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아베의 예언, 스님의 경고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라는 인물이 있었다. 사무라이(武士)의 아들로 일본 총리를 지낸 그는 1944년 마지막 조선총독으로 부임해 조선 처녀들을 전선(戰線)의 위안부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됐다. 패망 후 제 나라로 돌아가며 그가 남겼다는 말이 전해진다. "일본은 졌지만 조선이 이긴 것은 아니다. 장담컨대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넘게 걸릴 것이다. 우리는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植民) 교육을 심어놨다.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그의 어록(語錄)은 "나는 다시 돌아온다"로 끝난다. 이 말의 진위(眞僞)를 두고는 논란이 있다. 학계에서는 아베가 이런 말을 했다는 확증이 없다는 게 다수설이라고 한다.
아베는 우리에겐 원수지만 일본에선 엘리트요 충신(忠臣)이다. 육사를 나와 육군대장·총리를 지냈고 아들은 육군항공대에서 영국 함대와 싸우다 죽었다. 그런 아베 아닌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이런 말을 했다면 오히려 두려운데 놀랍게도 '예언'까지 적중하고 있다.
그가 말한 식민 교육 탓인지, 한자 교육을 안 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앞뒤 재지 않고 덤비는 국민성 때문인지 이 아베(阿部信行)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지금 총리가 혈연이라고 착각한 한국인도 꽤 됐다. 도쿄(東京)와 지옥의 아베들은 이 소식에 낄낄댔을 것이다.
"아베가 우리 위대성을 인정했다"며 즐거워한 한국인도 있었다. 아베 어록의 핵심이 '식민 교육→우리끼리 이간질→노예적 삶'인걸 오독(誤讀)한 것인데 이것은 독서율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한국인들의 독해력 때문일 것이다. 아베 어록을 알게 된 것은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옹산(翁山)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그는 사찰령으로 조선 승려를 더럽힌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와 한·일 불교 강제병합을 획책한 7대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의 그 흉계를 사자후(獅子吼)로 좌절시킨 만공(滿空) 대선사를 이야기하던 끝에 아베의 예언을 상기시켰다.
나는 "무장 투쟁뿐 아니라 만공 대선사 유(類)의 독립운동도 인정돼야 한다"는 옹산 스님의 의지를 보도하며 구속·복역이란 형식에 얽매인 보훈 당국의 태도를 바꿀 발전적 논의를 기대했는데, 목도한 것은 사이버 공간에 무성한 '우리끼리 깎아내리기'였다. "일부 스님은 진보 좌파"라는 말이 독립운동과 무슨 관계이며 "일본 불교는 지지를 받는데 한국 불교는 개판"이란 지적은 만공 대선사와 무슨 연관이 있으며 "일본강점기의 암울한 기억은 그만 되새김질하자"는 말이 왜 나왔는지 도무지 모를 노릇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 '친일파'다. '빨갱이'나 '친미 주구(走狗)'가 당하는 봉변은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애들 장난 수준이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과 6·25의 영웅 백선엽 장군마저 지금도 그 덫에서 신음하는 것을 지옥의 아베는 어떻게 생각할까?
옹산 스님에게 "69년 전 돌아가신 만공 스님이 독립유공자가 되면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데, 일본대사관 앞에 그들을 꾸짖은 만공 대선사상(像)이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스님을 "건물 수십 채 짓는 것보다 더 큰 불사(佛事)를 하신다"고 격려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는 것은 70년 전 아베가 했다는, 한국인을 예리하게 간파한 예언이 칼춤 추는 광경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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