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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코리아] '요즘 애들'에게 세금을 바친다 생각하니

도깨비-1 2015. 8. 12. 10:07

 

 

[터치! 코리아] '요즘 애들'에게 세금을 바친다 생각하니

입력 : 2015.07.24 03:00 / 조선일보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우리 기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첫째, 둘째, 셋째…." 음식 접시가 여럿 들어왔지만 A 공공기관장은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명곡 1000곡 음반 세트'를 만 원짜리 한 장에 팔던 외판원이 떠올랐다. 한마디로 뉴스 가치가 없는 얘기였지만 그 '열의'에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온 신입 직원은 특이했다. 제 앞 접시를 싹싹 비우고, 휴대폰을 보더니 이어 고개를 조심스럽게 돌리며 목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원장님도 좀 드세요" 같은 말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런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녀는 800대1쯤의 경쟁을 뚫은 서울대 출신이라 했다. 배석한 중간 간부에게 그 직원 얘기를 했다. "에이, 요즘 직원들 다 그래요. 이런 걸로 잔소리하면 '꼰대' 소리나 듣고." 그 얘기를 하는 간부가 더 밉상이었다.

"재미없게 했으니 졸았지. 자기 특강 시간에 졸았다고 여성을 색출하라는 것은 옹졸한 짓이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강연 도중 잠잔 연수생을 '색출'하라고 지시했다'는 기사에 '쿨'한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논점이 틀렸다. 첫째, 이 강의는 대학교나 동호회·구민회관의 '특강'이 아니다. 5급 공채(옛 행정고시) 출신 403명, 민간 경력자 117명, 도합 520명을 행정 각부에 배치하기 전, 하루에 7시간, 일주일에 5일씩 22주간 월급의 80%를 줘가면서 공무원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물론 그들 월급은 국민 세금이다.

둘째, 졸았던 게 아니다. 사건(?) 발생 시각은 오전 9시부터 130분, 강연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직자 윤리'였다. 강의가 시작되자 연수생이 엎드려 자기 시작했고, 강연 내내 그 자세였다는 것이다. 이 처장은 "저렇게 두 시간 내내 잤다면 몸이 아팠거나, 연수를 받을 생각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알아봐라." 처장님의 '알아봐라'가 현장에서 '처장님 지시에 따른 연수 중 취침자 색출'로 변질됐을 건 뻔하다. 절간에서 빈대 잡듯 난리를 쳤을 것이다. 연수생들이 '지나친 처사'라 할 만도 하다.

그런데 조는 것과 자는 것은 다르다. 조는 것은 '수면욕'에 의지가 잠시 꺾인 것이고, 엎드려 자는 건 '강력한 의지'의 발현이다. "뭐 어쩌라고" "아, 몰라" 이런 종류의 판단 말이다. '아무것도 안 듣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듣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듣고 싶다.' 민원인 입장에서 이런 공무원 만나면 사업 때려치우고 싶어진다.

셋째, '여성을 색출하라고 지시한 것이 문제'라는 대목도 공감하기 힘들다. '여성 수면 면책특권' 같은 게 있나? 주변 동료들의 태도에도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왜 아무도 그녀를 깨우지 않았을까. 무관심인가, 애틋한 동료애인가.

다른 경로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날 현장에서 졸거나, 휴대폰 만지거나, 멍 때린 이들도 다수였다고 한다. 5급 공무원 하나를 채용했을 때 정부가 퇴직 때까지 지불하는 비용은 대략 30억원이다. '30억원짜리 공무원'을 제대로 기르는 방법을 연수 프로그램 설계부터 정식 임용 절차까지 새로 판을 짤 때다. '그냥 요즘 애들'에게 세금을 퍼부을 이유는 없다. 이건 '상관(上官) 갑질 사건'이 아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