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아침논단] 소리 없이 맞는 '새마을의 날'

도깨비-1 2011. 4. 18. 14:12


[아침논단] 소리 없이 맞는 '새마을의 날'

건국 60년 최고 업적으로 대중들은 새마을운동을 앞다퉈 꼽는데
한국의 보수·우파들은 이런 역사적 성취를 외면
국가기념일 기껏 만들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나

   전상인/ 서울대교수. 사회학/ 조선일보 2011. 04. 18.

 

   며칠 뒤 4월 22일은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지 처음 맞는 '새마을의 날'이다.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 아는 사람들 또한 그날이 공휴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금방 무심해지고 만다. 하긴 새마을의 날은 국회에서 국가기념일로 '조용히' 태어났다. 표결 결과를 보면 재적 296명, 재석 209명, 찬성 191명, 반대 5명, 기권 13명으로 되어 있다. 반대가 민노당의 몫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 소속 의원 가운데 상당수가 찬성한 셈인데, 한국현대사 평가를 둘러싼 작금의 치열한 이념 갈등을 고려할 경우 참으로 이례적인 광경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새마을운동은 '속임수'였다고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의원들은 새마을의 날이 국가기념일이 되는 데 일조한 것이다. 평소 그들도 내심 새마을운동에 대해 호의적이어서일까, 아니면 DJ의 마지막 저서를 아직 읽지 않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DJ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일까. 이런저런 의문은 새마을운동에 대한 민주당계(系)의 전력(前歷)을 하나 더 기억할 때 더욱더 풀리지 않는다. 새정치국민회의 시절인 1995년, 이해찬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서울시청에서 새마을기(旗)를 내리도록 지시한 바 있었다. 당시 조순 서울시장도 이에 적극 동조했다.
   새마을운동의 국가기념일 제정에 여·야가 모처럼 뜻을 같이한 것은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도 새마을 조직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마을의 날은 4월 22일인데, 전국적 기념식을 5월에 거행하려는 것도 새마을 유관단체의 정치적 영향력 탓이다. 마침 4월 27일이 국회의원 보궐선거일이기 때문에 일정 연기가 불가피했다는 것은 다름 아닌 새마을운동중앙회측의 설명이다. 결국, 이리저리 정치적 생색과 눈치만 두드러지면서 국가기념일 새마을의 날을 경축하기도 얼마간 민망스럽다.
   한국갤럽 조사는 새마을운동을 건국 60년 동안 우리 민족이 성취한 업적들 가운데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오늘날 새마을운동은 또한 지역개발과 농촌운동에 관련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브랜드이다. 그럼에도 정작 새마을의 날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역사적 예우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일반 국민은 새마을운동을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정책사업으로 기억하는 데 반해 민주화 이후의 시대정신은 그것과의 정서적 거리를 한참 벌렸다. 특히 이른바 진보성향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새마을운동에 대해 '관제(官製) 국민운동'이라는 낙인을 거침없이 찍었고 심지어 교육현장에서는 북한의 천리마운동과 동격시하는 교과서도 통용되었다.
   물론 새마을운동에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1980년대 새마을운동의 정치적 변질과 악용은 아직까지도 치명적 상처로 남아 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민들이 숙명적 빈곤에서 벗어나고 농촌지역이 근대사회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 자체는 동서고금을 통해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마을운동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나름 독특한 방식으로 추진된 공공계획의 일대 개가였다.
   그때 그 시절 물적 인센티브는 시멘트나 철근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모든 농촌마을에 최초의 기회는 동일하게 제공하되, 그다음부터는 스스로 노력하는 마을에 대해서 선별적·차별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처럼 근면·자조·협동 등 무형 자원이 정책수단으로 사용됨에 따라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선의의 경쟁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고 바로 그것이 새마을운동의 발단이었다. 서구학계에 신뢰, 연결망, 공동체, 리더십 등을 따지는 소위 사회자본 이론정립되기 이전에 우리나라는 이를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한국의 보수·우파세력이 이처럼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적 경험과 자산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활용하지도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8·15, 4·19, 5·16, 10·26, 6·29 등 정치사적 변곡점(變曲點)만 주목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이는 좌파세력과의 비생산적 논쟁으로 귀결되기 일쑤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진정한 성취와 진보는 경제적 혹은 사회문화적 측면에 있다. 마치 새마을운동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한민국의 적통(嫡統)을 이어받은 보수·우파정권이 분명하다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최초의 새마을의 날을 이렇게 소리 없이 맞을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