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소위 '국회선진화법'은 폐지해야 한다
입력 : 2015.06.10 03:00 / 조선일보
'난투劇 국회' 예방 취지가 소수 의석 野 발목 잡기 탓에 '不妊·무책임 국회'로 왜곡
민주주의·책임정치 反한 법 개혁·民生 입법 통과 막아 상임委長 나눠먹기도 끝내야
국회 의결을 어렵게 하는 소위 '국회선진화법'이 제정된 지 벌써 만 3년이 지났다.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이 법은 누가 다수당이 될지 모르는 총선거 직전에 적어도 국회의원이 난투극을 벌이는 '동물 국회'를 예방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법률안을 발의한 의원은 국회의원의 선의(善意)를 믿고 여야 합의로 법률안을 통과시킨다면 국회가 좀 더 민주적인 활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기대가 컸던 것 같다.
그런데 19대 국회에서 이 법을 막상 시행해 보니 국회 난투극은 막았으나 민생 법률은 제정되지 않는 '식물 국회'가 되었다. 국민이 여당에 절대다수 의석을 주었지만 야당이 반대하면 어떤 법률도 통과되지 않는 불임(不妊) 국회, 무책임 국회가 되어 버렸다. 국민의 지지를 덜 받은 야당이 사실상 국회 입법을 좌지우지하게 되어 '야당 결재법'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대통령도 국민의 절대다수 지지를 얻어서 당선되었고 여당도 국회의 절대다수를 얻었지만 야당의 발목 잡기에 걸려 개혁 입법과 민생 입법은 통과되지 않고 특정 지역에 많은 예산을 퍼주는 법률은 통과되었다. 야당이 원하면 행정입법도 법원 판단에 의하지 않고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시정할 수 있는 법률까지 만들어 박근혜 정부 들어 초유의 거부권 행사까지 논의되고 있다.
여당은 지난 1월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고,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도 지난해 9월에 이미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해 놓고 있다. 국회가 잘못 만든 법률을 자체 개정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구하는 것도 문제가 있으며, 헌재도 이의(異議) 심사를 주저하고 있어 문제이다.
이 법은 헌법 제49조가 규정하고 있는 다수결 원칙에 위배된다. 민주 정치는 다수결에 따르는 통치임은 자명한 이치이고, 입헌주의는 국민의 민의(民意)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과 다수당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제도이다. 국민의 다수가 선택하지 않은 정당이 결재권을 행사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법을 보이콧하거나 관계없는 법 조항까지 끼워넣어 통과시키는 것은 입헌주의와 민주주의에 반(反)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헌법이 다수결을 규정하고 책임 정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대한민국의 헌정 제도는 대수술을 해야 한다.
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이나 의원내각제의 전형인 영국은 국회 권력을 여야가 나누지 않는다. 연립 정권을 이루는 경우에 합의에 따라 장관과 상임위원장을 나누는 경우는 있지만 대통령이 국정 책임을 져야 하는 한국에서 상임위원장 나눠 먹기는 헌정 질서에 위반된다. 특히 법사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하고 그가 각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 법사위원회까지 통과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직권 남용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식 대통령제 원칙에 따라 다수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전부 차지하고, 상임위원장은 다수당의 다선(多選) 의원이 차지하는 '선임자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 또 미국처럼 대통령이 사실상 입법권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의 상임위원장 나눠 먹기는 과거 6공의 여소야대 정국에서 나온 타협의 결과이지만 책임 정치 원칙에 위배되고 법적 근거도 없기에 폐기해야 한다.
토론과 타협을 중시하더라도 정부와 국회가 식물 기관처럼 되어 불임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국회도 민주적인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의장의 국회 주재권을 강화해야 하며, 대통령이 공약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국회가 뒷받침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일할 권한을 주지 않고 책임만 따져서는 안 된다. 국회가 의원들의 권한을 강화하려면 헌법을 개정하여 의원내각제로 하면 되지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국회가 발목 잡기를 해서는 다음에 집권 정당이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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