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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창] 투표에도 필요한 꿀벌과 개미의 '함께지성'

도깨비-1 2016. 3. 30. 14:21

[과학의 창] 투표에도 필요한 꿀벌과 개미의 '함께지성'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 2016.03.30 03:00 / 조선일보

한두 명 소수의 전문가보다 다양한 배경 가진 여럿이 더 합리적인 것이 '함께지성'
꿀벌·개미의 효율적인 소통… 누구나 참여하는 보통선거도 함께지성의 필요성 보여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제 나이가 몇으로 보이나요?" 강연장의 사람들에게 나이를 맞혀보라고 한 적이 있다. 각자 짐작해 적어낸 숫자를 모아 평균을 내니, 그때 내 만 나이 마흔여덟 하고도 다섯 달이 딱 나와 놀란 적이 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내 나이를 정확히 적은 것이 아니다. 스물넷으로 완전히 잘못 적은 분도(이 자리를 빌려 감사!), 쉰여섯으로 적은 분도(속상하게도!) 있었다. 독자들도 한번 해보시길. 나이든, 키든, 몸무게든, 사람들의 예측은 제각각이지만 적어낸 숫자를 모아 평균을 내면 실제의 참값과 비슷할 때가 많다. 한두 사람 전문가에게 물어 답을 구하는 것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럿이 함께하면 더 합리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을 가리켜 '집단지성'이라 부른다. '집단'이 '획일'을 뜻할 때가 많기 때문에, 나는 '함께지성'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더 낫다고 제안한다. 다양한 여럿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함께지성.

사람뿐 아니라 꿀벌도 놀라운 함께지성을 보여준다. 꿀벌 집단이 성장해 규모가 커지면 집단을 둘로 나눠 꿀벌 일부가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난다. 어디로 옮겨갈지 결정할 때 꿀벌들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서로 소통한다. 많은 꿀벌이 사방으로 흩어져 옮겨갈 후보지를 물색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각자 찾은 곳이 어디인지를 춤으로 알리는데, 마음에 들수록 더 오래 춤을 춘다. 장소를 하나 찾기는 했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꿀벌은, 다른 꿀벌의 열정적인 춤에 설득되어 추천된 장소에 가보고 마음을 바꿔, 이후에는 그 장소를 알리는 춤 대열에 동참한다. 시간이 지나면 옮겨갈 후보지의 가짓수는 점점 줄고, 각 후보지에 동의하는 꿀벌의 숫자는 늘어나, 결국 어디로 옮길지 한 장소로 꿀벌들이 합의하게 된다. 개미도 마찬가지로 함께지성을 이용한다. 앞서간 다른 개미가 남긴 휘발성 있는 화학물질인 페로몬을 이용해 서로 이견을 조율해, 결국 집에서 먹이까지 이동하는 가장 시간이 덜 걸리는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낸다. 꿀벌이든 개미든, 구성원들의 소통은 함께지성의 발현에 꼭 필요하다.

민주주의 국가 어디서나 실시하는 보통선거의 근거가 바로 함께지성이다. 정치학 박사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것보다, 누구나 참여하는 보통선거를 통하는 것이 사회를 이끌 정치인을 뽑는 더 좋은 방법이다. 지지하는 후보를 알리기 위해 꿀벌처럼 춤을 추지도, 개미처럼 페로몬이 든 침을 분비하지도 않는 사람은, 말과 글로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밝힌다. 예전에는 둘이 직접 만나야 소통할 수 있던 우리는 이제 다른 방법으로도 '말'하기 시작했다. 바로 누리소통망(SNS)이다. 어제저녁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지지 정치인이 누구인지 몇 번의 클릭만으로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새로 사귄 사람이 사회를 보는 눈이 나와 너무 다르면, 누리소통망에서 그분과의 친구 관계를 끊고는 한다. 이렇게 나뉘어 쪼개진 좁은 세상에서, 듣고 싶은 얘기만 듣는 마음 편함은 다른 얘기를 하는 넓은 세상 다른 마음의 존재를 잊게 한다. 꿀벌과 개미를 생각해 보라. 남 얘기를 듣고 그 말이 옳으면 자기 생각을 바꾸는, 용기 있는 '줏대 없음'이 바로 함께지성의 바탕이다. 민주주의의 토대는 바로 소통하는 '얇은 귀'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반길 일이다. 피할 일이 아니라 들을 일이다.

※'과학의 창'은 이번 회부터 김범준 교수가 맡습니다. 서울대 물리학과 졸. 한국복잡계학회 회장.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