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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유승민 파동', 保守의 길을 가리키다

도깨비-1 2015. 7. 8. 15:25

[윤평중 칼럼] '유승민 파동', 保守의 길을 가리키다

  •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 입력 : 2015.07.08 03:20 / 조선일보

    총선·대선 겨냥한 대통령 담화… 劉, '배신' 선고에도 최대 수혜
    非·親朴 싸움은 新·舊보수의 본격적인 세력 分化를 의미해
    합리적 진보와 경쟁·相生하는 새 시대 여는 계기로 승화돼야

     

      6월 25일 정치권을 강타한 박근혜 대통령의 '분노의 담화'는 과연 성공했는가? 집권 여당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혼돈의 시간이 지난 후 폐기되고만 국회법 개정안은 제왕적 대통령의 힘을 입증하는 듯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유승민 찍어내기'가 내포하는 정치 방정식은 훨씬 복합적이다.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단연 '정치인 유승민'이기 때문이다. 개혁 보수의 이미지에다 강자(强者)인 대통령의 비민주적 사퇴 압력에 저항하는 약자(弱者)에 공감하는 여론까지 더해져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단숨에 전국구 정치인의 존재감을 획득했다. 한마디로 유 대표는 집권당 원내대표직(職) 대신 나름의 정치적 미래를 얻었다.

      '배신자 유승민'에 대한 정치적 사망선고가 대통령 담화의 주 목표였다면 기막힌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정치가 생물(生物)이라는 교훈이 재확인되는 순간이다. 물론 대통령은 담화에서 언제든지 정치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권능과 결기로 자신의 위력을 과시했다. 메르스 정국의 수세(守勢)를 단칼에 거부권 정국의 공세로 전환시킨 게 그 증거다. '배신의 정치를 선거로 심판해 달라'는 대통령의 말은 '선거의 여왕'이란 상징 자산으로 다음 총선과 대선 이후의 정치적 미래까지를 예비하겠다는 결의로 읽힌다. 위기일수록 강하게 치고 나가는 박 대통령의 특성이 선명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잃은 것도 있다. 먼저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멀어진 당심(黨心)을 확인했다. 더 뼈아픈 것은 대통령이 민생정치보다 권력정치를 앞세우고 있다는 세간의 인식이다. 민주국가의 지도자에게 이보다 더한 주홍글씨도 드물 터이다. 떠나가는 민심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의 숙제는 임기 후반기 박 대통령이 직면한 최대 도전이다. 대통령의 분노정치는 세(勢) 불리한 판을 흔들어 정치 의제를 바꾸는 데 성공한 대가로 국민의 마음을 잃을 수도 있는 치명적 위험을 자초했다.

      당을 깰 수는 없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인식은 노련한 정치적 현실주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상을 결여한 현실주의는 현실에 대한 무원칙한 타협으로 이어지기 쉽다. 한국 사회같이 역동적인 정치 공간에서 유력 대권주자라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보다 위태로운 태도도 드물다. '무성 대장'에 걸맞은 미래 비전과 정치적 중량감을 쟁취하는 건 오롯이 김 대표 자신의 몫이다. 위기의 순간에 과감히 제 목소리를 못 내는 정치인이 대권을 잡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유승민 파동'같이 의미심장한 사건에서 특정 정치인의 득실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숨겨진 시대정신을 포착하는 일이다. 전면전으로 비화한 여권 내 친박 대(對) 비박 싸움은 기실 구(舊)보수와 신(新)보수의 본격적 세력 분화를 의미한다. 국회의장 경선과 당 대표·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 축적되어 온 신보수의 흐름은 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유 원내대표의 '정의로우면서 따뜻한' 개혁 보수의 선언으로 중대 전환점을 맞는다. '한국 보수의 주류가 정의롭지도 못하고 따뜻하지도 않다'는 게 사회적 통념인 우리네 현실에서 개혁 보수의 약속이 신선한 충격을 준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누적된 박근혜 정부의 실정(失政) 앞에 선 새누리당은 정권 재창출이 최대 과제일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과정을 복기(復碁)해보면 보수의 자기 변화가 왜 필연적인지 선명히 드러난다. 보수 정치인으로서는 최대의 정치적 자산을 지녔던 2012년의 박근혜 후보조차도 복지 강화와 경제 민주화의 중원(中原) 확장 전략 덕분에 가까스로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기 총선과 대선을 앞둔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이는 천금 같은 교훈이다. 중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개혁 보수가 아니고서는 새누리당이 차기 총선과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인 것이다.

      '유승민 파동'이 폭로한 친박의 시대착오적 행태는 낡은 보수의 암울한 앞날을 예고한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열렬 지지층을 가진 강력한 정치인이지만 한국 보수는 '포스트 박근혜'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형편에 몰렸다. 신보수의 자기 변화에 구체적 실체가 있는지는 앞으로 엄밀히 검증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궁극적으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경쟁하며 상생(相生)하는 새 시대를 여는 계기로 승화되어야 마땅하다. 결국 '유승민 파동'은 보수가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시금석이 되었다. 한국 보수의 생사(生死)가 결정되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순간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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