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소설가 이청준이라면 또 뭐라 했을까
김광일 논설위원/ 2011년 06월 21일 조선일보
소설가 이청준은 늦은 밤 전화를 걸곤 했다. 웬만해선 남 싫은 소리 안 하는 점잖은 분이었는데 영 참을 수 없다 싶으면 "아까 저녁에 소주 한잔 했소" 하면서 말머리를 꺼냈다. "옛날 말고 요즘 '고무신'과 '막걸리'는 뭔지 알아요? 그것도 모르면서 뭔 기자를 한다요?" 하고 퉁을 놓는 척하다가 "국민 위한다는 사람들은 대개 국민을 볼모로 잡는 수가 많소" 했다. 살아생전에 이청준은 세대를 뛰어넘는 이쪽저쪽에 인기영합주의의 헛바람을 자주 보았던 것 같다.
과거에 유권자들의 표를 싼값에 농락했던 '고무신'과 '막걸리'가 오늘날엔 '반값 등록금'과 '공짜 급식'으로 진화했다고는 차마 말 못하겠다. 상황과 여건은 너무도 많이 변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도 "돈 없어 공부 못했다"고 하면 엄청난 사회적 불의(不義)를 당한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여·야 정치인들은 그 정서를 파고든다. "아니 애들 밥 좀 먹이겠다는데…" 하고 치고 나오면 그 다음은 말문이 막히게 돼 있다.
요상하게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선거를 여러 번 치러본 정치인일수록 "결국 팔은 안으로 굽고, 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고 믿는다면 우리 정치문화는 아직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초년병 유권자인 대학생의 손을 잡으며 '반값'을 약속하고, '공짜 급식'은 이제 움직일 수 없는 대세가 됐다고 못박는다면 그들은 누군가의 미래를 볼모로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단 유럽만이 아니다. 경제성장과 복지구현 정책에서 우리보다 앞선 경험을 가진 나라들은 '곳간을 채우는 정권'과 '곳간을 비우는 정권'이 시계추처럼 임무교대를 해왔다. 곳간을 채워야 할 정권마저 포퓰리즘의 회오리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곳간에는 채무증서만 쌓였다. 좌우를 막론하고 집권당을 이끄는 지도자는 당선 직후부터 임기반환점을 돌 때까지 몸에는 좋지만 입에는 쓴, 철저하게 곳간을 채우는 비인기 정책을 폈다. 결승점이 보이면 그때서야 슬슬 곳간을 풀어 다음 선거와 정권 재창출에 대비했다. 그러다 삐끗하면 시위대가 거리를 메우고 대통령은 몸을 숨기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서울을 책임진 시장이 부잣집 아이에겐 공짜점심을 줄 수 없다며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선택했다. 그러자 당 대표에 출마한 같은 당 의원이 말렸다. 반대당과 타협하라는 것이다. 타협을 권하는 말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듣기에도 일리 있어 보인다. 200억원 가까이 들어간다는 비용은 둘째치고, 주민투표에서 졌을 경우 뒷감당도 쉽지 않겠고, 또 주민투표를 이겨도 사태는 더 복잡하게 꼬이지 않을까. 하지만 양보와 타협 못지않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치열한 논리 싸움으로 서로의 원칙을 확인하는 일도 보고 싶은 정치문화다. 프랑스에선 당원(黨員)을 '밀리탕'이라고 부른다. '싸우는 사람'이란 뜻이다. 합의가 불가능해지고, 법이 정한 마감이 지났을 때는 투표가 원칙이다. 이것을 '밀어붙인다'고 하거나 '강행처리'라고 부른다면 우리 정치문화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어디일까 난감해진다.
아는 사람들끼리 "밥 한번 먹자"는 말도 민망할 만큼 온통 구렸다는 요즘 그나마 투명한 행사가 투표다. 학부모이기 이전에, 서울시민이기 이전에 우리는 공화국 국민이다. 공익을 함께 책임진 유권자로서 어떤 정책이 인기영합 헛바람인지 판단하려면 투표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이청준이 빙긋 웃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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