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1979년에 멈춘 '카터(前 美대통령)의 時計'

도깨비-1 2014. 12. 30. 09:16

 

 

기자수첩

1979년에 멈춘 '카터(前 美대통령)의 時計'

입력 : 2014.12.30 03:04 / 조선일보 윤정호 워싱턴 특파원


 

국가시설 노린 이석기를 救命해달라고 성명서 내… 그를 '양심범'으로 착각했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땅콩'과 조깅이다. 조지아주(州)의 땅콩 농장 주인 출신인 무명의 정치인이 세계의 대통령이 되자,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카터 대통령은 '인간 승리'의 표본이었다. 중학생이던 1979년, 카터 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미군부대에 머물면서 병사들과 반바지를 입고 조깅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한미군 철수와 인권문제를 놓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엄청난 갈등이 있었다는 것은 철들고야 알았다.

재임 당시 지지율이 최악이었던 카터 전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난 뒤 노벨상까지 받고 오히려 존경받는 인물이 됐다. 갈등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간의 정상회담을 주선했다. 누구든 도움을 요청하면 손을 내민다. 이번에는 내란음모 혐의로 대한민국 고등법원이 실형을 선고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의 후원자가 됐다. 1982년 설립한 카터센터가 '이석기 구명 성명서'를 발표했다. 피고인들의 변호인단과 가족이 '지한파'인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를 통해 애틀랜타의 카터센터를 직접 방문해 탄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터센터의 설립 목적이 '인권 향상과 인간 고통 완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청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구원'은 번지수가 잘못됐다.

우선 카터센터는 대한민국의 변화된 상황을 무시했고, 사실관계도 틀렸다. 재판에 제시된 증거들의 사실 여부를 언급하지 않겠다면서 "1987년 이전 군사독재 시절 만든 억압적인 국가보안법에 따라 선고됐다"는 사실만 강조했다. 이석기 전 의원의 혐의는 국가보안법도 있지만, 내란음모가 주요한 부분이다. 보안법이라서 안 된다는 논리도 잘못됐다. 시대 상황을 반영해 보안법은 1991년 개정됐다. 법원도 법 적용을 신중하게 한다. 보안법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은 몇 되지도 않는다. 군사독재 시절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카터센터는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사법 체계에 따라 정상적인 재판을 받는 사건에 대해 뭔가 잘못이 있다는 식은 '사법 간섭'이다. CIA의 고문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모든 나라가 국제인권법에 충실하면서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고도 했는데, 대한민국이 고문 국가라는 취지로 들린다. 과거 고문과 강압에 의해 자백받고, 권력의 뜻에 따라 판결하던 암울했던 시대만 기억하는 듯싶다.

가장 큰 문제는 이석기 전 의원이 왜 재판을 받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RO(혁명조직) 모임이 국가 기간시설을 타격하기로 모의했는데도 이 전 의원을 그냥 '양심범' 정도로 착각했다.

미국도 내란죄는 아주 심각한 범죄로 처벌한다. 9·11테러 이후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무시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반도는 미국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사고가 1979년 미군 부대에서 병사들과 조깅하던 때에 머물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