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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 일본 민주당, 한국 민주당

도깨비-1 2011. 9. 7. 20:39


[전문기자 칼럼] 일본 민주당, 한국 민주당


   - 신정록 정치 전문기자/ 조선일보 2011. 09. 07.

   2009년 11월 10일 일본 도쿄 시내에 있는 국립인쇄국 이치가야센터에서는 일본 국민의 큰 호응 속에 '예산 공개편성' 행사가 시작됐다. 이는 사실상 54년간 이어져 온 자민당 독주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 집권한 민주당이 국가의 살림살이를 모두 뒤져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일반 전문가들이 공무원들을 불러놓고 2010년도 예산을 다시 짜는 모습에 일본 국민은 열광했다. 이 일을 총괄했던 행정쇄신 담당 대신은 "정치에 문화대혁명이 시작됐다"고 했다.
   일본 민주당이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또 있었다. 그해 8월 30일 치러진 총선거에서 제시한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어린이에게 한 달에 2만6000엔씩의 수당을 주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는 데만 매년 5조4000억엔이 필요했다. 5조4000억엔은 일본의 1년 방위비보다 9000억엔이나 많은 액수다.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고교 수업료 무료화 등 핵심공약에 들어갈 돈을 모두 합하면 2013년에 16조8000억엔이 추가로 필요했다. 일본 민주당은 이 가운데 9조1000억엔을 공공사업 축소와 보조금 개편 등 세출입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했다.
   '예산 공개편성' 행사는 2010년 10월까지 계속됐다. 일본 언론들은 작업이 시작될 때만 해도 "오늘 얼마가 절감됐다"는 식의 보도를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수퍼컴퓨터 개발 예산을 축소하겠다는 결정에 노벨상 수상자들이 들고일어나자 없던 일이 됐다. 일본올림픽위원회가 요청한 선수훈련비가 대폭 삭감되자 체육인들이 들고일어났고 또 없던 일이 됐다. 결국 '예산 재편성' 작업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끝났다. 그리고 민주당 정권은 공약을 하나씩 포기하더니 지난 8월 초에는 아동수당도 없애기로 했다.
   한국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2012년 대선에서 이길 경우 차기 정권 5년간 시행할 복지공약의 틀을 공개했다. 전면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입원비의 10%만 내는 무상의료 제도를 도입한다는 내용이었고, 반값등록금도 포함됐다. 소요 재정은 매년 늘어 2017년에 22조원에 이른다는 추산이었다. 민주당은 소득세·법인세 감세 철회 등 세출입을 구조조정하고, 복지제도를 개혁하면 세금 신설 없이도 22조원을 훨씬 넘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등 야권이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나 무상복지 자체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북유럽 국가들이 보편적 복지를 시작한 것도 노동자들의 삶을 방치할 경우 자본주의 자체에 위기가 온다는 생각이 힘을 얻으면서였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형편에 감당할 수 있느냐다. 2017년에 필요하다는 22조원은 올해 국가예산(309조원)의 7%가 넘고, 국방예산(33조원)의 67%에 해당한다. 29일 발표된 민주당 보고서에는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 큰 제목만 있지 구체적 내용이 없었다.
   기자도 일본특파원 시절 두 아이 앞으로 한 달에 2만6000엔(제도 도입 초기에는 1인당 1만3000엔이었다)의 수당을 받았다. 기분은 물론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