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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흥남 철수' 주역은 실존인물 현봉학

도깨비-1 2015. 1. 8. 11:48

 

영화 속 '흥남 철수' 주역은 실존인물 현봉학

美장군 설득해 10만명 피란

입력 : 2014.12.23 03:06 | 수정 : 2014.12.24 15:58 / 조선일보

이한수 문화부 기자



현봉학
현봉학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우리가 떠나버리면 저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중공군의 공격에 몰살당하고 말 것입니다. 장군님 제발… 불쌍한 우리 국민들을 살려주세요."

영화 '국제시장' 흥남 철수 장면에서 한국인 청년이 미군 장군에게 피란민들을 미군 배에 태워달라고 영어로 간절히 호소하는 모습은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 청년은 '한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현봉학(1922~2007·사진)이다. 함흥고보와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현봉학은 미국 버지니아 리치먼드 의대에 유학하고 1950년 3월 귀국한 직후 6·25전쟁을 맞았다. 한국 해병대 문관으로 참전해 미군 통역을 맡았다.

미군은 1950년 11월 27일부터 보름간 장진호 전투를 벌이고 흥남항을 통해 병력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중공군은 4개 사단 12만명 병력으로 미군을 압박하고 있었다. 미군 병력 10만5000명을 철수시키는 것도 험난한 일이었다.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가려는 피란민 10만여명이 부두에 몰려들었다.

현봉학은 철수작전 담당 참모장 에드워드 포니 대령과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아먼드 소장에게 피란민을 배에 태워달라고 설득했다. 그의 간절한 설득에 아먼드는 결국 민간인 승선을 결정했다. 12월 12일부터 24일까지 9만8000여명이 배 193척에 나눠 타고 남으로 왔다. 24일 부두를 떠난 마지막 수송선 메리디스 빅토리호는 정원이 2000명이었지만 1만4000명을 태웠다. 대신 200t이 넘는 탄약과 500여개의 포탄, 유류 200드럼을 버리고 항구를 폭파했다. 이 배는 25일 거제도 장승포에 도착했다. 미군들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했다.

현봉학과 아먼드의 기묘한 인연도 있었다. 아먼드 소장이 물었다. "그 유창한 영어는 어디서 배웠소?" "버지니아 리치먼드 의대에서 배웠습니다." "뭐요? 거기는 내 고향인데. 당신 고향은 어디요?" "군단장께서 주둔하고 있는 함흥입니다." 아먼드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이 사람은 어쩌면 9만8000명 사람을 구하라는 특명을 받고 이 세상에 왔는지도 몰라."

현봉학은 전쟁 직후 미국에 건너가 펜실베이니아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의대 교수로 활동했다. 2007년 11월 25일 미국 뉴저지에서 별세했다. 이화여대 문리대학장을 지낸 현영학(1921~2004)이 형, 재미 언론인 피터 현(한국명 현웅)이 동생이다.

흥남 철수 때 남쪽으로 가기 위해 ‘레인 빅토리호’를 가득 채운 피란민들. 흥남부두는 자유를 향해 열린 마지막 탈출구였다.
흥남 철수 때 남쪽으로 가기 위해 ‘레인 빅토리호’를 가득 채운 피란민들. 흥남부두는 자유를 향해 열린 마지막 탈출구였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