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

아내 - 13

도깨비-1 2005. 12. 28. 08:54
 

        아  내  . 13



 애야. 네가 피곤하겠구나. 그래도 무너지진 않아야 한다. 안식을 바란 일은 아니었잖니, 네 외로움을 몰라서는 아니다. 솥뚜껑 같던 손 자락으로 호령하시던 네 팍팍한 가슴의 어른이 계시잖니. 한 여름 장대비 빛바랜 밀짚모자 하나로 다 막으셨던.  가을, 허울만의 풍년에도 큰기침 하나로 그 속 탐 다 이겨내시던. 얘야 꼼짝없이 막혔던 그해 겨울 동안의 눈보라를 기억하니. 한 치 동요 없이 새끼를 꼬시거나 멍석을 틀던 그 기대의 눈빛을. 절망은 치욕이다, 얘야. 세월은 그냥 오고 가는 게 아니란다. 볏 줄기를 타고 오르는 수액의 농도를 모르고서 절망도  희망도 이야기하진 마라. 때로 막힐 수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수심이 깊어 바다가 되는 넉넉함을, 남은 게 없어 일어설 수 있음을. 애야 나는 네 피곤 뒤에서 종달새의 봄을 본단다. 진달래 각혈로 쓰러지셨던 네 어른 우직의 봄이 아니라  오래고 지친 걸음으로도 끝내 이기고 오는 네 싱싱한 풀내음의 봄을.

                                        

'한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짝사랑  (0) 2006.02.22
아내.30 - 사과나무  (0) 2006.02.17
세월  (0) 2005.12.15
아내. 31  (0) 2005.12.14
부 활 (復 活)  (0) 200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