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불교 전각의 의미

도깨비-1 2006. 9. 1. 14:41
 


   ■ 전각의 의미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봉안한 전각으로 대웅이란 말의 뜻은 인도의 옛말 마하비라를 한역한 것으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은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큰 힘이 있어 마군의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부처님이 되었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손 모양(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무릎 아래쪽으로 향하고 있는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으로 마군을 항복받았던 모습을 나타낸다. 협시보살로는 문수보살(文殊菩薩)보현보살(普賢菩薩)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왼쪽에 모셔진 분이 문수보살로 부처님의 지혜(智慧)를 상징하는데 여의주나 칼, 청련화(靑蓮花)를 들거나 청사자를 탄 모습으로 표현된다. 또 보현보살은 오른쪽에서 부처님을 모시며 부처님의 행원을 상징한다. 흔히 연꽃을 들고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나타낸다. 대웅전은 법화천태종의 금당이었으나 조선후기에는 법화계통의 전통이 남아 있는 사원에서 주불 전으로 사용했다. 불국사 대웅전, 통도사 대웅전, 쌍계사, 관룡사 대웅전 등 많은 걸작들이 남아 있다.

 

부처님의 십대명호(十大名號)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변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海)/

무상사(無上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세존(世尊)

 


영산전(靈山殿)과 팔상전(捌相殿)

 

영산전은 영산회상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시던 광경을 묘사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제자, 16나한 또는 5백나한을 모시기도 하고,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나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구분하여 묘사한 팔상도를 봉안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팔상전이라 부르는데 팔상 탱화를 봉안하고 존상을 모실 경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함께 왼쪽에 미륵보살, 오른쪽에 제화 갈라 보살을 모신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미래에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부처님이 되실 분이고 제화 갈라 보살은 아득한 과거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행자이던 시절 장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수기를 주신 분이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과 더불어 이 두 협시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상징하고 있다. 법주사, 쌍계사, 운흥사, 선암사, 범어사, 보경사 등의 팔상전이 알려져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대적광전 또는 대광명전(大光明殿) 줄여서 대광전(大光殿)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두루 비치는 빛, 즉 광명이나 적광의 성질을 갖고 있어 이렇게 이름 지어진 것이다. 또한 화엄종 사찰의 주불전일 경우 이 이름을 붙이지만, 주불 전이 아닐 경우에는 비로전(毘盧殿)이라 한다. 대적광전은 삼신불(三身佛) 사상에 따라 중앙에 법신(法身)인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고 왼쪽에 보신(報身) 노사나 부처님, 오른쪽에 화신(化身)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법당으로, 사찰에 따라 법신 노사나 부처님, 보신 아미타부처님, 화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수인은 오른손으로 세운 왼손의 검지를 감싸 쥔 지권인(智券印)으로 이것은 이(理)와 지(智), 중생(衆生)과 부처(佛), 어리석음(迷)와 깨달음(悟)이 본래 하나라는 의미를 상징한다.

 

 

 

 

극락보전(極樂寶殿)

 

극락전 혹은 극락보전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이시며 중생들의 왕생극락을 인도하시는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하는 법당으로 미타삼부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찰에 따라서는 무량수전(無量壽殿), 수광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수명장수의 성격을 갖고 있는 무량수불을 모시지만 아미타불의 한 속성이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경우는 정토신앙 계통의 종파나 화엄종 등 사찰의 주불 전이될 때이다. 주불 전이 아닌 경우에는 미타전 또는 아미타전(阿彌陀殿)이라 한다. 아미타부처님은 법장비구로 수행하던 시절에 48대원을 세워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모든 것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건설하셨다고 한다. 그때 세웠던 서원에 따라 누구나 일념으로 ‘아미타불’이란 명호만 부르면 극락왕생 시켜 준다고 한다. 그래서 아미타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으로 많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설 법인을 취하고 있는데 이를 다른 말로 미타정인(彌陀定印)이라 하며 중생의 근기에 따라 아홉가지 다른 수인을 취한다. 아미타부처님의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혹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모셔진다. 대표적인 극락전은 천은사와 무위사에 있는 극락전이고 무량수전으로는 부석사가 유명하다.

 

 

 

약사전(藥師殿)

동방 유리광 세계의 교주인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 대개 왼손에 약병이나 약합, 약 단지(무가주)를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삼계인을 짓고 있다. 좌우 협시보살로는 일광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을 모신다. 우리나라에는 이 전각이 상당히 많은 편으로 통도사 약사전, 송광사 약사전, 관룡사 약사전, 고운 사 약사전 등이 남아 있다.

 

 

 

 

미륵전(彌勒殿) 

 

미래에 출현할 미륵부처님이나 미륵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전이다. 또한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하여 용화세계를 이룩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미륵전 혹은 용화전(龍華殿)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떠한 두려움도 없애 준다는 의미로 오른 손끝을 위로 향하게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보이게 하는 시무외인과 중생의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미로 왼손 끝은 아래로 하여 손바닥을 밖으로 보이는 여원인을 하고 있다. 협시보살로서 법화림 보살과 대묘상 보살 혹은 묘향 보살과 법륜 보살을 모신다.

 

 

 

 

천불전(千佛殿) 

 

부처님이란 진리를 깨달은 이를 의미함으로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각각 천불씩 존재한다는 의미로 천불전이라 이름 한다. 천불전에는 구류손불(拘留孫佛),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가섭불(迦葉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미륵불(彌勒佛)을 위시하여 누지불까지 현겁천불을 모시며, 과거 장엄겁천불, 현재 현겁천불, 미래 성수겁천불의 삼천불을 모신 사찰도 있다.

 

 

 

원통전(圓通寶殿)

중생구제를 위한 대자대비의 원력으로 대중들에게 가장 친근한 보살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신 전각이다. 대비전(大悲殿), 보타전(菩陀殿)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주불전일 때는 원통전이라 부르며, 부속 전각일 때는 관음전(觀音殿)이라 부른다. 남순 동자와 행상용왕을 협시로 모셔져 있고 후불탱화로 천수 천안 관세음보살도나 수월관음도 혹은 아미타불화를 봉안한다. 송광사 관음전, 통도사 원통전, 법주사 원통전, 선암사 원통전, 범어사 관음전 등이 대표적이다.

 

 

 

지장전(地藏殿) 

지장전은 중생구제의 큰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전각이다. 그러나 지장보살이 지옥중생의 구세주이기 때문에 협시인 도명존자 및 무독귀왕 이외에도 염라대왕을 위시한 지옥의 시왕상(十王像)을 봉안하고 있어 명부전(冥府殿)이라 더 많이 불린다. 지옥시왕(地獄十王)은 인도 고대신화에 나오는 사후세계의 지배자인 야마왕이 불교에 들어와 지옥을 다스리는 염마왕이 되었다. 그것이 중국의 도교 영향을 받아 10가지 지옥과 그곳의 왕을 설하는 시왕사상으로 발전하면서 오히려 시왕 중에 한 분으로 변모하였다. 시왕의 각 명호는 진광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태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전륜대왕 등이다.

 

 

응진전(應眞殿) 

 

응진전은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신 곳으로 응진이란 ‘존경받을 만하다’, ‘공양받을 만하다’라는 의미이다. 또한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하여 석가모니불의 직제자 가운데 정법을 지키기로 맹세한 16나한이나 경전결집에 참여했던 500나한을 모시기도 한다. 16나한의 각 명호는 빈도라 발라사, 가낙가벌차, 가낙가 발리 타사, 소빈타, 낙거라, 발타라, 가리가, 벌사라불다라, 술박가, 반탁가, 라호다, 나가서가, 인게타, 벌나 바사, 아시다, 주다반탁가 등이다. 나한은 부처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이므로 초자연적인 신통력과 더불어 독특한 표정과 자유스러운 자세를 갖고 있다. 또한 나한은 미래 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부처님의 수기를 받은 분들이라 민간신앙에는 무수한 설화들이 등장하며 서민들의 기복신앙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500나한을 모신 곳으로 유명한 곳은 금산사 나한 전, 옥천사 나한 전, 기림사 오백나한전, 송광사 나한 전 등이다.

 

 

조사전(祖師殿) 

조사전은 역대 조사나 그 종파의 조사스님, 사찰의 창건주, 역대 주지스님 등 해당사찰과 관련하여 후세에 존경받는 스님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전각이다. 사찰에 따라서는 조당, 조사당, 국사전(國師殿) 등으로도 부른다. 특히 통도사의 영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영정을 보존하고 있으며, 송광사 국사전과 해인사 조사전, 신륵사 조사당 등이 대표적이고 불영사의 의상전에는 의상조사의 영정과 더불어 원효대사, 종봉대선사, 청허대선사의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삼성각(三星閣)

 

삼성각은 칠성(七星)독성(獨星)산신(山神) 세분을 한 곳에 모셔놓은 곳으로, 나누어 모셨을 때는 칠성각(七星閣), 독성각(獨星閣), 산신각(山神閣)이라 이름한다.

 

 

 

    칠성각(七星閣)

‘칠성’이란 북두칠성을 일컫는 것으로, 사찰에 칠성을 모시게 된 것은 중국의 도교사상이 불교와 융합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칠성을 부처님들로 화한 경우가 보통 인데, 치성광여래를  주존으로 모시고 있다. 손에 금륜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좌우에 협시로 배치된다. 특히 조선시대 가장 성행한 전각으로 운문사, 옥천사, 선암사 칠성각 등 수많은 예가 남아 있다.

 

 

     독성각(獨成閣)

나반존자라는 분이 모셔져 있으나 정확히 어떤 분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아서 16나한의 한 분인 빈도라 발라사가 아닌가 여겨진다. 빈도라 발라사는 코삼비국 재상의 아들로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하여 구족계를 받았다고 한다.

 

 

    산신각(山神閣)

 

칠성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발달한 토속신산신호랑이를 모신 곳으로 사찰이 산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외호신 중으로 산신령을 모시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민간신앙에서는 산에 사는 영물로 호랑이를 산군으로 모시기 때문에 산신은 언제나 호랑이를 거느리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장경각(藏經閣)

 

장경각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경(佛經)이나 목판(木板)을 봉안한 전각으로 사찰에 따라 대장전(大藏殿) 혹은 판전(板殿), 법보전(法寶殿) 등으로 불린다. 대표적인 곳으로 합천 해인사의 장경각과 예천 용문사 대장전, 선암사 장경각, 용주사 경각 등 많은 예가 있다. 특히 용문사 대장전에는 경을 넣어 돌리면서 열람하거나 예배하는 윤장대라는 것이 있어 더욱 유명하다.

 

 

 

 강당(講堂)

 

강당은 불교의 교설을 강의하는 곳으로 조선시대의 선종에서는 법당이라 불렸다. 신라 때까지는 모든 절에 강당이 반드시 있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법당 앞에 있는 만세루 등의 누각(樓閣)이 강당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모든 설법은 원칙적으로 이곳에서 행해졌다. 그래서 설법전(說法殿)이라 부르기도 한다.

 

 

 

포살당(布薩堂)

 

스님들은 보름마다 모여 참회하는 포살법회를 갖는데, 이 때 모이는 곳을 포살당이라 하며, 이 때 계를 설하기도 함으로 설계당(說戒堂)이라 부르기도 한다.

 

 

 

선방(禪房)

 

스님들이 참선하시는 방으로, 선종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각이라 하여 선불당(選佛堂)이라고 한다.

 

 

 

승방(僧房)

 

스님들이 거주하시는 방으로 석가모니불 생존 당시부터 필수적인 건물이다. 삼국시대나 신라시대에는 금당(金堂)의 동서(東西)로 배치되어 동서승당이라 했으며, 조선시대부터 요사채라 불리고 있다.

 

 

 

종각(鍾閣) 

 

종을 매달아 놓은 곳으로 종루(鍾樓)라 부르기도 하며, 북을 매단 곳을 고루(鼓樓) 또는 고각(鼓閣)이라 하지만 대개 절의 사물(四物)이 함께 안치되어 있어 통칭하여 종각이라 부른다.

 

 

* 참고 *

 


인류의 시조 나반이 불교로 흡수된 까닭 (나반존자는 누구인가?) ☞우리의역사

2012/07/12 14:02

복사http://blog.naver.com/kjnam99/110142539926

 

인류의 시조 나반이 불교로 흡수된 까닭 (나반존자는 누구인가?)

 

팔각정 형태인데 ‘삼일지상정천궁(三一地上正天宮)’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 안을 보면 참 작은 키에 아기자기한 한분이 여러 개의 방석을 포개놓고 닫집 아래에 앉아 계신다.
앉은 모습이 매우 넉넉하여 절로 웃음 짓게 된다.

웬 조그만 팔각정에 닫집이 다 있다니, 닫집이 참 아담하다.
닫집이란 임금님의 자리나 부처님의 자리위에 장식으로 만들었다는 집의 모형인데 여기에 이분도 닫집에 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중요하신 분 같다.

닫집에 아담하게 앉아 계시는 분이 인상도 좋아 보이는데 옆에 기둥에 나반존자라고 씌어 있는 것을 보면 이분이 ‘나반존자(那般尊者)’인 것 같다.

나반존자는 일반적으로 삼성각(三聖閣)이나 독성각(獨聖閣)에 모시는데, 개태사에서는 삼일지상정천궁이라고 명명하여 다른 사찰과는 달리 팔각정에 모시고 있다. 또한 일반 사찰에서는 탱화를 모시는 데 반하여, 석조로 조각된 나반존자 상을 모시는 점이 특이하다. 계룡산에서 가져온 돌로 나반존자 상을 조성하여 모셨다고 한다.

뒤에는 산신탱화와 칠성탱화가 있는 것을 보면 여기가 삼성각이라 해야 할 것 같다.


나반존자 이분이 누구인가?

▲ [방석위 나반존자(那般尊者] 나반존자는 일반적으로 삼성각(三聖閣)이나 독성각(獨聖閣)에 모시는데, 개태사에서는 삼일지상정천궁(三一地上正天宮)이라고 명명하여 다른 사찰과는 달리 팔각정에 모시고 있다. 또한 일반 사찰에서는 탱화를 모시는 데 반하여, 석조로 조각된 나반존자 상을 모시는 점이 특이하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열반에 즈음하여 네 명의 큰 제자 마하가섭 존자, 군도발탄 존자, 빈두로 존자, 라후라 존자들에게 미륵불이 와서 세상을 구제 할 때 까지 열반에 들지 말고 지상에 남아서 자신의 신통력으로 중생을 제도하도록 당부하셨다.

이 가운데 빈두로 존자가 바로 나반존자로 18나한 중 한 분이라고 하고 있는 것 같고, 또 중국의 천태산에서 깨달음을 얻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장수를 누리다 죽었다고 하는 고구려의 파약(破若)스님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렇지만 좀 이상하다.

적어도 나한이라면 여러 나한과 함께 나한전에 모셔지던지, 그리고 빈두로존자나 파약스님이라면 그분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따로 모셔질 만큼 독특한 성인은 아니다.

그런데 각 절에는 독성각이나 삼성각이 있어 나반존자를 별도로 모신다.
그렇다면 이분은 불교의 빈두로존자가 아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미친다.

이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대체 불교와는 어울리지 않게 산신과 칠성신과 함께 하는 이분은 누구일까?


환인이 인간을 창조하시니 남자이름은 나반이요, 여자이름은 아만이다. 나반은 다름 아닌 인류의 시조로서 아사달에서 아만과 만나 결혼하여 우리민족을 만든 분인 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아담과 이브가 만들어 진 것과 같다.

이백의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따르면 “이때 백호(白虎)가 산을 지키고 황웅(黃熊)이 산에 살았다”고 한다.
나반과 아만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나 아버지, 어머니라는 우리말로 기억되고 있다.

나반은 아바이, 즉 아버지라는 우리나라 함경도 사투리를 한자로 음역한 낱말이다.
아만 역시 함경도의 방언 오마니라는 소리를 한자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가 불교전래 이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전통 신령이었던 것이다.
불교신앙과 융합되는 과정에서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불교 용어화 되지 않았나 싶다.

(박성수 저 단군문화기행 중에서)


결국 불교는 우리의 신교였던 전통신앙과 치열한 다툼 끝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남아 있던 전통신앙마저도 불교화식으로 변형을 하여 포교를 넓히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우리의 고유 신앙을 차용한 흔적은 4월 초8일은 해모수가 단군조선의 5가 원로들을 끊임없이 회유하고 설득하여 마침내 화백회의를 통해 단군으로 등극한 날로, 해모수 단군 등극 축제일을 고구려 소수림왕 때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석가탄신일로 변경된 것이다.

대웅전이란 배달국의 환웅을 모셨던 ‘환웅전’의 변형으로 전각의 이름만 남기고 석가세존이 대웅의 자리에 앉은 것으로 우리나라만 대웅전이라 불리 우고 있다.

삼성각 또는 삼신각도 역시 다른 나라 불교에서 없는 한국만의 전각이다.
한단고기의 기록대로 환인, 환웅, 환검(단군) 세 성인을 모셨던 단군조선의 전각이 불교와 타협하면서 절간 뒤로 밀려 보존된 것이다.

마치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하나님 또는 하느님 (물론 여기에도 하나님과 하느님으로 호칭하는 문제에 이견이 있는 것 같다.)이라고 표현하는 본래 단어의 기원은 하늘님(하늘天에 있는 님)이다.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천손(天孫)의 자손으로서 하늘을 공경해오는 전통신앙 강했다는데 ‘명나라는 조선에 하늘신인 천신(天神)의 제사를 받들지 못하도록 원구단(圓丘壇)의 설치를 제한하였다.

제후는 산천에만 제사를 지내고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천자의 위상을 가지지 못하도록 압박하였으나 원단(圓壇)또는 환단(圜壇)으로 세조 시까지 끈질기게 유지하였다.

하늘에 대한 제사권의 박탈은 자주권의 제한이었다.
하늘을 상실한 민족은 오늘날 제공권을 상실한 국방과 같이 한계가 있고 우주선이나 핵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가 느끼는 국제사회의 초라한 위상과도 같다.’
(허흥식저 ‘한국신령의 고향을 찾아서’ )


천손민족으로 자부해오면 고조선 이래 고려시대까지도 중화에 대하여 우월적 지위를 누리던 우리 민족이 고작 조선시대에 들어서 명나라에 눌렸으니 명이 만주족인 청나라에게 망한 후 중국은 사라졌고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해서야 다시 중국이 등장한 것이 아닌가.

그러함에도 기득권세력의 지나친 사대정신이 명이 망한 후에도 우리의 천신인 하늘에 대한 제사권을 찾지 못하고 소중화를 외치면서 망한 명나라만 쳐다보고 동경해 왔으니 결국 국민들의 하늘에 대한 강렬한 믿음은 조선말 새로운 종교인 천주교의 전래로 하늘사상을 다시 찾게 되었으니 숱한 순교자를 내면서까지 찾으려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유일신을 뜻하는 단어 천주(天主)를 당시의 한글 표현인 하ㄴㆍ(天)님(主)으로 번역하여 받아들인 것이니 당연히 그 종교적인 전파속도도 빠를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외래 종교였던 불교가 우리의 전통신앙인 환웅전, 칠성, 산신, 나반존자 등의 성지에 주인으로 집을 차지하고 이들을 버리지 않고 불교 화에 끌어넣어 성공한 반면, 천주교나 개신교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잘 빌려서 성공한 경우라 볼 수 있다.

나반존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말법시대의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고 한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 상을 봉안하기도 하지만 보통 독성탱화를 많이 봉안하는데 이 탱화는 천태산을 배경으로 하여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늙은 비구가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반 절에 갈 때 나반존자인 독성탱화와 산신을 산신탱화가 비슷하니 잘 살펴보아 차이나는 점을 찿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반존자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시간이 되면 경북 청도 호거산 운문사(雲門寺) 내에 있는 사리암을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올라가기도 힘든 산중턱에 있던데 왜 그리 사람들이 많은지 경상도 사람들의 강렬한 불교신앙은 어디 까지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