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老兵의 '잊히지 않은 전쟁'
김신영 뉴욕특파원/ 2011. 06. 25. 조선일보
지난 21일 미국 뉴욕 한국총영사관의 한 행사에 참석한 6·25전쟁 참전용사 살바토레 스칼라토씨는 자주 꿈에서 한국 어린이 3명을 만난다고 했다. 60년 전 만난 전쟁고아들은 그의 의식 속에 또렷하게 살아 있다. 꿈속에서 아이들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그를 애처롭게 올려다본다. "여섯살, 일곱살쯤 됐을까. 여자 아이 2명은 다 해진 옷을 입고 엉엉 울고, 남자 아이는 파편에 맞아 뚝뚝 피를 흘리고 있었다네. 놀란 나는 남자 아이를 야전병원으로 데려다 주었지. 나중에 들었는데 여자 아이들은 영등포에 있는 보육원에 맡겨졌고 남자 아이는… 목숨을 잃었다고 하더군." 지팡이를 짚은 벽안(碧眼)의 노병(老兵)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의 손주 3명을 볼 때마다 전쟁터의 아이들 모습이 떠올라 괴롭다고 했다.
해병에 자원입대할 때 스칼라토씨는 18세였다. 그는 1951년 10월부터 중공군의 수류탄에 부상한 1952년 7월까지 수십 차례의 치열한 전투에 참가했다. "1952년 7월 14일. 왼쪽 다리, 목, 그리고 머리." 스칼라토씨는 부상당해 쓰러진 날짜를 또렷이 기억했다. 후송 헬기의 조종사는 그를 구호선에 내려주며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는 모르핀(진통제)을 맞아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조종사의 마지막 말만은 선명하게 들렸다고 한다. "헬기가 너무 흔들려서 미안하네. 행운을 비네. 셈퍼 파이(Semper fi·'충성'을 뜻하는 미 해병대 구호)!"
스칼라토씨는 반세기 넘도록 지갑 속에 전우(戰友) 3명의 사진을 넣고 다닌다.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둔 젊은 사병들은 전쟁고아들과 마찬가지로 종종 그의 꿈을 찾아온다. 중공군의 눈을 피해 시체 위에 엎드렸을 때 코를 찌르던 악취, 남성들이 모두 사살된 한 농장의 스산한 적막, 그리고 직접 땅에 묻어 주었던 이름 모를 60여명의 희생자…. "유혈이 낭자한, 끔찍한 전쟁이었다네."
그는 워싱턴DC에 있는 6·25전쟁 추모공원에 가본 적이 있는지 물으면서 추모비엔 두 개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잊힌 전쟁, 잊힌 승리'." 뉴욕주(州) 6·25전쟁 재향군인회장을 맡고 있는 스칼라토씨는 미국의 현충일과 재향군인의 날마다 지역의 고등학교를 찾아 '잊힌 전쟁'의 생생한 기억을 풀어놓는다. 올해 8월쯤엔 미국에 있는 한인 유학생들과 한인 2세들을 대상으로 6·25전쟁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 청소년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6·25전쟁에 대한 그들의 무지(無知)에 마음이 상했기에 기획한 일이다.
지난해 6월 서울을 찾은 스칼라토씨는 새벽 1시쯤 코엑스 부근을 걸었다. 높이 뻗은 건물과 화려한 불빛은 뉴욕의 번화가를 연상케 했다. "한국의 경제수준이 세계 11위라는 뉴스를 읽을 때, 위성사진 속 한국의 밝은 불빛을 볼 때 나는 생각한다네. 우리는 60년 전 지지 않았다고 말일세." 팔순을 바라보는 노병 스칼라토씨는 '잊힌 전쟁, 잊힌 승리'를 거부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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