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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로봇이 記事를 쓰기 시작했다

도깨비-1 2016. 1. 27. 10:13

 

[선우정 칼럼] 로봇이 記事를 쓰기 시작했다

 

입력 : 2016.01.27 03:20 / 조선일보

기술 진보와 권력 이동이 縱橫으로 스치는 접점에 지금 한국이 있다
합당한 수준의 개혁이 꿈에 불과하다면 生存도 망상에 불과하다

선우정 논설위원

  선우정 논설위원

 

 '25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4.0포인트 상승한 1893.43에 거래를 마쳤다.' 엄격하게 말해 이 문장은 문법에 어긋난다. '거래를 마쳤다'는 술어에 대응하려면 '주식시장'을 주어로 해야 한다. 지수(指數)를 뜻하는 '코스피'가 어떻게 거래를 마치나? 국내 한 인터넷 언론에 나오는 주식 기사를 요즘 읽으면서 흠잡는 데 열중하고 있다. 엊그제처럼 약간의 흠이라도 발견하면 사소한 우월감을 느낀다. 200년 전 방직기를 처음 본 영국 방직공의 심보도 이랬을까. 지난주부터 시작된 이 기사엔 '로봇 저널리즘'이란 문패가 붙어 있다.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가 생산한 기사라는 것이다.

25년 전 경찰서 기자실에서 숙식하면서 처음 쓴 기명(記名) 기사는 짧았다. '연세대는 28일 교내 노천극장에서 93학년도 학위수여식을 갖고 모두 4558명에게 학위를 수여했다…선우정 기자' 아들 이름이 신문에 나오길 고대하던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겨우 요거 쓰려고 열흘 동안이나 집에 안 들어온 거니?" 웃음소리가 생생하다. 며칠 후 그럴듯한 대학 문서를 입수해 대문짝만 한 기사를 실었다. 내 이름으로 나갔지만 실은 선배가 써줬다. 훈련이 모자라 분석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의 기사 작성 능력은 지금 컴퓨터의 기사 알고리즘 수준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 후 내 능력은 꽤 늘었다. 앞으로 컴퓨터 능력은 훨씬 더 빠르게 향상될 것이다. 문법 정도는 낼모레 개선될 수도 있다. 진보의 한계는 어디일까. 로봇은 조만간 빅데이터를 활용한 분석 기사 영역까지 넘볼지 모른다. 200년 전 영국 직공들처럼 로봇 파괴 운동이라도 시도해 볼까. 씨도 안 먹힐 게 틀림없다. 로봇이 도달할 수 없는 지혜와 감동의 영역으로 휴먼 저널리즘의 영역을 확장하든지, 속수무책으로 몰락해 다른 호구책(糊口策)을 찾든지 갈 길은 뻔하다. 이런 미래에 직면한 인간계(界)는 기자 직군만이 아닐 것이다.

중국산 스마트폰을 작년 8월부터 쓰고 있다. 기존 국산 스마트폰과 번갈아 사용한다. 나는 기계와 친한 체질이 아니다. 내가 중국산 스마트폰을 일부러 사용하는 이유는 로봇 기사를 찾아 읽는 심리와 비슷하다. 낯선 것이 우리 영역을 치고 들어오니 뭔가 흠을 잡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통화 품질, 재생 음악 음질 등 기능이 떨어지지 않는다. 값은 3분의 1 수준이다.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면 무엇을 살까.

얼마 전 국산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 사람을 만났다. 이런 말을 들었다. "국산 스마트폰 하나에 한국 전자산업의 생태계가 담겨 있다. 중국에 밀리는 것은 이 생태계가 도태되고 있다는 뜻이다." 남들이 우리보다 싸게 부품을 만들면 우리도 싸게 만들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남들 것을 써야 우리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간결한 논리였다. 이런 말도 했다. "부품가를 낮추려고 하면 납품가를 후려친다고 비난한다. 남의 부품을 쓰면 우리 중소기업을 죽인다고 비난한다. 선악(善惡)의 관점으로 몰아붙이면 답이 없다. 우리 생태계 전체가 몰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미래에 직면한 생태계는 스마트폰만이 아닐 것이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 10일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과 함께 약화돼선 안 된다.' 나라가 쇠퇴한다고 기업이 따라 쇠퇴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손정의답다'고 느낀 것은 일본 정부를 향해 무언가 요구하는 대목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기업 스스로 일본에 기대지 말고 해외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달리 들으면 무섭다. 그는 회사가 나라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지속 성장을 꿈꾸는 많은 글로벌 기업이 앞길을 막는 모국을 버렸다. 우리 기업인들 그렇게 못 할까. 수조원 이익을 내고도 몇년 후를 걱정해 식솔 수천 명을 거리로 내보내는 게 우리 대기업이다. 그들은 지금 생존을 고민할 것이다. '경제 살리기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서명하면서 겉으로나마 나라에 무언가 요구하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한국 경제는 묘하게 얽혀 있다. 미래의 산업은 우리가 아직 준비하지 못한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동안 준비하고 자랑해온 영역은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산업 기술의 진보와 산업 권력의 이동이 종횡(縱橫)으로 스쳐가는 접점에 있는 듯하다. 이런 국가 좌표(座標)를 생각하면 개혁 수위를 열 배 더 높여도 모자라지 않을까. 합당한 수준의 개혁이 지금 정치 현실에서 가당치 않은 꿈이라면 한국의 새로운 도약 역시 헛된 꿈에 불과할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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