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명소

은하사 - 경남 김해시

도깨비-1 2006. 7. 26. 22:22
 

( 은하사  경남  김해시)       

  

위    치 :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번지

관 리 소 : 은하사 055-337-0101~5

          

개    요 : 전설에 의하면 가락국 수로왕 때 장유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원래 이름은 서림사였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소실되었는데, 1600년대에 중창했다.  현재의 건물은 다포계양식의 맞배집으로 용두와봉두를 새겨놓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는데 이들 조각과 구조 수법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의 수미단에 쌍어문양이 있어 인도 아유타국과의 관계를 전하고 있다. 은하사 대웅전(도유형문화재 제238호)은 조선 중기 이후의 건물이다.


교통안내 : 부산, 마산 방면에서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찾아올 경우, 동김해 I.C에서 빠져 나와 만 나는 첫 신호등에서 계속 직진하면 된다. 이 길을 따라 약5분 직진하면 왼편에 인제대학교 가 나온다. 학교 정문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약 200m 직진하면 가야골프장과 시내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 삼거리를 지나 약 30미터 지나면 오른편으로 조그마한 길이 나있다.  우회전하여 30미터 더 오면 신어산과 은하사로 진입하는 길이 왼편으로 나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직진하여 하키 경기장, 가야 연수원을 지나 약 5분 더 오면 오른편으로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 주차장을 지나 조금 더 나가면 은하사 입구에 도달하게 된다.


           * 시내버스로는 은하사까지 올 수 있는 교통편이 없기 때문에  인제대 입구에서 택시를 이

             용하거나 도보로 올 수 있다.


현지숙박 : - 김해관광호텔 (055) 335-0101

           - 크리스탈장여관 (055) 321-1355


주변명소 : 신어산 산림욕장, 동림사, 가야랜드, 가야CC, 장척계곡


먹 거 리 : - 서울가든 (055)342-4548

           - 오륙도 장어구이 (055)332-2270


정보제공자 : 621-705 김해시청 문화체육과 (055-330-3251)

 작성기준일   2006년 04월25 일


낙동강과 남강 남녘의 산들, 신어산 은하사는 그 낙남정맥의 끝자락에 앉아 있다.

󰡒�옛날에는 요즘같이 차도 없어 그저 걸어서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전국의 산에 이런 운수객들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다. 부산 범어사에서 출발한 운수객이 저 강원도 금강산 마하연을 가기 위해서는 어떤 산길을 타야 가장 빠르고, 중간에 거쳐서 가야 할 절은 어디다 하는 것이 다 정해져 있다.󰡓�


옛 노스님네의 말씀은 신어산 은하사에서 곧 지리산으로, 지리산에서 금강산으로, 또 이 땅의 산 어디로든 갈 수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물론 요즘 말하는 백두대간과 정맥의 종주길이 운수객의 길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산과 산으로 이어져 있던 길을 옛 스님들은 일찍이 알아 그 길을 오가며 수행의 길로 들었던 것이다.


이제 그 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그 옆의 큰길에 묻혀 잊혀지고 있다. 사라지는 것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그 길에서 마주쳤을 자연과 존재에 대한 경외(敬畏)의 마음 한조각도 더불어 잊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백두대간의 절길, 신어산을 오르며 다시금 느끼게 되는 감회이다.


최근 󰡐�달마야 놀자󰡑�라는 영화 촬영지로 더욱 이름이 알려진 은하사(055-337-0101)는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 때 장유(長遊) 스님이 창건했다고 하는 고찰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나 『삼국유사』 「가락국기」 등의 내용을 그대로 따른다면 무려 2,000년 전의 일이 된다. 우리가 배운 불교 공인 시기를 훨씬 앞당겨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 판인데 학계에서는 아직도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이다. 6세기 신라에 통합되기 전까지 신어산 아래, 낙동강유역을 석권하며 빛나는 문명을 떨쳤던 금관가야에 대한 부족한 연구 때문이다.

장유 화상은 신어산의 영구암과 동림사, 지리산 칠불암까지 창건주로 꼽히는 분이니 신라의 원효나 의상 스님처럼 가야 불교의 시조로 여겨지는 분이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배를 타고 김해까지 건너와 수로왕과 결혼한 허황후의 오라버니되는 이다.

이 도량에서 그는 그의 고향과 가야국을 위해 수행정진하며 수로왕의 일곱 왕자를 출가케 하여 마침내 칠불로 탄생토록 하였고 스스로도 수행정진에 전념하여 성불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이후 신라에서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승대덕과 석학들이 이 곳에서 수행정진하였을 터인데 세월의 더께가 그만 그 흔적을 가려놓고 말았다. 다만 임진왜란 이후의 역사는 전해오는 이야기와 정현당(靜玄堂) 안에 모아놓은 여러 현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경상우도김해부신어산은하사불상중수개금기(1767년)」,

「중수서림사선당기(1812년)」,

「김해서림사대웅전관음존상개의후불탱화성기(1835년)」 등 10여 매의 현판을 들여다보노라면 마치 글을 쓸 당시 정성스레 붓을 든 스님 앞에서 은하사의 옛일을 하나하나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수로왕의 원당󰡑�임을 자세하게 일러주시기도 하고 한때 󰡐�신라고찰󰡑�로 여겨졌던 일이며 중수 공덕주 󰡐�배(裵) 씨󰡑�의 이야기 등

 또한 현판에는 은하사(銀河寺)와 서림사(西林寺)가 함께 보이는데 본래는 신어산(神魚山)이라는 이름과 관련해 은하사라고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인조 22년(1644년)에 복원하면서 절 이름을 가까이에 있던 동림사(東林寺)와 구별해 서림사라 하고 두 사찰이 중창을 거듭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케 된다.


그 후 일제치하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다시금 잃을 뻔하였던 자취를 이 현판들을 통해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현판들 역시 부엌에 아무렇게 놓여 아궁이 속에서 한순간 사그라질 위기에 있었다고. 다시 한번 따뜻한 눈길로 현판을 바라보게 되는 까닭이다.

은하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너럭바위로 놓은 돌계단과 대웅전 앞에서 올려다보는 신어산 정상의 우뚝 솟은 바위들이다. 이 바위들은 모두가 나한상이라 여겨져 지금도 이 곳을 나한도량으로 삼아 기도하는 불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다.

단청과 벽화가 잘 남아 있다는 대웅전이 마침 보수 중이어서 그 예스런 모습을 눈에 담지 못하였다. 대웅전에 모셨을 관세음보살님은 다행히 보제루에 모셔져 있어 참배할 수 있었다. 현판에 드러난 대로 170년 전 󰡐�개의(改衣)󰡑�한 그대로인 듯 과연 위엄과 장엄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새벽녘 도량석 소리에 잠을 깬다. 청정한 스님 절에서는 게으른 객도 덩달아 부지런해지는가 보다. 별빛이 초롱초롱하다.


신어산을 오르는 절 주위로 소나무들이 빽빽하다. 수백 년 나이의 노송들이 그 속에서 더욱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땀을 식혀가며 쉬엄쉬엄 된비알을 오르니 어느새 영구암에 이른다. 우람한 나무 한쪽으로 옛 3층 석탑이 적벽돌을 탑신삼아 섰는데 그 아래로 은하사와 동림사, 김해 시내와 낙동강이 부채꼴로 한눈에 펼쳐진다.

신어산을 멀리서 보면 그 형상이 거북의 몸체요, 영구암은 그 머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한발짝 뒤로 물러나 보니 석탑이 서있는 자리는 함부로 들어서서는 안 될 신령스러운 곳(靈地)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법당 밑 우물 속에 신어(神魚)가 살았다는 전설 속 영구암의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벼랑길을 타고 산을 오른다.


천진암과 은하사로 가는 산마루 길, 우뚝 선 바위에 잠시 앉아 보라. 힘들게 지고 온 크고 작은 시름이 바람결에 날려 순간 자취를 감춘다. 눈을 뜨면 저 멀리 금정산, 원효산, 무척산이 물결이 되어 다가온다. 산 기운에 취해 걸음은 느림보가 된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은하사 대웅전 안 수미단에는 얼마 전까지 신어(神魚) 문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장유 화상과 허황후의 고향 인도 아유타국에서 지금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이 문양이 수로왕릉 납릉(納陵) 정문 위에도 그대로 남아있어 인도와 가야불교에 얽힌 아름답고 신비로운 전설을 이어주고 있다.


은하사 관세음보살님께, 신어산 나한님들께 찬란한 가야불교의 복원을 두손 모아 빌어본다. 


2006.06.29 


 


[내영혼의 쉼터 - 절집에 들르다] ⑥김해 은하사  - 부산일보  


텅빈 충만 앞마당에 노닐고…


신어산(神魚山)은 경남 김해시의 시가지를 품에 안은 채 외풍을 막아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풍광도 빼어나서 오래 전에는 '소금강산(小金剛山)'이라 불렸다. 이 산의 중심부에 가야의 김수로 왕(재위 42~199년)이 지었다는 '가락고찰' 은하사(銀河寺)가 자리잡고 있다. 은하사는 신어산의 옛 이름이 '은하산'이었던 까닭에 은하사로 불리고 있지만, 소금강산의 절이란 뜻의 소금강사(小金剛寺), 서쪽의 절이란 뜻의 서림사(西林寺)란 이름도 더불어 갖고 있다.

  

일설에는 인도 아유타국 출신의 왕비 허황옥의 오라비 장유(長遊)가 신어산을 기준으로 서쪽에 서림사를,동쪽에 동림사를 각각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설을 존중한다면,가야는 중국이 아니라 인도를 통해서 남방불교를 직수입한 셈이 된다.


은하사의 이력은 이처럼 고색창연하지만,원래 모습은 임진왜란의 와중에 소실돼 버렸고,지금의 골격은 1600년대에 갖추어졌다.


은하사 바로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을 향해 서면 어른도 애를 써야 한 발을 옮겨 놓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자연석 돌계단이 나온다. 절까지의 거리는 100m 남짓하다. 돌계단은,고찰의 부처님을 만나려면 이 정도 수고는 해야 마땅하다,며 무언의 시위를 하는 듯하다. 계단 양 옆으로는 갈대가 무성한 조그만 연못과 키 작은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옛 것과 새 것의 부조화


이 절집의 건물들 가운데 고풍스러운 향취를 풍기는 것들로는 대웅전(감상포인트)과 명부전,산신각,응진전 등을 들 수 있다.

수년 전에 신축된 2층 누각 형태의 범종각은 동남아지역에서 수입해 왔다는 거대한 나무들을 기둥으로 썼는데,위압적이고 기괴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으로서는 규모가 좀 작은 편이긴 하지만,절집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이 이 범종각에 오히려 주눅 들어 하는 듯해서 한편으로 마음이 쓰인다.


아닌 게 아니라 검소함과 질박함 같은 고찰 은하사의 종교적,공간적 미덕은 근래에 신축된 건물들로 인해 적잖이 훼손돼 버렸다. 범종각 앞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주차하는 고급승용차들을 대하고 나면 만정이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아름다운 꽃살,산과 숲의 절묘한 선(線)


대웅전 앞마당에서 산쪽을 향해 서 보면 왼편으로부터 순서대로 명부전,삼성각,대웅전,응진전이다.

나무를 깎아 빚은 명부전(죽은 이의 넋을 인도해서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하는 전각)의 꽃살들이 발길을 끈다. 색깔이 착하게 낡은 8엽,16엽의 보라 주황 노랑 하양 꽃잎들이 그물코처럼 가지런히 연결돼 있다. 이 꽃살 덕에 영혼들의 마음은 제법 밝아질 법한데,다만 처마 밑에 새로 입힌 단청의 채도가 너무 높아 전체적으로 부조화스러운 느낌이 드는 게 흠이다.


그래서인지 응진전(불제자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나한들을 모신 전각) 뒤로 보이는 절묘한 풍경 하나는 각별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바라보면,신어산 능선의 흐름과 응진전 바로 뒤 소나무 숲 꼭대기 선의 흐름이 마치 파도를 타는 듯 동일하게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동행한 김해시 송원영 문화재연구원은 "은하사와 관련된 풍광 중에서 가장 멋진 것을 꼽으라면 이 장면을 꼽을 것"이라면서 "또한 이 응진전은 대웅전과 나란히 서 있지 않고 비스듬히 비껴 서 있는데,선조들은 이처럼 산의 기맥과 산수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건물 배치의 관례까지 과감히 수정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그의 말은,문화재에 버금가는 기존 건물들이 신축 건물들의 위세와,안목에 다소 의심이 가는 개보수 작업으로 인해 욕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질책하는 것인 양 들리기도 한다.


혼돈 속의 깨달음


한편 당신은 이 절집에 들르기 전에 영화 '달마야 놀자'를 한번 보고 올 필요가 있다. 이 영화의 주된 무대가 바로 은하사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유쾌한 코미디물로 보이지만 과감하게 말하자면 진지한 불교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달마야 놀자'에는 곳곳에 불교적 은유와 상징이 장치돼 있다.

영화는 일관되게 불교의 선(禪)을 이야기 한다. 그런 점에서 은하사가 개인의 깨달음과 수행을 중시하는 남방불교와 연관된 곳이란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영화에서 주지 스님은 스님들과 조폭들에게 문제를 낸다. 10분 안에 밑 깨진 독에 물을 채우라는 것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청명 스님은 "마음이 물이요. 물 또한 마음과 다르지 않으니,깨진 독 안에 채운 소승의 몸과 마음은 깨끗한 물과 다르지 않다"는 논리로 자신의 몸을 독 안에 집어 넣는다. 주지 스님은 그러나 인정하지 않는다.


단순무식한 재규는 독을 연못 속에 던져 넣어 버린다. 물이 철철 넘친다. 재규는 한판승을 거두고,오히려 주지 스님이 거기에서 무언가를 깨친다. 이 장면은 세상에 소문이 자자한 6조(六祖) 혜능(慧能)의 일화와 닮았다.

5조 홍인(弘忍) 대사는 의발을 전수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문제를 낸다. 깨달은 바를 시로 적으라는 것이다.


유력 후보 신수(神秀)는 적는다. "몸은 보리수요/마음은 명경대라/매일 열심으로 닦아/티끌이 없게 하노라(身是菩提樹/心如明鏡臺/朝朝勤拂拭/莫使惹塵)."

일자무식의 남방 오랑캐 혜능은 적어주기를 부탁한다. "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맑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니네/본래 물건이 없는데/대체 어디에 먼지 끼고 때가 낀단 말인가(菩提本無樹/明鏡亦非台/本來無一物/何處惹塵)."



그리하여 생각하건대,은하사를 찾은 당신은 자연물인 산수와 인공물인 응진전의 넉넉한 조화,옛것과 새것의 부조화에서 오는 혼돈 따위들을 동시에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못깨닫고 하는 것은 오로지 각자의 근기(根氣)에 달려 있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너무 무책임한 것인가?


글=이광우기자 leekw@busanilbo.com


사진=문진우 프리랜서 moon-051@hanmail.net


김해 은하사 감상 포인트 - 대웅전


은하사 대웅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이다.


'문화재'란 타이틀은 만만한 게 아니다. 문화재에 관한 한 개보수를 할 때 전문가들이 개입하게 되어 있다. 이 대웅전은 그 덕에 옛 정취를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책을 반쯤 펴서 세워 놓은 듯한 여덟 팔자(八)자 모양의 지붕) 건물이다. 내부가 하도 아기자기하고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하루종일 이 안에 머물러 있어도 심심할 여지가 없겠다.


대웅전은 흔히 피안의 극락정토로 가는 반야용선(盤若龍船)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대체로 용머리가 장식물로 등장한다. 반야용선의 선수인 것이다. 그런데 무슨 배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정사각형이란 말인가. 김해시 송원영 문화재연구원은 "아마도 어떤 이유로 인해 앞쪽을 확장해 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건물의 앞 뒤가 좀 어색하고 부조화스럽다. 건물은 대체로 앞이 더 화려하고 뒤가 밋밋한데 이 대웅전은 거꾸로다.


어쨌든, 이 절집에서는 용머리(龍頭)가 대웅전 내부 벽면에 자리잡았는데, 네개나 되고 모양도 독특하다. 하나는 여의주를, 다른 하나는 물고기를 물고 있다. 눈은 사천왕상이나 장승의 퉁방울 눈을 닮았는데, 곁눈질을 하는 것 같고, 좀 희극적이다. 미국 만화영화의 주인공 도널드 덕이 연상되기도 한다. 저렇게 생겨 가지고서야 반야용선은 무슨,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그림들과 장식물들도 역시 좀 웃긴다. 명색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대웅전인데 벽면의 그림 중에는 효자손으로 허리께를 열심히 긁어대는 스님과 바위틈에서 비어져 나오는 물로 등물을 하는 스님도 보인다.


서까래 위에는 용두어신(龍頭魚身)의 용 그림도 있다. 역시 좀 웃긴다. 머리에 뿔이 나긴 났는데 나다가 만 듯 짤막하고 얼굴도 어수선하다. 늙은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옆구리에 난 발 모양의 지느러미는 또 뭔가. 이 용은 파다닥 대는 듯하다. 저래 가지고서야 무슨,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와중에 대웅전을 가로로 가로지른 서까래에 새겨진 귀면 두 개가 눈길을 잡는다. 귀면은 사악한 것들을 물리치고 참배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은하사 대웅전 안의 귀면들은 왼쪽 눈에 사시기가 있고, 짝짝이 눈이긴 하지만 그나마 가장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치 대웅전 안의 군기반장 같다. 스님들아, 용들아 좀 진지하게 살자, 사람들이 보지 않니, 안 그러면 확, 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한편 대웅전 안 수미단에는 마주보는 물고기 두 마리 즉, 쌍어(雙魚) 무늬가 들어 있었으나 도둑놈들에게 도난당했다. 이 무늬는 허왕후의 고향인 인도 아요디아(아유타)에도 흔해서 인도 불교의 가야 전래와 관련해 여러가지 설을 낳았던 터이다. 이처럼 은하사 대웅전 안은 바야흐로 야단법석이다. 이광우기자 

 / 입력시간: 2006. 07.13. 09:58 


김해 은하사 교통편  

부산이나 마산 쪽에서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동김해 IC를 나와 계속 직진한다. 인제대학교가 나온다. 200m 정도 계속 직진하다 보면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를 지나 약 3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다. '달마야 놀자 영화촬영지' '은하사'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우회전해서 30m 정도를 더 가다 좌회전 한다. 산으로 올라간다. 동부스포츠센터, 가야 연수원 등을 지난다. 오른편으로 주차장이 보인다. 계속 가면 은하사다. 시내버스가 없기 때문에 승용차가 없다면 인제대 입구에서 택시를 타거나 걸어야 한다. 

 / 입력시간: 2006. 07.13. 0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