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영혼의 쉼터-절집에 들르다](7)-부산일보
경북 문경 대승사
그저, 적막 속에서 존재를 잊으라.
초저녁의 어스름 속에서 은은히 불을 밝힌 대승사 대웅전(왼쪽)과 대승선원. 대승선원은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선승들이 삼엄하게 용맹 정진하는 곳으로 이름 나 있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는 흔한 산골마을이지만, 여느 산골마을들과 비교했을 때 인적이나 차량 통행은 더 드문 곳인 듯하다. '사불산 대승사'는 이 마을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간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어느 정도 외진 곳이냐 하면, 우리는 밤중에 대승사에서 문경시내 가까운 곳을 다녀왔는데, 오가는 1시간 동안 차를 단 한 대도 보지 못했다. 우리는 가랑비 내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의 길이 내심 무서웠다. 그래서 쑥스럽게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자주 되뇌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나니, 중생아 너는 부디 어둠 자체를 잊어버려라, 그러면 다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러고 보니 대승사는 이런 식으로 마음공부를 하는 곳이다. 절집 이름에도 늘 '대승선원'이 따라 붙는다. 요컨대 대승사․대승선원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는 참선 수행처인 것이다.
대승사에 당도해서 주지 철산 스님(이하 스님)을 만났을 때, 스님은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고, 우리는 절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고 대답했다. 스님은 그러나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달리 설명할 만한 게 없으니 스스로 둘러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더니 공부를 하러 가야 한다면서 선원을 향해 달려갔다. 스님은 선원장도 겸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끼리 그 절집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오전에는 스님과 마주 앉아 줄곧 차를 마셨다. 대승사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녹차, 뽕잎차, 발효차 따위를 번갈아 가며 마셨다.
선승과의 대화는 값싼 독주처럼 목에 턱턱 걸렸다. 노자는 도(道)란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하고, 석가모니 부처는 언설 따위는 집어치우라(不立文字)고 하지만, 말과 글로써 보고 들은 바를 기필코 재현해 내야 하는 기자로서는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보고 들은 것들을 간신히 여기에 적어 놓는다.
대승사는 1천500여 년 전에 세워진 신라고찰이다. 절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하고, 정감 있고, 절도가 있다. 수행공간으로서의 절집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인터넷 시대의 시쳇말로 '강추'할 만한 곳이다.
무채색의 차분함
대승사는, 종루를 제외하고는 당우란 당우를 다 갖추었고, 당우들은 저마다 나름의 향취를 지니고 있지만, 그 당우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차분하다. 유독 존재감이 강한 당우는 스님이 공부 시간에 대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간 대승선원이다.
선원은 알파벳의 H자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쪽 건물은 지혜의 상징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인데,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채색(검은색 흰색 회색)의 차분함을 견지한 선원 안으로, 정진 중인 선승들의 모습이 설핏설핏 내비쳤다.
선원과 대웅전 앞마당 사이에는 경계를 짓기 위한 높이 1m 정도의 기와 담이 조성돼 있다. 이 담이 호기심에 이끌린 속인들의 무책임한 진입을 막고 있다. 엎어서 연결해 놓은 기와들의 틈 사이로 선원의 속살이 보일 듯 말 듯 한다.
선원 뒤편에는 극락전이 있다. 응진전과 삼성각도 고풍스럽긴 하지만, 극락전에는 비길 바가 아니다. 극락전은 '낡은 고색창연'의 전형을 보여주는 당우라고 할 수 있다. 단청은 낡아서 색깔조차 희미하고 벽면 상단의 탱화는 흐릿해져 가고 있지만, 그런 정경이 선승의 너덜너덜한 승복처럼 엄숙한 맛을 풍기고 있다.
대웅전의 빨간색 노란색 흰색 꽃살들도 이끼 낀 돌계단처럼 착하게 낡고 있다.
친절한 마음 씀씀이
대승사는 여러 모로 손님들을 배려하는 절집이다.
불이문을 지나 주차장에 이르면 자그마한 독립 건물이 하나 보인다. 차실(茶室)이다. 차실은 차실인데, 지키는 이도 없고, 누구든 스스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돈은 받지 않는다. 싱크대와 다기, 나무로 만든 책상과 의자, 녹차와 뽕잎차 따위들이 보인다. 대승사는 공부에는 강하지만, 살림은 빈한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따름이다.
대웅전 앞마당을 받치는 축대 아래와 요사채 앞 마당에는 약수대가 마련돼 있다. 그런데 약수대 위에 놓인 물그릇은 플라스틱 바가지가 아니라, 이 절집에서 직접 흙으로 빚은 도자기이다. 술잔에 따라 술맛이 달라지듯, 물맛도 그릇의 지배를 받는 법인데, 도자기로 받아 마신 약수의 맛은 역시 각별하다.
대웅전 본존불 뒤에 걸려 있는 목각후불탱(보물 제575호)은 일견 화려해 보이지만 친절하긴 매한가지이다. 후불탱을 나무에 돋을새김(혹은 뚫을 새김)한 것인데, 중앙의 석가모니불과 좌우의 사천왕,8대 보살,나한들은 금방이라도 걸어 나와 절하는 중생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줄 듯하다.
대웅전 안에는 보다 현실적인 친절도 있다. 자그마한 종이에 도상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다. 본존불 밑에는 왼쪽에서부터 순서대로 보현보살-석가모니불-문수보살이란 명패가 붙어 있다.
절도(節度) 있는 선원
대승사의 이런저런 미덕은 아무래도 선원 특유의 절도에서 비롯되는 듯한데, 대승사의 절도에 대해서는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이 선원의 일일 정진 시간은 14~16시간으로, 통상적인 정진 시간보다 2~4시간이 더 길다.
스님의 말에 따르면 대승선원에서는 하안거, 동안거에 관계없이 잠자지 않고, 먹지 않고 오로지 참선 수행에만 몰입하는 광경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열반에 든 성철 스님은 이곳에서 3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하면서 용맹 정진했었다. 지금은 20명의 선승들이 용맹정진 중이다.
일반인들이 절집에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을 하는 '템플스테이' 역시 일정이 만만치 않다. 부산에서 온 한 중학생은 한 달 동안 하루에 두 시간씩만 자면서 일정을 소화해 내야 한다. 스님에게 "도시의 아이가 하루 두 시간 수면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더니 "됩니다. 마음만 먹으면 다 되지요. 게다가 이곳은 기운이 무척 맑아서 잠을 적게 자도 별 무리가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닌 게 아니라 스님 자신도 무시로 21일 동안 잠 자지 않고,60일 동안 음식을 끊은 상태에서 참선 수행을 결행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목숨을 잊으면 다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문득 생각해 보니,이 절집은 처처에 물고기다.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아 수행자들이 본으로 삼는다는 물고기들은 당우에도 있고, 마당에도 있다. 대웅전 바깥 공포(包)마다에는 얼핏 세어도 40마리에 가까운 물고기 형상이 그려져 있다. 대웅전 앞마당 한쪽에는 일그러진 커다란 독들이 있는데, 부레옥잠 아래에서 금붕어들이 헤엄을 치고 있다. 연못에서도 물고기가 놀고 있다.
스님은 차를 따라주면서 말했다.
"깊이 잠들었을 때는 아무 것도 못 느끼고, 존재 자체도 없는 셈이지요. 깨어 있을 때도 그럴 수 있어야 하는데…하면…됩니다."
한편, 대승사에 머무른 1박2일 동안 이러구러 비가 내렸다. 우리는 는개, 이슬비, 가랑비 따위들을 착실하게 겪었다. 우리는 그 파노라마 속에서 언뜻언뜻 무언가를 본 듯도 했다. 그것이 일체유심조와 연관이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자, 우리는 보고 들은 것들을 가까스로 전달했거니와, 나머지는 근기(根機)가 큰 당신, 당신이 스스로 알아서 해 보시라.
[부산일보]
글=이광우기자 leekw@busanilbo.com
사진=문진우 프리랜서 moon-051@hanmail.net
일체유심조 :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따름이다.
장좌불와 : 눕지도 않고 자지도 않는다.
공포 :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 맞추어 댄 나무.
근기 : 불법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크기.
[부산일보/ 입력시간: 2006. 07. 27. 09:18 ]
하나 - 마애불
대승사를 품은 산은 사불산(四佛山,912m)이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에서 표지석을 확인하고 중턱을 오르다 보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가면 대승사가 나온다. 왼쪽 길을 따르면 다시 좌우로 나뉘는 좁은 길을 만난다. 왼쪽은 묘적암, 직진하면 여승들의 수도처인 윤필암이다. 둘 다 고려 공민왕 때의 나옹 선사(1320~1376)가 득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나옹 선사는 이런 선시를 남겼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묘적암 가는 길 오른편 숲에는 정갈한 돌계단이 조성돼 있다. 50m 남짓한 돌계단이 끝나면 문득 칼로 자른듯 한 높이 6m, 너비 3.7m의 불그레스한 바위가 앞을 막아선다. 이 바위에 고려시대에 조성된 마애불(대승사 마애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39호)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입술이 두툼하다. 퉁명스러워 보이기도 하면서 또한 정감 있는 얼굴이다.
둘 - 사불바위
'사불산'이란 이름은 이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높이 3m 정도의 '사불바위'에서 유래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때인 587년 사면에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 하나가 붉은 천에 싸인 채 하늘에서 내려왔다.
사불바위에 갈 때는 먼저 윤필암에 들르는 게 좋다. 법당이 특이하다. 불상은 없고 정면에 대형 유리창이 나 있다. 유리창 저 너머로 사불바위가 보인다. 사불바위가 불상을 대신하는 것이다. 암자에서부터 사불바위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린다. 좁은 산길이다.
지금은 한 면에만 흐릿하게 윤곽이 남아 있다. 오랜 세월 불상의 윤곽을 지워온 바람과 비는 오늘도 그 윤곽을 지우면서, 너희들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마침내 네 안의 불성을 찾으라, 라고 말하는 듯하다.
'삼국유사'에는 진평왕이 이 바위 앞에서 기도를 올린 뒤 대승사를 짓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승사 무량수전 오른쪽 처마 밑에는 '천강사불(天降四佛:하늘에서 불상 넷이 내려왔다)' '지용쌍련(地湧雙蓮:땅에서 연꽃 둘이 솟아났다)'이란 글귀를 담은 편액이 둘 걸려 있는데, 모두 이 설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셋 - 해우소
대승사 대웅전 앞마당 오른쪽 끝 아래쪽에는 풀들이 기와지붕의 일부를 덮은 아담한 건물 하나가 외따로 서 있다. 100년 세월을 견딘 퍼내기식 변소다. 여성용 4칸, 남성용 4칸이 조성돼 있다. 전남 승주 선암사의 변소를 닮았는데, 규모는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운치는 그에 못지않다. 어른 키만 한 나무들을 줄 세워서 계면쩍음을 가려주는 모습도 재미있다.
변소 안의 나무 칸막이는 앉은키만한 높이이고, 정면 벽에는 나무 창살이 가지런하게 박혀 있다. 그 사이로 바깥세상이 보이는데, 바람과 햇볕이 넘나들고, 심지어는 푸른 잎들도 드나든다. 창살 안쪽으로 고개를 쑥 내민 푸른 잎 하나는 힘주는 사람의 기세를 꺾어버리겠는데, 그리 밉살스럽지는 않다. 똥 위에 한 바가지의 톱밥을 뿌려주고, 바람이 무시로 냄새를 데려가기 때문인지 똥냄새는 거의 나지 않는다. 주지 스님은 "냄새가 약간 나지요? 그 냄새를 맡으면 당뇨에 안 걸린다는데…"라고 말했다.
부산일보 이광우기자 / 입력시간: 2006. 07.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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