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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고뇌한 옛 선비들… 과거시험 때 목숨도 걸어"

도깨비-1 2015. 2. 12. 09:40

 

"시대를 고뇌한 옛 선비들… 과거시험 때 목숨도 걸어"

  •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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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2.12 03:00 / 조선일보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답안 작성하며 소신 밝혀… 청소년도 전통 꿈 키웠으면"
    조선 과거 답안지 '시권'展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고전에 스토리텔링 기법을 결합하면 재미있고 유익한 ‘한류 상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고전에 스토리텔링 기법을 결합하면 재미있고 유익한 ‘한류 상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 원장은 지난해 경기도 용인 심곡서원에서 조선 중종 시대의 유학자이자 정치가인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과거 급제 답안을 보고 새삼 놀랐다. 유교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애썼던 그의 포부가 시권(試券)으로 불리는 과거 답안지에도 적혀 있었다. 1660년 과거 시험에서 장원 급제했던 조선 후기 소론의 영수 박세당(1629~1703)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박세당은 공물(貢物)을 관리할 국가적 시스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이 원장은 "당시 과거 시험은 응시자를 떨어뜨리기 위한 사지선다(四枝選多)나 함정식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시대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뇌한 흔적들이 답안에도 녹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비들은 과거 답안을 쓸 때에도 목숨을 걸고 소신을 밝혔다"고 말했다.

    한중연이 오는 6월 30일부터 조선 시대 과거 답안지인 시권을 장서각 상설전으로 전시할 예정이다. 6월 30일은 한중연 개원 37주년을 맞는 날이다. 한중연은 시권 3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올 초부터 한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조선 시대 과거 답안지는 합격자에게 돌려줬으며, 문중에서 대대로 가보(家寶)로 간직하고 있다가 한중연에 기증한 경우가 많다. 반면 불합격자의 답안지는 도배지 등으로 재활용하기도 했단다.

    과거 답안 전시는 한중연이 소장한 고전 자료 17만점을 현대화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다. 이 원장은 "한류(韓流)의 원천은 우리 고유의 전통에 있다"고 말했다. '대장금' '주몽' 같은 역사 드라마들이 사랑받는 것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원장은 "문화 상품으로서 한류는 유행을 탈 수밖에 없다. 고품격 한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전통에 단단하게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근대사를 전공한 이 원장은 이화여대 총장과 국가브랜드위원장을 지냈다.

    한중연은 지난해 성남·용인 등 인근 중·고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찾아가는 한국학 콘서트'를 올해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조선 시대 청소년은 어떻게 살았을까' '조선 시대 왕의 초상화 이야기' 같은 주제로 전문 연구자들이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학교 현장에서 역사 강연을 하는 방식이다. 중학교 교육과정 가운데 한 학기 동안 토론·실습 수업과 진로 탐색 활동을 하는 '자유학기제'와도 장기적으로는 연계할 계획이다. 이 원장은 "청소년들이 우리 전통에서 창의성을 찾고 꿈을 키웠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