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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국민 세금인데…"

도깨비-1 2015. 8. 4. 10:01

 

[데스크에서] "국민 세금인데…"

 

입력 : 2015.08.04 03:00 / 조선일보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사진

 

이인열 산업1부 차장

 

 

현동화씨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인물이다. 6·25전쟁 포로 출신으로 제3국을 선택해 인도에 정착해 지금도 델리에 살고 있다. 몇 년 전 그를 델리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기억력이 대단히 비상했고 주량도 위스키를 더블 잔으로 넉 잔씩 비울 정도였다. 그와 나눈 대화는 4시간쯤 이어졌는데, 헤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귀에 맴돈 것 중 하나는 '최규하 전 대통령 일화'였다.

1960년대 중반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이 외교부 국장으로 인도를 찾았을 때 일이다. 당시 인도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첨예한 대결 국면에서 제3세계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인도는 우리 외교에 아주 중요한 국가였다. 하지만 인도로서는 한국이 경제력도 미약했으니 소홀히 대했던 것 같다. 최 국장이 수행 외교관 한 명과 단출하게 인도를 찾았는데, 인도 측에서 갑자기 일정 변경을 이유로 만남을 취소했다. 비행기가 자주 오가던 시절이 아니니 최 국장 일행은 그냥 2~3일을 호텔에서 지내다 서울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당시 인도 한인회장이던 현동화씨 등이 "그래도 타지마할은 꼭 보고 가시라. 자동차는 우리가 준비했다"고 권했다. 그러자 수행 외교관은 "그렇게 하시죠"라고 말했는데, 최 국장은 "난 여기 공무(公務)로 왔소. 세금으로 출장 나온 내가 어떻게 관광을 하겠소. 대신 인도 신문을 좀 구해주시오"라고 말하고는 끝내 호텔에만 머물다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고지식해 보인다. 그런데 시계추를 당시로 돌려보면 1달러 벌겠다고 인모(人毛)를 내다 팔던 시절이니 그가 세금을 아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꽃 같은 청춘들의 스러짐만큼이나 온 국민 가슴을 울린 사연이 있었다. 고(故) 정차웅군의 부모였다.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정작 본인은 조끼도 없이 주검으로 발견된 사연에 온 국민이 울었다. 그런데 우리 가슴을 더 저민 것은 정군의 부모였다. 국민 세금으로 치르는 장례라면서 가장 싼 수의를 입혀 아들을 천국으로 보냈다. 죽음 앞에서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는 용기와 맑은 마음은 세월호 참사 속에서 우리 공동체를 지켜준 원천이었다.

얼마 전 세월호특별조사위원들이 직원 체육대회 개최 비용 252만원, 동호회 지원 비용 720만원, 전체 직원 생일 케이크 비용 655만원 등을 책정해서 논란이 일었다. 억대 연봉을 받고, 명절 휴가비를 받는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치자. 그래도 조사 기간 중 생일 파티까지 국민 세금으로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의 해명이 더 걸작이다. "다른 특조위 수준을 따랐고, 파견된 공무원들이 만들어준 대로 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조차 잊어버린 사람들 같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담당자들이 "늘 그래왔다" "다른 공무원들이 하는 대로 따랐다"고 답할 때 뭐라고 추궁할지 궁금해진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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