전한 사람은 입만 열면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던 유명 성직자였다. 당시 언론은 이 사건을 사회면 1단 기사로 취급하거나 아예 다루지 않았다. 경찰도 이 성직자를 불구속 입건하는 데 그쳤다. 도로로 뛰어든 어린이를 피하지 못해 일어난 단순사고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효순·미선양 사망사고 당시, 이 성직자가 만든 사제단은 미군이 일부러 일으킨 사고가 아님에도 "살인 미군의 회개를 촉구한다"며 단식기도회를 열었다. 일곱 살 어린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고를 두고 누군가 "살인 성직자" 운운했다면, 그 가혹함을 그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좌파의 세상에는 참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은 냉정하게 단죄하지만 자신은 강도질, 치사상(致死傷), 물고문까지 너그럽게 면죄하는 세탁 시스템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에 이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까지 싸고도는 요즘 행동을 보면 조만간 그들의 면죄부 목록에 뇌물까지 추가할 모양이다. 세 치 혀로 세상을 홀리는 그들의 재주가 신기하기도 하고, 때론 부럽기도 하다. ▣

남민전 사건 심의대상자 33인 명단 및 활동 내용
오창엽 기자 메일보내기

< 제162차 본위원회 ‘남민전’ 사건 심의대상자 명단 >


연번  성명  생년월일  인정유형  비고(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1 이재문 34-07-09 명예회복(보류) 사망(심의중) 사형(1981. 11. 22. 옥중사망)
 2 신향식 34-03-01 명예회복(보류) 사망(보류) 사형(1982. 10. 8. 사형집행)
 3 이해경 40-04-25 명예회복(보류) 무기징역
 4 최석진 51-04-12 명예회복(인정) 상이(심의중) 무기징역
 5 박석률 48-11-16 명예회복(인정) 상이(심의중) 무기징역
 6 김남주 46-10-16 명예회복(인정) 상이(심의중)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
 7 이수일 53-04-10 명예회복(인정)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
 8 박석삼 55-12-18 명예회복(인정)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
 9 임규영 53-10-04 명예회복(인정)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
10 노재창 54-07-26 명예회복(인정)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
11 윤관덕 53-09-04 명예회복(인정)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
12 정만기 47-06-01 명예회복(인정) 상이(불인정)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13 백정호 42-01-20 명예회복(인정)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14 임준열 41-01-15 명예회복(인정)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15 이학영 52-04-16 명예회복(인정)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16 최광운 52-10-05 명예회복(인정)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17 이  강 47-07-23 명예회복(인정) 상이(심의중)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18 최평숙 38-05-03 명예회복(인정)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19 김정길 51-12-06 명예회복(인정) 상이(심의중)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20 황철식 52-09-16 명예회복(인정)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21 김특진 51-01-04 명예회복(인정)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22 권오헌 37-03-10 명예회복(인정)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23 조봉훈 53-08-27 명예회복(인정) 징역 8월 자격정지 8월
24 김기영 54-02-21 명예회복(인정) 상이(일부인정)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25 김승균 39-07-12 명예회복(인정)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26 김영철 53-09-01 명예회복(인정) 상이(일부인정)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27 김정자 53-05-26 명예회복(인정)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28 나강수 43-01-30 명예회복(인정)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29 박광숙 50-07-21 명예회복(인정)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30 박남기 54-10-10 명예회복(인정)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31 신우영 47-07-23 명예회복(인정)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32 장미경 56-03-27 명예회복(인정)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
33 신동규 43-07-20 명예회복(불인정) 항소심 무죄판결
(※ 이상 33명 중 29명에 대하여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무죄판결을 받은
신동규에 대해서는 불인정함. 무죄판결은 본 법의 명예회복 대상이 아님.)


□ 별첨 : 주요 관련자 약력 및 활동

최석진(1951. 4. 12.생, 남민전 청년학생위원회 총책, 무기징역)
- 1968. 3.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 6․8 부정선거규탄대회, 3선개헌 반대시위, 유신체제 반대시위 등에 참여하고,
- 1976. 12. 하순 남민전 산하 민주투쟁국민위원회에 가입하고, 1977. 1. 남민전 조직원으로 가입하여, 같은 해, 11. 22. 남민전 청년학생위원회 총책으로 활동하면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민중의 소리’, 각종 유인물 등의 제작 및 배포 활동을 주도하고, 반유신 활동을 전개한 김기영, 차성환, 이수일, 노재창 등 학생운동가들의 민투가입을 추진, 민주구국학생연맹, 민주구국교원연맹, 민주구국농민연맹 등의 결성 등 남민전의 간부로서 반유신활동을 위한 조직사업을 주도하였음.

박석률(1948. 11. 16. 생, 남민전 청년학생위원회 호남지역책, 무기징역)
- 1970. 2. 25. 서강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 1973. 10. 서강대학교 C관 휴게실에서 유신반대 집회 및 교정촛불시위를 주도한 것을 이유로 퇴학처분을 받고, 1974. 4. 소위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하여 징역 7년형을 선고 받고,
- 1977. 10. 22. 민투 및 남민전 조직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같은 해 12. 6. 남민전 청년학생위원회 호남지역책으로 임명된 후 “격! 몰아내자 박정권” 등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각종 유인물의 제작 및 배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김남주, 조봉훈, 박석삼, 이학영, 김종삼 등 민청학련 관련 학생활동가들을 민투 조직원으로 가입시키는 등 남민전의 간부로서 주요 활동을 주도함.

김남주(1946. 10. 16. 생, 남민전 조직원, ‘민중의 소리’ 편집자, 징역 15년)
- 1969. 3. 전남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 3선 개헌 반대 시위를 주도하고,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 ‘함성’지 제작 배포와 관련하여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고, 1974. 7.부터 ‘창작과 비평’, ‘씨알의 소리’ 등에 저항시를 게재하고,
- 1978. 9. 민투 조직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남민전 기관지 ‘민중의 소리’에 저항시를 게재하고, 1978. 12. “격, 때는 왔다. 드디어 때는 왔다. 박정희 폭정에 항거하여 독재자 박정희를 장사지낼 날은 왔다”와 같은 유신체제 비판을 위한 유인물 제작 및 배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함.

이수일(1953. 4. 10. 생, 민주구국학생연맹 책임지도위원, 징역 15년)
- 1971. 3. 경북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 학생운동 써클인 ‘정진회’ 회원으로 교련반대 시위 등에 참여하는 등 반유신운동을 전개하고, 1974.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여 ‘사회문제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반유신운동에 참여하고,
- 1978. 10. 22. 민투 조직원으로 가입한 이후, 1979. 2. 민주구국학생연맹 조직지도위원 및 책임지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미항쟁의 불꽃을 박정권 타도의 횃불로” 제하의 유인물 배포 활동 등을 주도하는 등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각종 유인물 배포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함.

임준열(필명 임헌영, 1941. 1. 15. 생, 남민전 조직원, 징역 5년)
- 1964. 3.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한 이후 경향신문사 기자, 월간 ‘다리’지 기획실장 겸 주간으로 활동하면서 문학평론 활동을 하고, 1974. ‘한양’지에 박정희 정권 비판 글 게재 및 문학인 61명 개헌지지 성명에 참여한 것을 이유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은 바 있으며,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회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 1976. 11. 민투 조직원으로 가입한 이후, 1977. 1. 박정희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유인물 초안을 작성하고, 1978. 1. 새해를 맞이하여 각계 인사들에게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 내용을 담은 비판 글을 작성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함.


※ 남민전 주요 관련자들의 최근 활동사항

- 이수일(전 전교조 위원장)
- 이학영(한국 YMCA 사무총장)
- 임준열(민족문제연구소장)
- 권오헌(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
- 차성환(부산민주공원 관장, 심의 중)
- 이재오(한나라당 원내대표, 미신청)
- 홍세화(한계레 신문 시민편집인, 미신청)
- 이영자(신향식 미망인, 유가협 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