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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아버지의 눈물

도깨비-1 2015. 7. 22. 10:32

 

[만물상] 아버지의 눈물

입력 : 2015. 07. 22  03:00 / 조선일보

다정한 아빠를 둔 친구가 늘 부러웠다. 김현승 시처럼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를 갖고 싶었다. 현실의 아버지는 체면을 목숨만큼 중히 여기는 가부장의 전형이었다. 집보다는 집 밖을, '가족과 함께'보다는 '남들과 함께' 여행하길 좋아했다. 내일 먹을 양식 걱정하는 아내 앞에서 나라와 민족의 안위를 논하던 '철없는' 애국자였다.

▶그 시절 아버지들은 다 그런 줄 알았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기 전까지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아내, 어린 아들과 함께 끌려온 귀도는 가족에게 닥친 불행 앞에 무릎 꿇지 않는다. 아들에게 "지금부터 아빠와 신나는 게임을 하는 거야" 속삭인다.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이 일등상으로 진짜 탱크를 받는 것"이라는 아빠 말에 아들은 두 눈을 빛낸다. 죽을 고비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도 아들 앞에선 결코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버지는 수많은 관객을 울렸다.

 

만물상 칼럼 일러스트

 

▶신기하게도 무심한 아버지든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남자의 눈물'을 금기시해온 문화 탓일까. 아버지를 소재로 한 시들에 눈물·슬픔이라는 시어(詩語)가 자주 나오는 건, 그래서 아이러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김현승). '소주 한 병만 있어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쓰는 시인/ 담배 한 갑만 있어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림을 그리는 화가'(김병훈)….

 

▶그래서일까. '골프 대디'의 눈에서 폭포수처럼 흐르던 눈물이 보는 이들 가슴을 울렸다. 7년, 157번 도전 끝에 LPGA 우승을 따낸 최운정의 아버지 말이다. 아버지는 매번 고지 앞에서 무너지는 딸을 위해 경찰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20㎏ 넘는 캐디백을 메고 딸을 지극정성 뒷바라지했다. 주저앉으려는 딸을 일으켜 세운 건 아버지의 한마디였다. "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거다. 꿋꿋하게 자기 길 가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

 

▶정호승이 노래했듯 아버지란 '석 달치 사글세가 밀린 지하 셋방'이고 '아침 출근길 보도 위에 누가 버린 낡은 신발 한 짝'이며 '벽에 걸려 있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 고장 난 벽시계' 같은 존재인지 모른다. 그러나 잘난 아버지든 못난 아버지든 내 자식만큼은 '햇볕 잘 드는 전셋집'에서 '새 구두' 사 신고 '인생의 시계를 더 이상 고장 내지 않는' 멋진 삶을 살기 원한다. 그 아버지들이 마음껏 목놓아 울어도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