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터치! 코리아] "뭐라고, 당신이 책임질 거야?"

도깨비-1 2015. 7. 22. 10:28

 

[터치! 코리아] "뭐라고, 당신이 책임질 거야?"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입력 : 2015.06.27 03:00 / 조선일보

    곽경택 감독의 영화 '극비수사'는 1978년 부산에서 일어난 '효주양 유괴사건'이 소재다. 효주는 두 번이나 유괴되어서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사건의 주인공이다. 첫 번째 유괴됐을 때 아이를 33일 만에 구한 건 적당히 부패한 형사와 사기꾼인지 도사인지 모를 점쟁이였다. 두 사람은 부산·서울 경찰이 합세한 합동수사팀의 갖가지 방해를 이겨내고 아이를 구했다.

    영화에서 둘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유괴범이 아니라 아이 목숨보다 범인 잡아 업적 세우는 데 안달이 난 경찰 동료들이었다. "그러다가 범인 놓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니가 책임질 거냐고?"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여러 차례 나온다. 도전하는 이의 기를 꺾는 유효한 공격술은 '니가 책임질 거냐?'는 현실론이다.

    인터넷 검색어에 '메르스 정부'라 치면 '무능'이라는 단어가 따라 나온다. 이 정부의 메르스 대응에 관해서는 말하면 입만 아프다. '대형사고 과목 낙제'인 대통령 얘기는 지겨우니까 빼자.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같은 곳에서 일하는 수재 집단은 왜 이토록 무능했을까. '책임 소재' 때문이다.

    메르스 감염자를 양산(量産)한 병원들의 이름 공개와 폐쇄를 두고 공무원들은 몸을 뺐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얼마 전 입수해 공개한 지난 5월 20·21일 질병관리본부와 전문가 간담회 내용을 보면 메르스 확진자 병·의원을 공개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에 해당 병원들이 반대했다. 그러자 그 얘긴 쑥 들어갔다. 사실이 알려지자 "삼성이 정부에 압력을 넣어 병원 공개가 안 됐다더라" "공무원들이 많이 얻어먹어서 그렇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말 그것뿐이었을까. 공무원들의 손발을 묶은 건 현행 의료법상 방역(防疫)을 목적으로 병원을 폐쇄할 근거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검사는 물증으로, 공무원은 관련 법적 근거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병원을 폐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거 조항은 있나?" "없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가 병원들이 소송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이렇게 돌아갔다면 어느 공무원이 '책임지고' 병원 폐쇄를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보신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힘들다. 남들만큼 일했다고 징계받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남들 안 하는 것 하려다 문제가 생기면 문책당하는 게 대부분 조직의 원리다. 공무원 사회는 더 그렇다. "수처작주(隨處作主·주인의식)? 웃기지 마라. '나대지 말자'가 정답"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감염학이 전공인 삼성서울병원장이 자기 병원의 방역에 실패한 것도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이 '행정에 충실한 행정 공백'을 박원순 서울시장이 뚫은 것이다.

    만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법적 근거는 없지만 병원을 폐쇄하겠다'고 결심했다 치자(물론 상상이다). 이걸 문서로 만들어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한다? 아마도 "대통령께서 법적 근거는 있느냐고 물으신다"는 비서관이나 수석의 한마디에 '깨갱' 하고 말았을 것이다. '초법적 판단'은 인사권을 쥔 최상급자의 결심이 관건이다. 그런 담판은 서류가 아니라 얼굴 보고 하는 거다.

     "대통령께 직접 유선 보고도 드렸다"던 장관의 말이 떠오른다. 가끔, 직접, '전화로' 말했단다. 젠장, 또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아닌 '사필귀(事必歸)대통령책임'이 되어 버렸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