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

부 활 (復 活)

도깨비-1 2005. 12. 14. 23:44
 


               復 活


1. 그 해 겨울 우리는


 그 해 겨울 우리는 습기 찬 기억을 지나 톨스토이의 마을을 여행했다. 거듭된 환멸과 負債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2중의 곡예였다. 삶이나 사랑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불면증과 소화불량과의 싸움은 오래 계속되었다. 낮과 밤은 그 길이를 분간 할 수 없을 만큼 자주 바뀌어 갔고, 환상의 기차는 한 개의 바퀴로도 잘 굴러갔다. 무서운 추위와 바람은 계속되었고 1단 짜리 記事조차 눈사태에 막혀 오질 못했다. 그 해 겨울 復活의 마을에서 만난 것은 좌절이었고 벗어버리기로 한  환멸과 負債를 倍加한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은 좋게 보였고 겨울도 다 좋았다.  그 해 겨울 기도소리는 높았지만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풀려나지 못한 목소리는 풀려나지 못한 채로, 풀려난 목소리는 풀려난 채로 얼어붙었고, 얼음은 꽝꽝한 채 두터웠다. 얼음 위를 곡예 하던 아이들은 자주 코피를 흘렸고 코피는 멈추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은 우리는 얼음지치기에 바빴고, 눈싸움이나 얼음지치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 해 겨울은 정신없이 눈보라 쳤고 눈보라 가운데 동백꽃도 보였다. 빨간, 우리는 그것이 그 겨울을 곡예 하던 아이들의 코피인줄 몰랐고 하얀, 눈송이조차 그것이 우리들의 마지막 순수인 것을 예감하지 못했다. 우리는 자주 표정 없는 아버지를 찾았고 공복으로 쌓여 가는 소주병과 같이 뒹굴었다. 그 해 겨울 우리가 건진 것은 피라미 몇 마리의 허기뿐 이였지만 우리가 마신 소주 몇 잔의 안주로는 넉넉했다. 그래, 그 해 겨울이 아니라 비틀거린 것은 우리였지만 취해 쓰러진 것은 그 해 겨울의 꽝꽝한 추위였다.



2. 그 해 겨울 ‧ 사랑노래


 우리들의 방황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환상의 나라로 띄운 연줄은 자주 헝클어졌고, 그 때마다 우리는 안달했지만 어느 곳에도 다가갈 수 없었다. 우리들에게 사랑은 可用한 추상명사나 형용사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이 몸부림 이면의 眞意여야 한다고 깨닫기까지 우리는 몇 번의 숨 찬 고비를 지나야 했다. “할딱고개”, 고개 마루에 흘린 물기, 뒤돌아 본 세월은 아득했고 환상은 부끄러움으로 왔다. 그 날 우리들의 귓가에는 언 산들이 되받아 토해내는 총성뿐이었지만 통제실의 확성기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잘도 토해냈고, 그 날 따라 총구는 자꾸 허공을 향해 불꽃을 뿜어냈을 뿐 우리들의 몸부림은 믿음으로 오지 못했다. 네 박자의 목청이나 걸음이나 지루하긴 마찬가지였고, 그 때 우리가 받은 기합은 혜성같이 타올랐지만 편지글에 묻어오는 미소는 언제나 건조했다. 그래도 세월은 갔고, 자주 목이 탔지만 우리는 목청껏 노래했고 노래 속에 분해되는 슬픔을 보았다. 그 해 겨울, 사랑노래는 언 입 속에서 사라졌지만 낯선 사내들의 투박한 걸음은 계속되었다. 네 박자의 노래와 지루한 걸음이.



3. 그 해 겨울 ‧ 실연노래


 나부터 용납하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 해 겨울 가졌던 많은 생각들을 철회해야겠다고 다짐했고, 생각 없이 만든 말들이 환멸로 뒷덜미를 놓아주지 않았다. 방해 없이 눕고 싶었고, 캄캄한 세월을 지나 무사히 옷 벗고 싶었지만, 수 틀린 일만 일어났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은 생각 멀리 느껴졌고 그래도 미안해요 라고 웃어 보여야 했다. 그 겨울의 새벽마다 어둠은 쌓여갔고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때 부른 애국가 몇 소절과 고향예배는 고해성사 같은 간절함이었지만, 당신의 미소는 너무, 너무 멉니다. 가까이 손잡으소서, 손잡으소서, 공허한 울림이었다.



4. 그 해 겨울 ‧ 다시 우리는


 그 해 겨울, 다시 우리는 꿈속에서 그댈 봤네 라고 노래했고,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나는 풀잎 보다 우리가 본 것은 더 늦게 눕고 더 늦게 일어나는 바람이었지만 바람에는 아무 소리도 실려오지 않았다. 허기진 배를 안고 끙끙댔지만 詩도 사랑도 空腹의 부피만 크게 했다. 그 해 겨울 다시 우리가 든 역기도 아령도 재기불능의 진단에 그쳤고 아침마다 목청을 돋궜지만 아무 것도 노래되지 않았다. 시린 손으로 본 것은 窓안의 화로 같은 것이었고, 쉬지 않고 우리는 3년 세월을 쓸었지만 쓸어낸 부피보다 쌓이는 무게가 컸다. 假眠 속에서도 희망의 모습은 보였겠지만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우리가 우리의 세월에 긋는 ×字보다 더 많은 ×字가 우리들 신상명세서에 기입되었고 그럴수록 우리는 ○字 인생보다 ×字 삶에 더 수긍이 갔고 갔다. 그 해 겨울, 다시 우리는 再起의 역기를 들고 아령을 들었다. 근육 속의 혈관은 확장되지 않았지만 무사히 옷 벗고 설 수 있을 때를 위해.


                                       < 영점 오구구 제1집, 1985년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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