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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토파니

도깨비-1 2005. 10. 30. 23:14
 

크라토파니

 '힘있는 것'의 나타남이라는 뜻을 가진 크라토파니[Kratophany: Krato(힘)+phai- nein(나타내다)]는 역현(力顯)이라고 번역되는데, 이는 공포, 외경심,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일체를 뜻한다. 이것은 성현(Hierophany)과 동의어로서 두려움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어떤 힘으로 이끄는 양면성을 지닌다. 참조: M.엘리아데, 『종교형태론』, 69~74쪽.


Mircea Eliade

1907. 3. 9 루마니아 부쿠레슈티~1986. 4. 22 미국 시카고.

종교사가·저술가.

여러 종교전승에 쓰인 상징어를 연구하고, 이 상징어의 뜻을 신비 현상의 기초가 되는 저변의 원시 신화로 환원하려 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8년 부쿠레슈티대학교에서 철학석사학위를 받은 뒤 캘커타대학교에서 산스크리트와 인도철학을 공부하고(1928~31), 그뒤 6개월 동안 히말라야 리시케슈의 아슈람('암자')에서 살았다. 1933년 루마니아로 돌아와 〈요가:인도 신비주의 기원에 대한 논문 Yoga:Essai sur les origines de la mystique indienne〉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부쿠레슈티대학교 조교수로 임명되어 종교사와 인도철학을 가르쳤다(1933~39). 1945년 파리 소르본대학교 에콜 드 오트 에튀드의 객원교수가 되었고, 1956년에는 시카고대학교의 종교사교수가 되어 그곳에 남았다. 1961년 〈종교사 History of Religions〉라는 국제 간행물을 창간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전통사회와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종교체험을 신빙성있는 현상으로 간주하고, '히에로파니'(hierophanies:거룩한 것이 세상에 나타남)라고 명명했다. 그의 연구 과제는 세계 전역에서 역사를 통해 나타난 '히에로파니'의 형식을 추적하는 데 있었다. 〈종교사 개론 Traité d'histoire des religions〉(1949)·〈영원회귀에 관한 신화 Le Mythe de l'éternel retour〉(1949)·〈샤머니즘과 무아지경에 들어가기 위하여 사용한 고대의 방법들 Le Chamanisme et les techniques archaïques de l'extase〉(1951) 등의 주요저서에서 전통적인 종교문화를 해석하고, 신비주의 체험의 형태들을 분석하고 있다. 또한 여러 소설을 써서 자기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소설로는 〈금지된 숲 Forêt interdite〉(1955)·〈노인과 관료들 The Old Man and the Bureaucrats〉(1979)이 있다. 후기 작품으로는 2권의 논문모음집인 〈탐구:역사와 종교의 의미 The Quest:History and Meaning in Religion〉(1969)·〈신비술·마술·문화형태:비교종교에 관한 논문 Occultism, Witchcraft, and Cultural Fashion:Essays in Comparative Religion〉(1976)이 있다. 3권으로 된 〈종교사상사 A History of Religious Ideas〉(1978~85)를 쓰기도 했다.

출처 : 다음백과사전 (http://enc.daum.net/)




God

신앙의 대상인 초월적 존재.

종교학의 입장에서 신 체험의 현상학적 특징과 신관의 다양한 유형, 셈족 계통의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 신관의 성서적 배경과 교의학적 발전과정, 한국 종교문화사 근저에 흐르는 한국인의 하느님 이해의 원형적 특성과 그 의미를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종교학적 고찰

인류의 문화사는 문화의 본질적 핵심인 종교사와 병행한다. 고대 원시사회의 정령신앙에서 현대 고등종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종교 체험에는 신 체험이 따른다. 종교학은 신 개념을 선험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현상학적 접근방법에 따라 다룬다. 신의 의미 또는 개념에 대한 현상학적 서술에서 신 체험은 2가지 현상학적 특성을 갖는다. 첫째, 신은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며, 인간의 유한성에 내포된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서 초월적 의미이며 능력이다. 둘째, 신은 성스러운 것, 즉 '거룩한 실재'이며, 인간의 생명을 의미있게 하며 치유하고 충만하게 하는 능력으로서 존재 그 자체이다.

신과 궁극적 관심

신 개념은 종교마다 유형적 특성이 다르다. 따라서 인격적인 신관과 초인격적인 존재론적 신관, 단일신론적·유일신론적 신관과 다신론적 신관, 초월적인 신관과 내재적인 범신론적 신관, 주술적 힘을 숭배하는 신관과 인격적인 윤리적 신관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신관의 다양성은 '궁극적 실재'를 체험하고 반응하는 개인과 집단의 문화적·역사적 조건과 삶의 자리가 다른 데서 연유한다. 그럼에도 신은 그 신을 신앙 대상으로 하는 개인과 집단에게 궁극적 관심이어야 하며, 일상적 경험을 넘어서는 능력과 의미를 부여하는 실재여야 한다. 종교사는 궁극적 실재인 신의 초월적 능력과 의미에 참여하고 관계를 맺으려는 인간의 반응을 보여준다. 종교적 당위론은 인간이 궁극적 관심을 가지고 신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신은 인간이 궁극적 관심을 가지도록 이끄는 능력과 의미의 실재이다. 신적 실재가 인간으로 하여금 궁극적 관심을 갖게 하는데, 그 현상학적 특성은 무조건적·절대적·정열적·황홀감정적·자기헌신적·수동적 경험을 동반한다.

신과 성스러움의 경험

M. 엘리아데에 의하면 종교 현상에 대한 모든 정의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성스러운 것과의 관계이다. 신은 성스러운 것, 또는 거룩하신 분이다. 신에 대한 현상학적 경험의 첫째 조건은 성스러움이다. 거꾸로 성스러운 능력과 실재가 아닌 것은 신일 수 없다. 종교 체험의 본질은 성스러운 것의 체험, 곧 거룩한 체험을 동반한다. 성스러운 것의 현현(顯現), 곧 '히에로파니'(Hierophany)는 역사적·문화적 차이, 환경, 조건에 따라 다양한 양태와 형식을 갖는다. 종교의식, 신화, 상징, 우주론, 성스러운 숭배물, 성스러운 시간과 공간의 성별, 성인과 사제 등은 성스러운 것의 현현을 매개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 '마나'는 멜라네시아인들에게서 신비적이고 활동적인 힘인데, 이 힘은 물리적 힘과는 다른 힘, 곧 성스러운 신적 힘이며, 뛰어난 영웅·사제·창조자·치유자는 모두 이 마나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어진다. 신의 현현을 성의 현현으로 보고, 종교를 성과 속의 변증법적 관계로 보는 엘리아데의 지론은 학계에서 모두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은 속된 것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고대의 인류 종교사, 특히 태고시대로 갈수록 성스러운 것은 참으로 실재성을 지닌 것, 존재, 영원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속은 비실재이고, 시간적인 것인 동시에 비존재적인 것이다. 그런데 신은 속의 형태를 취하고 이로써 자신을 드러낸다. 곧 성은 속의 형태로 나타난다. 히에로파니는 바로 이러한 성과 속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성과 속, 존재와 비존재, 절대와 상대, 영원과 시간의 역설적 합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두 실재는 서로 병치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대립적으로 갈등하는 것도 아니며, 구별 없이 동일화되는 것도 아닌 관계 형태, 곧 구별되면서도 분리되지 않는 역설적 일치에 이른다. 이때 속의 질서에 속한 실재물들은 거룩한 신을 계시하는 계시의 매체로서 기능을 발휘한다. 신성을 드러내는 계시의 매체에 속하는 첫째 범주는 나무·돌·바람·강·폭풍 및 계절의 변화 등과 같은 자연물과 자연현상이다. 둘째 범주는 전쟁, 출애굽, 국가건립, 역사적 대재난, 제국의 멸망 등 역사적 사건이다. 셋째 범주는 성인·현자·메시아·예언자·붓다·샤먼 등 인격적 존재이다.

신 체험의 현상학적 특징인 '거룩함'의 체험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서술한 루돌프 오토는 '거룩함의 경험'을 '누미노제'라고 부르고, 그 본질적 특성이 '두렵고 떨리는 신비감'(mysterium tremendum)과 '매혹과 끌림의 신비감'(mysterium fascinosum)이라고 서술했다. 전자의 본질은 신적인 실재를 경험하는 인간 존재가 느끼는 '경외의 감정'이고, 후자의 본질은 '황홀의 감정'이다. 오토는 종교의 근본 요소, 즉 신 체험의 근본적 특성이 합리적 논리나 개념을 넘어서는 비합리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비합리적'이라는 말은 '불합리한'것, 또는 '반(反)합리적인'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종교나 신 체험은 비합리적일 수는 있어도 반합리적이거나 불합리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오토는 신 체험에는 명확한 개념적 이해나 언어 표현을 초월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근세 이후 합리주의는 종교의 비합리성을 제거하고, 신 체험의 언어 표현이 불가능한 비합리적 속성을 반합리적인 것 또는 불합리한 것이라고 속단하고 종교를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려 했다. 그결과 종교는 도덕적인 가치체계나, 합리적인 종교철학의 체계, 심미적인 감정의 순화기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같은 종교적 신 체험에서는 오토가 말하는 거룩함 체험의 본질적 특성, 곧 '경외감과 황홀감'의 요소가 사라지고 만다. 종교의 합리화는 종교의 통속화 또는 세속화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신관의 유형

인류의 종교사에는 궁극적 실재를 경험하는 양식과 유형에 따라 다신론·유일신론·삼위일체신론 등 다양한 신관의 유형이 나타난다. 이같이 다양성이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 체험의 구체성과 보편성이 긴장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다신론(polytheism)이란 신들의 수효가 단수가 아니고 복수라는 의미에서 흔히 부르는 말이지만, 그 본질은 신의 숫자나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거룩함을 체험하게 하는 여러 준(準)궁극적 가치와 원리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원리, 즉 보다 높고 근원적인 원리를 인정하지 않을 때 다신론이 등장한다. 창조의 원리나 능력, 보존의 원리나 능력, 파괴의 원리나 능력 등에 각각 대등한 궁극성을 부여할 때, 힌두교의 경우에서는 브라마·비슈누·시바 등 다신의 형태가 나타났고, 고대 원시시대의 다신론에서는 불의 신, 물의 신, 나무의 신, 폭풍의 신, 파괴와 창조의 신, 사랑의 신, 죽음의 신 등 신화적 다신 형태가 나타난다. 다신론은 궁극적 실재의 구체적 특성을 나타내지만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다신교 사회는 경쟁하는 가치들의 복합적 상태가 지속되므로 민주적이거나 다원적이기는 하지만 보편성과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다. 한편 모든 상대적인 준궁극적 가치들을 넘어서 그것들을 통일할 뿐만 아니라, 심판하고 초월하는 절대궁극적 원리나 가치의 실재를 경험할 때 일신론(henotheism)이나 유일신론(monotheism)이 나타난다. 유대교의 야훼, 이슬람교의 알라는 유일신론적 신관을 보여준다. 우파니샤드의 브라만, 불교의 다르마(法), 도교의 도(道) 등은 궁극적 실재를 보다 존재론적·철학적으로 표현한 예라 할 것이다. 삼위일체론적 일신론은 신의 수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신의 구체성과 궁극성이라는 양면적 요소를 동시에 체험하는 과정에서 발달한 신관이다. 그리스도교의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론이나 대승불교의 법신불(法身佛)·보신불(普身佛)·화신불(化身佛)의 삼신불 사상이 그 예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신관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정신적·영적 전통에서 발생했고, 유대교는 고대 이스라엘 신앙에서 발생했다. 또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말씀, 그 안에 나타난 영적 생명의 힘이 당시 지중해 문화권을 이루고 있던 헬레니즘 문화의 토양에서 발전해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을 이어받고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형이상학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흡수하면서 고유한 신관을 형성했다.

이스라엘 신앙의 유산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신 체험은 엘, 엘로힘, 엘 샤다이, 야훼, 엘 엘룐 등 다양한 형태의 신의 호칭에서 비롯된다. 다신론적 신 체험이 철저한 유일신론으로 정립된 것은 대체로 모세의 출애굽 사건 때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야훼 신을 체험했는데, 정작 이같은 유일신론적인 이스라엘 신앙은 BC 6세기, 즉 바빌론 포로기 이후의 신명기학파와 예언자들의 신앙운동으로 정립되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 3장 14절에는 모세의 신 체험과 신의 자기계시가 전해지고 있다. 신의 이름을 묻던 모세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또는 "나는 존재 자체이다"로 번역될 수 있는 신의 응답을 듣는다. 이 신의 이름은 미래형태로, "나는 존재할 자이다"로 번역할 수도 있고, 최근의 어원 연구에 따라 "나는 존재하게 할 자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구약성서〉의 야훼라는 이름은 신의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신의 속성을 알려주는 말인데, 그 본질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창조의 기능'과 긍휼과 연민의 진통을 통하여 고통 속에 있는 생명들을 '해방시키는 기능'에 있다. 〈구약성서〉가 전하는 이스라엘 신관의 특성은 민족·혈통·국가를 초월하는 초월적 주권성(主權性)을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창조의 주 하느님이라는 신앙에 있다. 야훼 하느님의 언표불가능성, 불가시성은 신의 배타적 초월성과 주권성을 말하는 것이며, 그는 스스로 자기를 계시하는 창조의 주이다. 십계명의 제1·2 계명에서 이스라엘인들은 '신의 형상 제작 금지 명령'을 계율로 받는다. 우상숭배 금지명령은 이스라엘 야훼 신의 초월성과 자유에 상응하는 인간의 자유를 지키려는 배려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신은 그리스적인 '부동(不動)의 동자(動者)' 같은 영원한 존재가 아닌, 세계의 창조자·유지자·구원자로서 역사와 자연의 지평에서 항상 미래를 열어가는 '피조물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임마누엘)으로 고백된다. 이스라엘의 야훼 하느님은 자연의 영속성·순환성·지속성·반복성으로 고백되기보다는, 역사의 지평에서 약속과 희망의 능력으로 새로움을 창조해가는 구원의 주로 고백된다.

원시 그리스도 공동체의 신관

원시 그리스도 공동체에서 하느님 신앙은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의 신관을 유산으로 물려받으면서도 '부활의 케리그마'와 '성령의 경험'으로 새로워진 삼위일체론적 신관으로 고백되었다.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관을 나타내는 사도 바울로의 표현에 의하면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느님", "희망의 하느님"(로마 15:13, 8:11)이다. 거룩함·공의로움·사랑·전지전능·무소부재(無所不在)·영광과, 영? 벙ㅐ塤育愍?·창조성 등이 신의 속성으로서 고백되기도 했다. 신의 초월적 주권과 아울러 신의 내재성도 인지되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사도17:27~28)

교리적으로 삼위일체 신관은 니케아 공의회(325)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에서 확립되었지만, 이미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예배의식문과 복음서와 사도들의 편지에서 삼위일체론적 신관이 고백되고 있다. 성부 하느님은 모든 신성의 원천이며, 존재 그 자체이며, 제약이 없는 근거이다. 성자 하느님 로고스는 신성의 자기계시의 원리이다. 성령 하느님은 신의 자기충만과 내적 교제와 하나됨의 원리이다.

교의학과 현대신학의 신관

카를 바르트는 삼위일체론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발견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는 계시자와 계시사건과 계시의 현실재(Offenbarsein)를 구별하면서도 분리할 수 없는 통일성·일치성·동시성에서 체험했다.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존재양식'이며, 계시의 해석이라고 보았다. P. 틸리히는 삼위일체론을 그리스도교가 살아계신 하느님 체험을 서술하는 방식이며, 신의 역동성·계시성, 영의 현존적 활동을 표현하는 신학적 표현으로 본다. 삼위일체론은 하나의 신적 본질이 세 위격 안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하나의 신비요 비의(秘義)인데, 세 위격으로 존재하면서도 항상 통일성·교제·구원·창조행위의 충만 속에 있다. 삼위의 상호 발현관계에 대하여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견해를 달리한다. 서방교회는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현한다고 보지만, 동방교회는 성령이 오직 아버지로부터만 나온다고 본다. 신은 하나의 최고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 자체'이며, '존재의 지반'이며, '존재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신의 존재 증명에 관련된 고전적인 2가지 변증론, 곧 '존재론적 증명'이나 '우주론적 증명'은 어느 것이든 개연성일 뿐이다. 신의 존재는 증명되거나 부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신은 신앙의 대상으로서 '궁극적 실재'이다.

한국인의 신관  

 

신화와 제의(祭儀)는 종교를 표현하는 근원어이다. 신화에는 그 신화를 탄생시킨 민족이나 인간 집단의 근원적인 종교관·신관·가치관이 나타나 있다. 〈단군신화〉는 한민족의 발생을 설명하는 설화로서 한국인의 신관의 원형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사상'을 한국 종교사상과 신관의 기원으로 밝히려는 대표적 시론으로는 육당 최남선의 〈불함문화론 不咸文化論〉이 있다. 그에 따르면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은 몽골어 'tengri'에서 유래한 것으로 '밝다', '환하다'를 뜻하며, 하늘·태양·신을 총괄하여 신앙대상을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이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으로 음전(音轉)되어 발전되었다고 보는데, ''의 종교현상학적 체험 내용은 큼·밝음·하나임·바름·오램·높음·온전함·김·으뜸·중심 등이며, 한자표기는 환(桓)·한(韓)·발(發)·대(大)·이(夷)·부리(夫里) 등이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은 위와 같은 다양하면서도 원융회통(圓融會通)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복합적 총괄어이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韓·桓)과 밝음(朴·光明·太陽)이라는 개념적·실물적 상징을 통해서 한국인은 하눌님이라는 최고신 개념을 갖게 되었는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한국인의 하눌님 신앙이 고산숭배·광명숭배·태양숭배·하늘숭배의 제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결코 높은 산, 천공(天空), 태양 그 자체를 신격화하는 자연신 숭배의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들은 지고신 하눌님의 현현 형태, 곧 '히에로파니'이며, 만물은 지고신 하눌님의 주권과 신성을 분화형태로 담지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인의 신관은 일원론적 다신신앙 형태를 취했다. 이 신관은 신 체험에서 요청되는 구체성과 우주적 보편성을 동시에 충족시킨 형태이다. 최치원의 〈난랑비서 鸞郞碑序〉에 나오는 "國有玄妙之道 日風流……實乃包念 三敎"(〈삼국사기 三國史記〉 신라본기, 권4, 진흥왕조)라는 표현에 근거해 학자들은 한국 종교의 원형이 '풍류도'라고 밝힌다. 풍류도는 유(儒)·불(佛)·선(仙) 3교를 능히 다 포함한다. 유동식의 연구에 의하면, 풍류도는 우리말의 불[夫累]의 표현으로서 광명을 뜻하고, 알타이어 'burkan'과 어원이 같으며, 한민족 고유의 하느님 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다. 광명이세(光明理世)하는 혁거세를 불거안[弗矩內]이라고 한 것이 그 예이다. 한국인의 하눌님은 초월적·내재적인 신이며, 모든 현상계를 초월하는 지고신인 동시에 만유에 내재하는 범신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무교적 민속신앙의 다양한 다신론 형태를 지니면서도 지고신인 하눌님 신앙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같은 한국인의 원초적 신관은 배타주의적 유일신론이 아니고 포용적 유일신론이며, 타계적 초월신론이 아니라 현세적 범신론이며, 성속분리의 이원론이 아니라 성속일여(聖俗一如)의 창조적 변혁신론이다. 한국인의 하눌님 신관이 지향하는 이상적 현실세계는, 〈단군신화〉라는 건국신화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하늘과 땅의 융합, 하느님과 인간의 융합, 자기부정의 통과제의를 통한 새로운 문명의 탄생, 성과 속의 혼융일체를 통한 하나로 어우러지는 대동세계의 실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金敬宰 글

출처 : 다음백과사전 (http://en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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