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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日本을 볼 때가 됐다

도깨비-1 2014. 12. 30. 09:19

신정록의 태평로

'있는 그대로'의 日本을 볼 때가 됐다

입력 : 2014.12.30 03:04 / 신정록 논설위원

 

얼마 전 일본 내각부는 일본 국민을 상대로 매년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이 66.4%로 역대 최고치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2011년 36.7%에서 2012년에 59%로 갑자기 오르더니 작년 58%를 거쳐 올해 정점을 찍은 것이다. 이 조사가 시작된 게 1978년이니 군사정권 시절보다 한국을 더 싫어하게 됐다는 얘기다. 구로다 가쓰히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연초 주간조선에 실은 글에서 "한국의 실패가 일본의 기쁨이 된 것 같다"고 했을 정도니 일본 내 반한(反韓) 정서를 짐작할 만하다.

1998년 10월 8일 취임 1년차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도쿄에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제 미래로 가자"는 이 선언에는 역대 최대치의 수사(修辭)가 따랐다. 오부치 총리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높이 평가하고 식민 지배에 대해서 처음으로 '사죄'라는 표현을 썼다. 김대중 대통령도 전후(戰後) 일본에 대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수행해온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몇 년 후 한류(韓流)가 일본에서 절정에 이르고 한국에서 일본 음식과 문화가 다양하게 소개될 때까지만 해도 이 황금기가 그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면에선 독도, 위안부, 교과서 검정, 재무장 등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눈덩이처럼 자라고 있었다. 두 나라 정상이 정상회담에서 싸웠다고 경쟁하듯 공개하는 상황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2007년엔 노무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2011년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싸우고 난 뒤 무용담을 언론에 자세히 알렸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의 대일(對日) 관계 패턴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임기 전반기엔 미래를 강조하고 잘해보자고 하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냉각과 격돌로 돌아섰다. 20여년 이어져 온 이런 패턴에서 후반기의 격돌 양상은 점점 격렬해졌다. 뭔가 구조적으로 더 틀어져 오고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반기 화해·후반기 격돌'이라는 패턴을 따르고 있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일 관계가 이렇게 된 데는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 전쟁 불사(不辭)' 발언,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과' 발언 등 한국 쪽이 불필요하게 자극한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보다는 일본 정치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 훨씬 컸다. 일본은 지난 몇 년간 평화헌법을 훼손하고 군비(軍備)를 강화하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길을 질주했다. 아베 총리는 전쟁 책임을 회피하고 전후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도 여러 번 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정권과 보통 일본 사람은 다르다고 말하지만 일본 중의원(衆議院) 총선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 지금의 일본은 우리가 익숙해져 있던 일본이 아니라 새로운 일본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새해 6월이면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50년이 된다. 난제(難題)는 수두룩한데 해결 대상이라기보다 관리하기에도 벅찬 것들이다. 이젠 사과 문구(文句)를 가지고 줄다리기하는 시대도 끝났다.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상대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