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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데스크] 6·25 전쟁의 '불편한 진실'

도깨비-1 2011. 6. 26. 23:00

[조선데스크] 6·25 전쟁의 '불편한 진실'

  강철환 동북아연구소 연구위원/ 2011.06.24. 조선일보 

 

   북한에 있던 1989년경 대북(對北)방송인 KBS 한민족방송(구 사회교육방송)을 친구들과 접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6·25 전쟁의 진실이었다. '노동당 간부들에게'라는 코너를 맡아 매주 북한 정세를 분석하며 날카롭게 비판하는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당시 남한 방송을 청취하던 북한 엘리트들에게는 '스타'였다. 6월 25일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강 전 장관은 "만약 남한이 북침을 계획하고 먼저 선제공격했다면 어떻게 서울을 3일 만에 점령당하고, 한 달 만에 부산까지 밀렸겠느냐?"며 6·25 당시 남한은 전쟁 준비는 고사하고 무방비 상태였다고 말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일격에 남한을 공격한 것은 북한이며, 6·25 전쟁은 김일성이 결정하고 저지른 침략전쟁이라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라디오로 듣는 순간 머리를 망치에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함께 들었던 친구들도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강 전 장관의 말을 요덕군에 있는 인민군 군관(장교)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들 역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선제공격을 당한 쪽이 곧바로 밀고 내려가 반격한 전투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김씨왕조는 정말 싫지만, 남한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바로 '6·25 전쟁의 원죄(原罪)' 때문이었다. 전쟁을 일으켜 우리 동족 수백만 명을 죽게 한 미제(美帝)와 남조선 괴뢰들의 죄행은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황해도 신천군에 가면 북한 사람은 물론 북한에 오는 외국인에게 무조건 구경시키는 신천박물관이 있다. 6·25 전쟁 때 미군이 저질렀다는 야만적인 살육행위들을 전시한 곳인데, 이곳을 보면 미국에 대한 증오심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 신천은 지주와 빈농·머슴 사이에 벌어진 계급투쟁으로 서로 살육을 벌인 현장이다. 그런데 그곳을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장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얼마 전 하나원의 탈북자들에게 강연하면서 "6·25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북한이 일으켰다"고 답변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하나원에 와서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진심으로 남침을 믿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연 한 번 듣고 오래 가져왔던 생각이 바뀌기는 어렵다. 북한의 세뇌교육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집요하고 지독하게 이뤄진다. "거짓말도 백 번만 하면 믿는다"는 히틀러 선전상 괴벨스의 논리가 북한에서 적용되고 있다.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전 인민에게 그것을 믿게 했으니 그것을 바로잡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6·25 전쟁의 진실만 제대로 북한에 알려져도 김씨왕조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6·25 전쟁은 북한의 주적(主敵)인 미국과 남조선을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그 증오심이 김씨왕조를 지탱시켜주는 명분이 됐기 때문이다. 대다수 북한 인민이 김씨왕조에 대해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선뜻 대한민국으로 올 수 없는 것은 6·25 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의 가해자를 남한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 통일과 화해의 길은 6·25 전쟁의 '불편한 진실'을 북한 주민에게 알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