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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를 우려먹는 사람들.

도깨비-1 2016. 2. 13. 13:44

 

 

[터치! 코리아] 흙수저를 우려먹는 사람들

입력 : 2016.02.13 03:00 / 조선일보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청춘을 위로한다던 각종 사탕발림… '그들'만 혜택입고 뭐가 달라졌나
요즘은 '기득권'이 흙수저 마케팅
청년이 경계해야 할 대상은 "너흰 흙수저"라며 위로하는 이들
흙은 구우면 도자기 되고 물에 넣으면 흙탕물 되는 법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야당을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대선에서 누구를 찍었나" 입사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TV 프로그램에서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뤘다. 이날 게스트였던 유시민씨가 이렇게 답했다. "'그런 정치 의견을 묻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 절대 취직 못 한다. 차라리 '그 문제는 잘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답해라." '현실적 비겁'을 가르치는 그를 보면서 그가 차라리 다른 '기성'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우석훈 교수의 책 '88만원 세대'가 나왔을 때부터였을까. 2007년 금융 위기 전후, 전 세계적으로 '좌절한, 혹은 좌절할' 젊은이가 화두가 됐다. 그런데 그 책으로 명문대 나온 우석훈 교수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 말고, 젊은이 삶은 뭐가 달라졌던가. 어느 나라건 젊은이들이 물먹은 솜처럼 축축 처지는 것이 유행인지, 2011년에는 직설적 감정을 지시하는 '분노하라'라는 책까지 나왔지만, 프랑스 작가 스테판 에셀이 유명해진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 이듬해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가 '청년위원회'를 만들고 대대적 선전을 했지만, 이준석씨가 20대 총선에 나온다는 사실 말고 뭐가 남았나. 집권당과 대통령은 그 많은 구호를 어디에 '킵'해뒀는지 모르겠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수저 계급론'이 딱 그 짝이다. 부모 계급이 자식 세대로 그대로 이어진다는 인식이다. 툭하면 그 단어로 '장사'를 한다. '사시 존치론자'들의 최대 마케팅 포인트는 '사법시험이 흙수저의 신분 상승 사다리'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시 준비생'이란 자격조차 금수저나 은수저들의 몫이다. 사시생이나 로스쿨생이나 부모 소득이나 사회 계층 구분에서 별 차이가 없음을 자료가 증명한다. 그들은 '사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흙수저'를 끌어다 쓸 뿐이다.

게임 회사 사장 출신인 김병관씨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흙수저와 헬조선을 탓하는 청년에게 '노오력해보았나'를 물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자기 기업에서 비정규직을 많이 뽑고 번 것에 비해 임금으로 돌려준 것이 적었다는 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올해 43세에 서울대를 나온 그가 '흙수저 동질성 마케팅'을 하는 대목에서 왠지 모를 울화가 치밀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농담이 유행이다. "내 꿈은 재벌 2세인데 아버지가 도통 노력을 안 한다."

기성세대는 "자기 잘나면 개천에서도 용 난다"며 아이들을 타박한다. 물론 그런 시절과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로 40, 50대 이상에 '개천표 용'이 많다. 왜? 나라 전체가 '개천'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나라 자체가 '생태 공원'이 됐다. 거기에서 유전자 변이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용'이 못 된다 투덜거린다면, '너는 결코 용이 되지 못하니, 덩치 큰 미꾸라지가 돼라' 말해주는 편이 낫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력이나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너는 자본력은 없다. 노동력은 육체적 노동력, 지식 능력 등이 있는데…" 하고 차근차근 설명해줘야 한다. 꼭 응원이 필요하다면, "부모는 흙수저지만, 노력하면 은수저까지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해주는 게 솔직하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계급이 고착되는 건 필연이다.

이런 말도 필요할 것 같다. "그대들이 가장 조심할 것은 '흙수저와 함께 눈물을 흘려주겠다'는 사람 이다." '흙수저'를 불에 구우면 도자기가 되고, 물에 담그면 흙탕물이 된다. '흙수저'를 끌어안고 눈물 흘려주는 사람은, 그걸 우려먹으려는 사람들이다. 돈도, 빽도, 몸도 시원찮으면 불길 속에 몸을 태우듯 '노오력'하거나, 그것도 어려우면 실업 연금의 길이 있다고,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다른 길이 있는 듯, 다른 길을 만들 듯 하는 건, 집단적 사기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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