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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리 아이들이 함께 배워야 할 4·19와 이승만

도깨비-1 2011. 4. 21. 16:55


[시론] 우리 아이들이 함께 배워야 할 4·19와 이승만


 김명섭/연세대 정치외교학과교수 / 2011.04. 21 조선일보

 

지난 3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한 국제학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새로운 학문 경향 중 하나는 '생각의 힘'이 정치 변동에 미치는 역할이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 토대에 의해 생각이 결정된다는 주장이 각광받던 때와는 확연히 대조되는 동향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마디마디에도 생각의 힘들이 맞서는 치열한 대치점들이 존재했고, 그 지점에서 우리의 운명이 갈라졌다.
   우선 '독재 대(對) 반독재'. 이승만 독재의 대척점에는 국립 4·19 민주묘지에 잠든 4·19 민주청년들이 있다. 수십년 동안 대학 캠퍼스의 봄은 4·19 기념식에서 시작되곤 했다. 나른한 봄기운을 깨우고, 젊음의 혼(魂)을 일으켜 세웠던 4·19 민주청년들의 희생정신이 대한민국 민주화의 정신적 동력이 되었다. 자랑스러운 4·19 혁명정신은 북한의 3대 세습 독재가 무너질 때 완성될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격류를 갈랐던 또 다른 생각의 대치점은 '제국주의 대 반제(反帝)' '공산주의 대 반공(反共)'이었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1945년까지 동북아를 휩쓸었던 일본제국주의와 1917년 볼셰비키 집권 이후 1975년 인도차이나 공산화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강타했던 공산주의라는 두 거대한 생각의 파도가 충돌할 때 두 개의 파도에 모두 맞서면서 운항했던 대한민국호(號)를 초기에 이끈 것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 이승만과 4·19가 대립했지만, 양자는 같은 배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4·19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이승만을 기억하려는 이유는 이승만이 겨뤘던 모택동이 8000만명에 이르는 중국공산당원들에게 받고 있는 존대(尊待)가 부럽기 때문이 아니다. 이승만의 적수였던 스탈린·히로히토·김일성이 아직도 누리고 있는 숭배를 모방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러한 신격화(神格化)는 이승만이 무기수로 옥고를 치를 때부터 혐오해 마지않던 것들이다. 적어도 '청년 이승만'과 '4·19 민주청년'은 긴 사상사적 흐름에서 같은 계보 위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자 함이다.
   오늘날 우리는 북한동포를 인질로 삼고, 천안함 폭침의 진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독재정권과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륙적 둔사(遁辭)로 일관하고 있고,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교육하겠다고 고집한다. 6·25전쟁을 한국이 일으켰다고 뒤집어씌우던 북쪽의 공산주의자들과 겨루던 와중에, 독도를 지키기 위해 이승만 라인을 선포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경험과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공동체를 위해 몸을 던졌던 4·19 민주청년들의 정신이 모두 소중할 수밖에 없는 준엄한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이다.
   망각을 통한 화해가 아니라 기억을 통한 화해로 가기 위해서는 정당한 절차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 실기(失機)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아직도 4·19혁명을 북쪽의 혁명 아닌 '혁명' 전통들과 연결시키고, 4·19 민주혁명의 '민주'를 '인민민주주의'의 '민주'와 혼동하는 생각의 지체(遲滯)가 한반도에 잔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재자 이승만'이 4·19 민주혁명에 의해 부정됨으로써 '혁명가 이승만'이 추구했던 반제반공의 자유민주 공화국이 공고해질 수 있었던 한국근현대사의 역설은 휴전선 남북의 우리 아이들이 함께 배우고 간직해야 할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