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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대통령은 안 가도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

도깨비-1 2015. 5. 7. 12:25

 

[양상훈 칼럼] 대통령은 안 가도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

  • 양상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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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5.07 03:20 / 조선일보

    3000만명 목숨 앗아간 獨·러시아 大전쟁
    우리도 유탄 맞은 세계사를 바꾼 사건
    외눈박이로 세상 보며 역사 헤쳐갈 수 없다

    
	양상훈 논설주간
 
     양상훈 논설주간
    오는 9일은 러시아의 이른바 '대조국전쟁'(독일과 싸운 2차대전·1941~1945) 승리 70년이다. 올해도 우리나라에선 김정은 참석 여부 외에는 아무런 관심 없이 지나갈 것 같다. 많은 이가 2차대전을 미국과 독일이 싸운 전쟁으로 안다. 냉전과 미국 중심 교육, 할리우드 영화가 만든 오해다. 미·영 연합군의 유럽 전선 전사자는 40만명 정도다(6·25전쟁 국군 전사자는 15만여명). 러시아군은 800만명 이상이 전사했다. 독일은 러시아 전선에 전력의 80~90%를 투입했고, 300여만명이 전사했다. 미·영과 싸움에서 나온 피해의 4배가 넘는다. 전쟁 후 러시아의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 합계는 비밀로 분류됐다. 그러나 대략 2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반도 인구와 비슷하다. 전쟁 후 러시아 마을에서 살아 돌아온 청년은 100명 중 10명, 그중 사지가 멀쩡한 청년은 1명꼴이었다고 한다. 2차대전 유럽 전선은 사실상 독일과 러시아의 싸움이었으며 히틀러는 말 그대로 러시아 국민이 바다처럼 흘린 피에 빠져 죽었다. 그리고 이 전쟁이 그 후 세계의 모습을 결정했고 우리도 그 유탄을 맞았다.

    독일·러시아 전쟁사를 보며 러시아 국민의 저력에 할 말을 잊는다. 인간 백정 스탈린과 공산당의 공포정치에 떨던 러시아 국민은 처음엔 독일군을 해방자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인의 목표는 아시아 피가 섞인 러시아인들과 볼셰비키를 말살한다는 것이었다. 공산당의 희생자인 러시아 국민을 학살하고 불태워 적으로 만들었다.

    독일·러시아 간 주요 전투는 단 하루 충돌의 양측 사상자가 10만명을 넘을 정도였다. 독일군 포위망 안에 든 러시아 마을들은 그야말로 증발했다. 생존자들은 몇 시간이고 시신을 밟으며 걸어야 했다. 러시아 국민이 마침내 들고일어났다. 독일군 폭격을 피해 우랄산맥으로 급히 옮긴 군수공장 수천 곳이 하루 만에 생산을 재개한 것은 많은 기적 중 하나에 불과했다. 900일간 포위된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시민들은 혁대, 나무 책상다리, 나중에는 인육을 먹었다. 도시 인구 3분의 1인 100만명이 굶어 죽었다. 그래도 항복하지 않았다. 이 도시의 러시아미술관에는 독일과 벌인 전쟁을 그린 대형 그림들이 끝없이 걸려 있다. 그 그림에서 러시아 국민은 망치와 삽을 들고 독일군의 기관총 위로 몸을 던진다. 그림의 하늘은 모두 핏빛이다. 죽고 죽고 또 죽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은 그들은 세계 최강 독일군을 누르고 마침내 전세를 역전시켰다.

    당시 러시아는 미·영이 독일과 러시아가 싸우다 공멸하기를 바란다고 믿었다. 그러다 러시아가 독일로 진격을 시작한 다음에야 노르망디에 상륙해 손쉽게 독일로 들어와 승전 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했다. 러시아는 베를린을 점령하는 데만 30만 인명을 바쳐야 했는데 미·영은 사실상 걸어 들어왔다. 전쟁 막바지에 "미·영·독이 함께 러시아 야만족과 싸우자"고 제안했던 독일은 결국 항복도 미·영에 먼저 했다. 다 불탄 러시아 평원엔 분노가 남았다.

    그때 러시아가 멸망하고 히틀러가 승리했다면 한반도 분단은 없었을까. 김일성도, 6·25도 없었을까. 역사는 러시아의 편을 들어 우리와 러시아를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갈라놓았다. KAL기 피격 등 한(恨)도 쌓였다. 그러나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일시적으로 쇠락했어도 러시아 국민의 무서운 저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우리가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로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러시아 국민의 힘을 적(敵)이 아닌 친구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지금 러시아에선 반미 감정이 극에 달했다. 커피점에서 아메리카노가 사라졌고 이상 기후조차 CIA의 조작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이다. 독일 침략 때 크림반도의 전략 요충 세바스토폴 항구를 지키던 러시아군은 6개월이나 버티다 결국 무너지게 되자 남은 병력이 항복을 거부하고 자폭했다. 그곳이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 영토가 된 것도 모자라 나토(NATO)로 들어간다는 것을 러시아인들이 용납할 수 있었을까.

    러시아는 지금 미국과의 대결에 북한 카드도 쓰려 한다. 세계 최고라는 러시아의 대공미사일 포대가 북으로 넘어간다면 악몽이다. 그래도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이 무산되는 것을 보면 아직은 러시아가 선(線)을 넘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 승전 70년 행사 초청에 응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결과로만 놓고 볼 때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결정 과정에서 어떤 전략적 검토가 있었는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5월 9일 오전 10시 모스크바 러시아 정교회는 2000만명의 영혼을 달래는 종을 울린다. 나라나 이념을 떠나서 참혹한 시련을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는 것만으로도 언젠가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이 중요하다고 한쪽 눈을 감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세계와 세계 역사를 열린 두 눈으로 냉철하게 살피지 않으면 우리의 시련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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