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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대통령의 현문우답(賢問愚答)

도깨비-1 2015. 2. 2. 14:14

[朝鮮칼럼 The Column] 대통령의 현문우답(賢問愚答)

  •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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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2.02 03:00

    우리는 민주주의를 물었는데 신년 회견서 '愛民'으로 답해
    靑보다 민주화된 국민에 맞춰 애민하는 방식 성찰·조정하길.
    '正常化'는 열린 리더십 갖고 민주주의 완성하는 것이어야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올 초 신년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을 가리켜 '보기 드물게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박 대통령 자신도 그에 못지않게 '사심이 없는 분'으로 보인다. 후보 시절부터 '부모도 가족도 없는 제가 국가를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고 말해왔고, 그런 호소는 이번 신년 연설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집안에 우환이 있는 비서실장을 계속 청와대에 두는 것이나, 동생에게 냉정하기가 추상같은 것을 보면 대통령에게는 때론 인륜보다 국민이 더 소중한 것 같다.

    게다가 문제의 비서관 3인방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권력을 남용했다거나 금품을 수수한 증거가 없다. 그들은 대통령을 위해 사의를 표하는 제스처조차 보이지 못할 정도로 무(無)정치 인물들 같다. 정윤회씨는 오래전에 대통령 곁을 떠나 국정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문체부 인사? 설령 대통령이 관여했다 한들 권한 밖의 일은 아니지 않은가?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사심과 비리 없이 국민밖에 모르는' 정권이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지지율 29%로 떨어진 미스터리를 푸는 키워드를 나는 '현문우답'에서 찾고 싶다. 대통령이 강조했다는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 아니라. '우리는 민주주의를 물었는데, 대통령은 애민 정신으로 답했다'는 현문우답.

    여기서 잠시, 다시 신년 회견 장면으로 되돌아가 보자. 대통령이 "대면 보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고개를 돌렸을 때 어색한 웃음과 침묵을 흘리던 장관과 수석 중 누구라도 "예, 필요합니다"라고 한 인사가 있었던가. 그들은 모를 것이다. 대통령 주위에 병풍처럼 둘러서서 '성은이 망극한' 미소를 띠고 열심히 받아 적는 자신들의 모습이 마치 선생님에게 예쁨 받으려는 어린애같이 보인다는 것을. 여론이 비서실장과 3인방 교체를 그토록 원했던 이유는 그들이 대통령의 '애민'을 '비민주적 리더십'(김 실장의 용어로는 '충')으로 둘러싸 시대를 역행하는 장본인들로 비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청와대보다 훨씬 민주화되어 있고, 국민은 그들보다 훨씬 민주적이다. 우리는 그 온도 차이를 수정해 달라고 했을 뿐이다.

    민주적 지도자는 쉽게 언론을 '찌라시'라고 폄훼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충성하는 비서보다 자기가 충성할 국민의 소리를 더 무겁게 받아들인다. 그들의 월급은 왕실 창고가 아닌 우리 세금에서 나오므로. 민주적 지도자라면 재래시장과 어린이집을 돌며 환호를 받는 전시성 '애민 행보'보다는 내각과 열띤 토론을 통해 정책을 논하고, 정당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며, 국민을 향해 최선을 다해 설득하는 '민주 행보'를 선호할 것이다. 왕조시대부터 있던 민심(vox populi)이 두려워 오래 준비해온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지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계몽된 사회 산물인 깨어 있는 시민들의 여론(public opinion)을 지혜롭게 활용해 사회 변화의 자양분으로 삼을 것이다.

    민주적 리더십에는 민주적 팔로십(followship)이 반드시 필요하다.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요즘 시대정신과 조화를 이루도록 도와야 한다. 그건 대통령 주변 인물들과 집권 여당의 시대적 소명이기도 하다. 창조적 리더십으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유행 지난 옷처럼 옷장에서 퇴출당할 것이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미완의 과제이지만, 해방 후 70년 동안 시나브로 젖어든 민주 사상과 자유정신은 우리 사회의 의식 세계 저변을 놀랍게 변화시켜 왔다. 사회 각계에서 분출하는 을(乙)의 소리와 부쩍 눈뜨기 시작한 약자들에 대한 배려, 나날이 강조되는 소통의 중요성, 그리고 눈부시게 달라진 알파걸들의 활약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빨리, 그리고 혁명적으로 수평 사회로 옮아가고 있는지 말해준다. 이 변화의 속도와 방향과 크기에 맞지 않는 정부나 지도자는 계속 여론에서 이반(離叛)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애민 정신은 고맙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왕조 시대 백성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지도자는 없었다. 문제는 지도자마다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고, 지금 대통령의 '방식'에 대한 성찰과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건 스타일이나 스킨십의 문제가 아니라 콘셉트 문제이다. 그 콘셉트란 민주주의이고, 열린 리더십이다. 민주화의 터널을 거친 우리에게 비정상의 정상화는 아직 미숙한 민주주의의 완성이어야 하고, 그 중심에 바로 정치 지도자가 자리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대통령이 가장 먼저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