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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옥주현’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도깨비-1 2011. 6. 1. 14:38
‘옥주현’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10601094304933

출처 :  [미디어다음] 연예 
글쓴이 : 엔터미디어 원글보기
메모 : -음악 판의 개혁, 방송에 맡겨서는 안된다
-[서바이벌 사회에 고함 (上)]

[엔터미디어=나도원의 오늘 음악이 건넨 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주머니칼을 손에 든 사람이 사막이나 밀림에서 나무를 비벼 모닥불을 피우고 나뭇가지를 잘라 물을 마신다. 도마뱀과 굼벵이처럼 평소 먹기 힘든 음식을 적당히 요리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외국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핵전쟁이 터지거나 혜성이 북미대륙으로 돌진하지 않는 이상 도무지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기술을 배우러 돈을 내고 서바이벌 캠프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이들도 있다. 이 때 '생존'은 누군가를 밟고 서는 것이 아니라 가혹한 환경에서 혼자의 힘으로, 혹은 여럿이 힘을 모아 살아남는 것을 의미한다.

옥주현이 '나는 가수다'에 처음 출연하여 1위를 차지했다. '나는 가수다'는 창궐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들과 달리 현역의 프로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들이 기성곡을 부르는 것은 팬 서비스 차원의 갈라쇼에 가까운 것인데, 여기에 점수를 매기고 등수를 나눔으로써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여타 프로그램들과 다른 '격'을 가질 수 있었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관심은 이 두 가지 요인의 결합에서 나온다. 그래서 언뜻 보기엔 '핑클' 출신의 옥주현이 출연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만도 해 보인다. 그런데, '일인다표'라는 방식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결과로써 무언가를 보여준 셈이 되었다. 애초에 자격이 없지도 않았다. 옥주현, 가수 맞다.

문제는 '나는 가수다'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게 상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맹점이 있다. 아니, 맹점이 더 크다. 많이 얘기한 바이지만 가수에게 가창력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가창력의 한 부분일 뿐인 성량과 기교를 위해 몇몇 가수들이 감정과잉으로 치닫고 마는 것은 우리 현실에선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가창을 감상하기엔 최적이지만 표현의 기법과 달리 표현의 내용은 깊지 않아 애석했던 일류 보컬리스트들의 앨범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 훌륭한 아티스트이자 가수인 조동진장필순, 밥 딜런과 커트 코베인이 여기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동물원'의 핵심이었던 김창기에게 미션곡으로 '스틸 하트'의 'She's Gone'이 주어진다면? 상상만으로도 치아가 떨린다.

냉정하게 말하여 원곡을 듣는 편이 나을 (리메이크도 아니고) 뻔(뻔)한 편곡과 노래방 스타일의 열창을 왜 들어야 하는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무대에서 울며 내려오는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왜 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미사리가 멀면 동네 라이브 카페를 찾아 기본안주를 시켜놓고 앉아 있어도 그 정도는 하는 분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 오래 전, 대전의 카페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했던 무명의 신승훈도 아마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좋은 배우를 가늠하는 기준은 즉석에서 얼마나 빨리 눈물을 흘리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출연할 작품을 선택하는 능력이다. 임재범이소라 그리고 밴드인 YB의 무대가 남다른 것은 선곡과 편곡, 혹은 선택에 대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소라는 '파격무대' 이전에 자신의 앨범들을 통하여 이러한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임재범의 등장이 주목받은 이유 역시 가창의 기교 때문이 아니라 곡의 해석이라는 음악적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임재범을 재발견했다는 이야기들이다. '시나위' 이후로만 따져도, 고루한 표현을 하면 무려 사반세기 이상을 활동해온 음악인을 이제야 발견했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한 일이다. 음악동네엔 이처럼 '유명한 무명인사'들이 수두룩하다. 대중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본 적이 없을 뿐이다. 특히 방송에서.

여기가 '나는 가수다'를 대한 과도한 지지와 비판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시청자들의 모순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지금껏 그런 음악인들을 시청률에 도움이 덜 된다는 이유로 외면해온 공영 혹은 준공영 방송이 '가수의 진짜 자질'을 내세웠고, 대중은 어떤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 뿐만 아니라 다시 부활한다는 '불후의 명곡'에서도 아이돌의 숨겨진 실력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한다. 왜 실력이 감춰졌을까. 추임새처럼 잠깐씩 내지를 때 말고는 이른바 가창력이 그들의 음악에는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넓은 음역과 풍부한 성량이 필요하지 않은 음악은 수준이 낮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왜 굳이 감춰놓은 실력까지, 필요가 없었던 실력까지 찾아내주어야 할까. 펑크 밴드의 기타리스트들을 불러 모아 잉베이 맘스틴의 곡을 연주할 기회를 주어 '아, 저 친구들도 훌륭한(?) 기타리스트구나'라고 보여줄 필요는 전혀 없으며, 또한 그건 당사자들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아이돌=시청률=대중성"이라는 공식 탓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우후죽순 태어나고 있는 유사한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의 후임 PD는 음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오랫동안 지켜온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생존을 위해 탈락하지 않는 것, 즉 명예가 아니라 불명예를 피하는 것이 생존의 방식인 서바이벌 프로그램들 자체가 방송계의 먹이사슬 속에서 서바이벌 상황에 처해 있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더 크게 보면 기존의 방송사들은 조만간 방송시장으로 진출할 거대 신문사들과도 서바이벌 게임을 벌여야 한다. '공정(工程)사회'는 모두를 조급하게 만든다. "넌 독 안에 든 쥐야."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에 나오는 대사이다. 그리고 한 마디가 더 이어진다. "우리 모두 그렇지만."

그래서 옥주현의 자격 검증은 의미가 없다. 애초에 그가 나올 수 없는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다른 품격을 생명으로 삼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가요시장의 개혁을 선도할 수도 없다. 오히려 대안은 다른 쪽에 있다. "방송이 그다지 많은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상파는 앞으로 더 상업화 될 수밖에 없다. 미디어의 속성상 상업화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막연하다. 장기적으로 음악이 방송을 의지하지 않고도 설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해야 한다."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의 1000회 공연을 기념하기 위해 만난 백경석 PD는 말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음악 판의 개혁과 진짜(?) 가수의 발굴이라는 대의가 갑자기 모두에게 오랜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나 방송사 경영진이든 시청자들이든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생각해둘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오늘도 어느 마트나 상점 앞에서 정신줄 놓고 팔과 허리를 흔들고 있을 풍선인형처럼 매일 매일이 바쁘고, 그게 아니더라도 너무 한가해서 정신이 없다. 그리고 방송이 모든 걸 책임질 수 있는 시대는 지났고, 방송에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시대도 지났다. 주말마다 TV 앞에 놓인 소파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도, 음악의 감동을 다시 느꼈다는 트렌드 리더(reader)의 글이 신문에 실려도, 주말마다 홍대 앞 거리가 취객들로 넘쳐나도, 어떤 라이브 클럽은 많지 않은 의자를 채워줄 관객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집집마다 베란다에 일거리가 쌓여 있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나도원 < 대중음악평론가 > nadowo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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