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35호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화엄사 효대와 국보 제35호 사사자 삼층석탑 들여다보기
효대의 주인인 연기조사는 누구인가?
전남 구례에 있는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년. 신라 진흥왕 5년)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 이 화엄사에는 <효대>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효대는 효성이 지극한 연기조사와 어머니에 관한 전설을 지닌 곳인데, 화엄사 각황전 뒤로 난 계단을 오르면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그 곳에는 국보 제35호인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얼핏 보면 암수 두 쌍씩의 사자가 가운데 서 계신 부처님을 보호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 사사자 석탑은 불국사의 다보탑과 함께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연기조사에
대한 기록은 『구례군화엄사기실(求禮郡華嚴寺記實)』에 보인다. 이 책에는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烟起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는 범승(梵僧), 즉 인도 스님이라고만 기록하고 있을 뿐이고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알 도리가 없다.
또한, 연기조사의 명칭은 대체적으로 이 곳에 인연을 세웠다고 하여 <연기(緣起)>로 표기되고 있으나, <연기(烟氣)> 혹은
<연기(烟起)>라고 쓴 기록도 없지 않다. 그 외에도 황당하긴 하지만 연기조사가 제비(燕)를 타고 우리나라에 왔기
때문에 <연기(燕起)>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구전되고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기록적으로 고찰할만한 것은 아니다.
목조건물 중 최고로 친다는 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
연기조사는 왜 신라 경주에서 백제의 땅인 이 곳 구례로 왔을까?
기록에는
연기조사가 인도의 승려라고 되어있다. 연기조사는 문수보살께 화엄의 가르침을 널리 펴겠다는 원을 세우신 분이다. 그리하여 멀리 타국으로 건너와
당시 크게 번성했던 경주의 황룡사에서 경을 설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비몽사몽간에 한 모자를 만났는데, 후덕해 보이는 여인의 손을 잡고
따라온 귀여운 동자가 이렇게 말했다 한다. ‘본디 스님께서 제 앞에서 세운 원(願)은 널리 화엄의 가르침을 펴는 것이었는데, 어찌하여 새
인연처를 찾지 않으십니까?’라고 하는 말을 남기고 난 후 두 모자는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연기암은 화엄사에서 2.3km 정도를 오르면 있다. 연기암에 오르면 섬진강이 저멀리 보인다. 사사자 삼층석탑 뒤에서 바라다 본 효대전경
사사자 삼층석탑을 찬찬히 둘러보면 얼마나 멋들어진 조각품인가를 느낄 수가 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을 돋음 양식으로 새겼다. 한 면에 3구씩의 천인상은 각기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양하는 다양한 모습이 새겨져 있다. 천인상들은 암석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사사자 삼층석탑과 앞 석등을 오가며 음악을 연주하고, 춤이라도 출 것 같은 모습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풍광에 마모가 되었음에도 저런 형태를 지니고 있다면, 처음 이 석탑이 이곳에 세워졌을 때는 그 아름다움이 어떠했으랴. 눈을 감고 떠올려보니 전율이 느껴진다. 오호라! 그 아름다운 천인들이여. 어찌 하늘 사람이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지치지도, 싫증도 나지 않는 천인상을 보며 눈을 위로 돌린다.
하단부에 새겨진 천인상들 - 한 면에 3구씩 모두 12천인이 있다. 이 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삼아 세워 놓은 것이다.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는 사자들은 그 어떠한 사악함의 범접도 빈틈없이 지켜낼 것 같은 모습이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보다는 문수동자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곳이 효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서 문수동자가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은 설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의 발로였을 것이다.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결국,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은 석탑과 공양을 올릴 수 있는 상석, 그리고 연기조사의 석등을 합해 하나의 옛 이야기속의 설화를 그대로 표현한 테마조각품인 셈이다.
사사자(위)와 공양을 올릴 수 있도록 한 공양석(아래) - 차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 이 곳에 올렸을까? 문화재는 느낌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어라.
연기조사가 어머니께 차 공양을 드리는 모습이라는 석등을 보면, 어느 곳에서도 만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석등은 연기조사가 석등을 이고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이 석등을 인 연기조사의 효심을 알 것 같아 미소를 띤다. 사자의 호위를 받으면서 천인들의 공양을 받는 어머니를 위해 불을 밝히는 연기조사의 마음. 그것은 곧 어려운 고해 속에서 한 가닥 등불을 찾아 헤매는 우리 중생들을 위함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차는 우리 중생들에게 먹여주고 싶은 불법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들어 멀리 바라다보니 지리산의 능선이 눈앞에 장관으로 펼쳐진다. 그래, 당시 연기조사가 이곳에 처음 발을 딛고 연기암을 짓고, 화엄도량을 편 것도 다 이 지리산자락의 저 아름다운 자태 때문은 아니었을까? 오늘 난 연기조사의 모습에서 나 스스로를 정화시켜 본다. 그리고 문화재는 느낌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어느 노장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무릎을 꿇고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 - 뒷편 멀리 지리산의 등성이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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