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상주이야기

용흥사

도깨비-1 2007. 9. 26. 23:55

용흥사는

 

 

경북 상주  淵岳山 龍興寺는 조계종 제 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서  신라 문성왕 元年 (839) 진감국사 혜소 창건 이후 고려시대 나옹화상이 중창, 조선 인조 25년(1647)중창-숙종 6년 (1680)에 극락전을 초건-순조 6년(1806_ 중창- 1967년 박대통령의 姉氏 朴재희 청신녀의 신심으로 중건. 현 당우로는 극락보전.나한전.삼성각,백운선원(1983癸亥),승료,요사 등이며,

 

1684년에 조성된초대형 괘불(석가+아미타+약사여래)은 보물 제1374호로지정. 신중탱화에서 발견된 부처님 진신사리를 1982년에봉안 하여 5층석탑을 조성.

 

극락보전의 목조 아미타삼존불 (본존:아미타여래+좌협시:관음보살 +우협시:대세지보살)과 화려한 닫집, 후불탱화, 괘불석주 등 은 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옛스러움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용흥사 괘불(1681년)


 龍興寺 三佛會 掛佛幀

 

 


(慶北 尙州市 龍興寺所藏, 寶物 第1374號, 1684年. 麻本彩色, 1,003㎝×620㎝)

龍興寺 三佛會掛佛幀은 세로로 긴 한 幅의 畵面에 釋迦, 藥師 阿彌陀의 三佛을 配置하고 있는 掛佛이다. 이 三佛會의 가장 이른 時期는 1459年 鶴林寺 重修 때 釋迦, 阿彌陀, 彌勒의 三世佛像을 奉安하였다는 記錄을 통해 그 出現을 알 수 있다. 이후 三佛會 탱화는 朝鮮後期인 17世紀 以後 主佛殿인 大雄殿등의 後佛幀으로 크게 盛行하였다. 現在까지 알려진 三佛會 掛佛은 龍興寺掛佛을 비롯하여 安城 七長寺掛佛幀(1710), 夫餘 五德寺掛佛幀(1768), 金塔寺掛佛幀(1778), 佛巖寺掛佛幀((1895)이 있다.


 龍興寺 掛佛의 圖像은 1幅의 畵面에 中央의 釋迦牟尼를 中心으로 왼쪽에 藥師佛과 오른쪽에 阿彌陀佛 三佛을 配置한 한軸의 三佛會形式이다. 構圖面에서 釋迦牟尼, 藥師, 阿彌陀佛 3佛이 화면 중심에 배치되면서 3佛을 중심으로 上下로 구분되어 眷屬들이 빼곡이 둘러싼 3段構圖의 群集圖를 이루고 있다. 大形畵面의 중앙은 降魔觸地印에 키형光背를 갖춘 釋迦如來像을 크게 配列하고 있는데 비해, 左右의 藥師佛과 阿彌陀佛은 圓形光背로서 本尊佛像과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즉 한폭에 釋迦와 藥師, 阿彌陀의 3佛을 함께 구성하고 있으나 그 根本은 역시 釋迦如來에 있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藥師나 阿彌陀佛의 경우 協侍菩薩외에는 眷屬들의 配置에서 釋迦佛의 靈山會上의 주요 도상을 이루는 10大弟子 무리와 外護衆, 化佛, 分身佛등으로 구성된 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3佛을 중심으로 畵面上部를 보면 역시 엄격한 左右對稱을 나타내고 있다. 즉 主尊光背 뒤쪽으로 他方佛 2位와 10大弟子가 左右로 配置되어 있다. 他方佛의 左右로는 龍王龍女와 八部衆, 左右 끝쪽으로 東方天王과 北方天王이 각각 對稱을 이루며 그려져 있다. 그 아래로 金剛力士 2位와 다시 아래에 王과 王妃 모습의 인물을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群集圖를 이룬다. 上段의 天空에는 五色의 瑞氣를 중심으로 화려한 天蓋가 떠 있고, 그 좌우에 타방세계에서 나투신 化佛이 묘사되어 있다. 역시 화면가득 五色의 瑞氣와 裝飾的인 彩雲으로 가득 채워 장엄하고 있다. 화면을 감싸고 있는 전체적인 色調는 붉은색으로, 佛菩薩 弟子像의 頭光에 칠해진 綠色이 이와 대비를 이루며 畵面은 全般的으로 彩色이 밝고 화사한 느낌이다.  (선오 글)


 

경북 상주의 옛 지명은 상산이며 상산지 고적조(古跡條)에는 상주의 성 밖 사방에 큰절이 있어 4長寺라 하였다. 즉 남장, 북장,갑장,승장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연악산을 일명 갑장산 이라 하기도 한다. 또한 상주는 3嶽이 있어 산천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즉 남쪽의 연악산 서쪽의 노악산, 북쪽의 석악산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속리산의 지맥이며, 주봉에서 장장 백여리를 뻗어내려 왔다.

 

용흥사는 연악산 중턱에 서향해 있으며, 신라 문성왕원년(839년)에 진감선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전설에 의하면 절 앞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그 물속에서 용이 승천하여 올라간 이후로 용흥사라고 하였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창건이후 사실에 대하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805년에 지은 중수상량문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당시 나옹화상이 시창한후, 인조 25년 (1647)에 법심인화대사가 초영, 숙종6년(1680년) 사유홍흡대사가 2중수, 숙종33년(1707년)사준 도인대사가 3중수,순조6년(1806년)4중수,1967년 주지 종덕 비구니스님에 의하여 5중수,이때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자씨 박재희 청신녀의 신심으로 쓰러져가던 극락보전이 중창되었다. 1982년에는 비구니 선용스님에 의하여 6중수,  이때에는 재일교포 이신 김철유불자님의 도움으로 신중탱화뒤에서 발견된 부처님진신사리를 오층석탑으로 조성하셨고 삼존불개금불사와 석고16나한상을 도분하셨고 또한 백운선원건립과 요사채건립 진입로확장등 새로운변모를 보이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특 이한것은 오층석탑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중앙부분은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이 부분만은 젖지 않는 것이 신기하고, 또한 이 도량에서 기도 드린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가피를 입고 소원성취 되었다. 또한 법당 뒷편에는 큰 괘불이 있는데 이 괘불의 크기는 총높이 1003센치 총폭 620센치 조선시대 작품으로 삼존불(석가모니불,약사여래불, 아미타불) 을 모셨다. 이후 오랜 가뭄으로 비가 오지 않을때, 이 괘불을 모시고 기도를 드리면 비가 오는것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였다고 한다.

절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약수물로 유명하여 옛부터 나병환자, 피부병환자들이 이 물로 여러번 씻으면 낫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용흥사는 비록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영험이 많은 기도도량을 사바세계에서 괴로워 하고 번민하는 수많은 중생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고 시원한 청량수가 되어 줄 것입니다. 경내에는 극락보전, 나한전,삼성각,백운선원 등이 있다.

 

* 갑장산
높이는 806m이다. 백두대간이 쥐라기의 화강암 산지로 솟구친 소백산맥 줄기의 하나이다. 상주삼악을 연악(淵岳) 갑장산, 노악(露岳) 노음산(露陰山:725m), 석악(石岳) 천봉산(天鳳山:435m)이라 하며 갑장산이 제일명산이다. 높이는 물론 신령스런 기운이 맑고 밝아 해마다 홍수나 가뭄 때 여기서 기도하거나 제사를 올리면 그 응함이 빠르다고 한다.

연악·석악보다는 주봉의 기암괴석이 천태만상이며 지천동(智川洞) 계곡과 승장폭포(勝長瀑布)를 흘러내리는 옥수는 삼림을 울리고 굽이마다 수석의 비경을 펼친다. 고도(古都)의 안산(案山)으로 갑장사·승장사·북장사·남장사 중 두 절이 있고, 선원(仙源)인 봉황대(鳳凰臺)와 연악·화암 두 서원 및 여섯 서당을 두어 유불선의 수도장이자 전승지로 영남 인재의 반이 모여 있던 상주고을의 중심이었다.

고려 25대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이 승장사에 들러 '영남의 으뜸산'이 라고 명명했다는 중창기도 있지만 백제 초기 영동남의 제1가람이었다는 갑장정사에서 산이름을 따온 듯하다. 연악은 정상 동북 670m의 샘 구룡연(九龍淵)에서 비롯된다. 갑장산은 동으로 장천(長川)과 선산 무수골계곡, 서로 병성천(남천 또는 이천), 남으로 산태백이재, 북으로 성골고개까지다.

좁게는 동 장천, 서 병성천, 남 돌티, 북 굴티가 된다. 넓게는 남으로 조산(祖山) 수선산(修善山:683m), 동남으로 복우산 (伏牛山:508m)·삼봉산(三峰山:448m)·나각산(螺角山:240m)까지 뻗쳐 낙동강에 멈췄다. 북으로 굴티재, 백원산(百元山:523m)을 세우고 식산(息山:503m)으로 내달려 산정의 봉황대에다 기를 모으고 계속 병성산(병풍산:366m)까지 맥을 뻗쳤다.

(출처:http://corea3000.com/big/gabjang0603.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