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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졸혼(卒婚)'

도깨비-1 2016. 5. 13. 16:07

 

 

[만물상] '졸혼(卒婚)'

 

강인선 논설위원

 

입력 : 2016.05.12 03:00 / 조선일보

마하트마 간디는 서른일곱 살에 아내에게 '해혼식(解婚式)'을 제안했다. 아내는 고민 끝에 동의했다. 해혼한 뒤 간디는 고행의 길을 떠났다. 결혼이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것이라면 해혼은 혼인 관계를 풀어주는 것이다. 부부가 불화로 갈라서는 이혼과는 다르다. 하나의 과정을 마무리하고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인도엔 오래전부터 해혼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부부가 자식 키우며 열심히 살다 자녀가 결혼하면 각자 원하는 대로 사는 방식이다.

▶몇 년 전 은퇴한 언론인은 경상도 고향으로 돌아간 뒤 아내에게 "해혼 생활을 하자"고 했다. 각자 하고 싶은 일 하며 간섭하지 말자 했다. 아내는 남편이 멋대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줄 알고 펄쩍 뛰었다. 남편 생각은 달랐다. 자기는 시골 생활에 익숙하지만 도시 출신 아내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남편 신경 쓰지 말고 친구 만나고 여행도 다니라는 배려였다. 그는 "늙어 이혼하지 않으려면 해혼하라"고 권했다.

[만물상] '졸혼(卒婚)'
▶일본에 '졸혼(卒婚·소쓰콘)'이 늘고 있다고 한다. 2004년 책 '소쓰콘을 권함'을 쓴 스기야마 유미코는 졸혼을 이렇게 정의했다. '기존 결혼 형태를 졸업하고 자기에게 맞는 새 라이프 스타일로 바꾸는 것.' 스기야마 부부는 걸어서 25분 떨어진 아파트에 따로 살며 한 달에 두어 번 만나 식사한다. 원래는 전형적인 모범 부부였지만 아이들이 자라자 달라졌다. 시간 맞춰 같이 밥 먹고 가족 여행 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결혼 틀은 유지하되 각자 자유롭게 살기로 했다.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남이 안 보면 갖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했다. 부부나 가족은 너무 가깝기에 서로에게 거는 기대도 너무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도리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당신 없이 못 산다"는 말처럼 상대를 붙들어 매는 얘기도 없다. 우리라고 다를 리 없다. 서울에서 황혼 이혼(27%)이 신혼 이혼(25%)을 앞지른 게 벌써 5년 전이다. 50~60대 남녀 절반이 "남은 인생은 나를 위해 살겠다"고 한 여론조사도 있다.

▶주례는 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며 살라" 지만 평균 기대 수명 60세 시대와 100세 시대 결혼은 같을 수가 없다. 생을 접는 순간까지 기존 방식 결혼에 매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늘 수밖에 없다. 해혼, 졸혼, 해마다 갱신하는 장기 계약 결혼처럼 갈수록 새로운 '만년(晩年) 결혼'이 생겨날 것이다. 결혼의 의무를 다한 뒤 각자 살며 서로를 친구처럼 지켜보는 것도 '백년해로'라고 부를지 모른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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